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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이루상(離婁上) 18] 역자이교지장[易子而敎之章] / 군자지불교자하여(君子之不敎子, 何也?)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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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가 자식을 가르치는 방법

公孫丑曰: “君子之不敎子, 何也(군자지불교자 하야)?”

공손추가 말하기를: “군자가(君子之) 자식을(子) <직접> 가르치지 않는(不敎) 것은, 어째서입니까(何也)?”

 

不親敎也.  직접(親) 가르치지(敎) 않는다(不也).

 

孟子曰: “勢不行也(세불행야). 敎者必以正(교자필이정); 以正不行(이정불행), 繼之以怒(계지이노); 繼之以怒(계지이노), 則反夷矣(즉반이의).

맹자가 말하기를: “형세가(勢) 행해지지 않음이다(不行也). 가르치즌(敎) 사람은(者) 반드시(必) 올바름으로(以正) 하고; 올바름으로(以正) 해서 행해지지 않으면(不行), 노여워함으로(以怒) 그것을 잇고(繼之); 노여워함으로(以怒) 그것을 이으면(繼之, 則) 도리어(反) 상한다(夷矣).

 

夷, 傷也.  이(夷)는, 손상함이다(傷也).

 

夫子敎我以正(부자교아이정), 夫子未出於正也(부자미출어정야), 則是父子相夷也(즉시부자상이야). 父子相夷(부자상이), 則惡矣(즉악의).

선생님(夫子, 부모)이 올바름으로(以正) 나를 가르치고(敎我), 선생님의(夫子) <행동도> 올바름에서(於正) 나오지 못한다고(未出也) 한다면(, 則) 이것은(是) 부모와 자식이(父子) 서로(相) 상한다(夷也). 부모와 자식이(父子) 서로(相) 상하면(夷, 則) 나쁘다(惡矣).

 

敎子者, 本爲愛其子也, 繼之以怒, 則反傷其子矣. 父旣傷其子, 子之心又責其父曰: ‘夫子敎我以正道, 而夫子之身未必自行正道.” 則是子又傷其父也.

자식을 가르치는(敎子) 사람은(者), 본래(本) 그 자식을(其子) 사랑하기(愛) 때문인데(爲也), 노여움으로(以怒) 그것을 이으면(繼之, 則) 도리어(反) 그 자식을(其子) 상하게 한다(傷矣). 부모가(父) 이미(旣) 그 자식을(其子) 상하게 하면(傷), 자식의 마음이(子之心) 또(又) 그 부모를(其父) 책망하여(責) 말하기를(曰): 선생님이(夫子) 정도로써(以正道) 나를 가르쳤지만(敎我, 而) 선생님의(夫子之) 몸이(身) 반드시(必) 스스로(自) 정도를(正道) 행하지(行) 않는다(未).라고 한다면( 則) 이것은(是) 자식이(子) 또(又) 그 부모를(其父) 상하게 한다(傷也).

 

古者易子而敎之(고자역자이교지).

옛사람은(古者) 자식을(子) 바꿔서(而) 그들을 가르쳤다(敎之).

 

易子而敎, 所以全父子之恩, 而亦不失其爲敎.

자식을 바꿔서(易子而) 가르침은(敎), 부자 사이의(父子之) 은혜를(恩) 온전하게 하고(所以全, 而) 또한(亦) 그(其) 가르침 함(爲敎)을 잃지 않는다(不失).

 

父子之間不責善(부자지간불책선). 責善則離(책선즉리), 離則不祥莫大焉(리즉불상막대언).”

부자의(父子之) 사이에는(間) 선으로(善) 책하지 않으니(不責, 요구하지 않으니). 선을 요구하면(責善則) 떨어지고(離), 떨어지면(離則) 상서롭지 못함이(不祥) 이보다(焉) 더 큰(大) 것이 없다().”

  • 莫大焉: '莫' 뒤에 형용사가 오면 '이보다 더 ~한 것은 없다'로 최상급을 나타낸다. 대부분 형용사 뒤에 '於'가 오는데, '焉'은 '於是'의 준말로 볼 수 있다.

 

責善, 朋友之道也.  책선(責善)은, 벗의(朋友之) 도리다(道也).

 

○ 王氏曰: “父有爭子, 何也? 所謂爭者, 非責善也. 當不義則爭之而已矣. 父之於子也如何? 曰, 當不義, 則亦戒之而已矣.”

왕씨가 말하기를: “아버지에게(父) 간쟁하는(爭) 자식이(子) 있음(有)은, 무엇인가(何也)? 이른바(所謂) 간쟁하는 사람은(爭者), 선을 요구하는(責善) 것이 아니다(非也). 불의를(不義) 마주한다면(當則) 그것을 간쟁할(爭之) 뿐이다(而已矣). 아버지가(父之) 자식에(子) 대서는(於也) 어떠한가(如何)? 말하기를(曰), 불의를(不義) 당한다면(當, 則) 또한(亦) 그것을 경계할(戒之) 뿐이다(而已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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