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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등문공하(公孫丑下) 10] 중자가 어찌 청렴할 수 있겠느냐 ? 진중자장[陳仲子章]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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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자의 청렴은 지렁이보다 못하다

匡章曰: “陳仲子豈不誠廉士哉(진중자기불성렴사재)? 居於陵(거오릉), 三日不食(삼일불식), 耳無聞(이무문), 目無見也(목무견야). 井上有李(정상유리), 螬食實者過半矣(조식실자과반의), 匍匐往將食之(포복왕장식지), 三咽(삼연), 然後耳有聞(연후이유문), 目有見(목유견).”

광장이(匡章) 말하기를(曰): “진중자가(陳仲子) 어찌(豈) 참으로(誠) 청렴한 선비답지(廉士) 않은가(哉)? 오릉에(於陵) 머물(居) 때, 삼일(三日) 동안 먹지 않고(不食), 귀에(耳) 들리는 것이 없고(無聞), 눈에(目) 보이는 것이(見) 없었다(也). 우물가에(井上) 오얏이(李) 있는데(有), 굼벵이가(螬) 열매를(實) 먹은(食) 것이(者) 반을 넘었는데(過半矣), 기어(匍匐) 가서(往) 장차(將) 그것을 먹고(食之), 세 번(三) 삼키고(咽), 나서야(然後) 귀에(耳) 들리는 것이 있고(有聞), 문에(目) 보이는 것이(見) 있었다(有).”

  • 豈不誠廉士哉: '廉士'는 '청렴한 선비'가 본뜻이지만, '不' 뒤에 와서 술어가 되었으므로 '청렴한 선비답다'로 해석한다. 

 

○ 匡章ㆍ陳仲子, 皆齊人. 廉, 有分辨, 不苟取也. 於陵, 地名. 螬, 蠐螬蟲也. 匍匐, 言無力不能行也. 咽, 呑也.

광장(匡章)과 진중자(陳仲子)는, 모두(皆) 제나라 사람이다(齊人). 렴(廉)은, 분수의(分) 분별이(辨) 있고(有), 구차하게(苟) 취하지(取) 않음이다(不也). 오릉(於陵)은, 지명이다(地名). 조(螬)는, 굼벵이(蠐螬) 벌레다(蟲也). 포복(匍匐)은, 힘이 없어서(無力) 걸어갈 수 없음(不能行)을 말한다(言也). 연(咽)은, 삼킴이다(呑也).

 

孟子曰: “於齊國之士(어제국지사), 吾必以仲子爲巨擘焉(오필이중자위거벽언). 雖然(수연), 仲子惡能廉(중자오능렴)? 充仲子之操(충중자지조), 則蚓而後可者也(즉인이후가자야).

맹자가 말하기를: “제나라의(齊國之) 선비(士) 중에(於), 내가(吾) 반드시(必) 중자를(以仲子) 첫 손가락(巨擘, 엄지손가락, 뛰어난 사람)으로 여기는데(焉). 비록 그렇지만(雖然), 중자가(仲子) 어찌(惡) 청렴할 수 있는가(能廉)? 중자의(仲子之) 절개(操)를 채우려면(, 則) 지렁이가 된(蚓) 다음에야(而後) 가능할 것이다(可者也).

 

○ 巨擘, 大指也. 言齊人中有仲子, 如衆小指中有大指也. 充, 推而滿之也. 操, 所守也. 蚓, 丘蚓也. 

거벽(巨擘)은, 큰(大) 손가락이다(指也). 제나라(齊) 사람(人) 중에(中) 중자가 있어(有仲子), 여러(衆) 작은 손가락(小指) 중에(中) 큰 손가락이(大指) 있음(有)과 같다는(如) 말이다(言也). 충(充)은, 미루어서(推而) 그것을 채움이다(滿之也). 조(操)는, 지키는 것이다(所守也). 인(蚓)은, 지렁이다(丘蚓也). 

 

言仲子未得爲廉也, 必若滿其所守之志, 則惟丘蚓之無求於世, 然後可以爲廉耳.

중자가(仲子) 청령하게 될(爲廉) 수 없으니(未得也), 반드시(必) 만약(若) 그가(其) 지키는 것의(所守之) 뜻을(志) 채우려면(滿, 則) 오직(惟) 지렁이의(丘蚓之) 세상에(於世) 요구함이 없는 것(無求)과 같은, 다음에야(然後) 청렴함이 될(爲廉) 수 있다고(可以) 말한(言) 것일 뿐이다(耳).

 

夫蚓(부인), 上食槁壤(상식고양), 下飮黃泉(하음황천). 仲子所居之室(중자소거지실), 伯夷之所築與(백이지소축여)? 抑亦盜跖之所築與(억역도척지소축여)? 所食之粟(소식지속), 伯夷之所樹與(백이지소수여)? 抑亦盜跖之所樹與(억역도척지소수여)? 是未可知也(시미가지야).”

저(夫) 지렁이는(蚓), 위로는(上) 마른 흙(槁壤)을 먹고(食), 아래로는(下) 누런 샘물(黃泉)을 마신다(飮). 중자가(仲子) 거처하는(所居之) 집(室)이, 백이가(伯夷之) 지은 것(所築)인가(與)? 아니면(抑) 또한(亦) 도척이(盜跖之) 지은 것(所築)인가(與)? 먹는 것의(所食之) 곡식은(粟), 백이가(伯夷之) 심은 것(所樹) 인가(與)? 아니면(抑) 또한(亦) 도척이(盜跖之) 심은 것(所樹) 인가(與)? 알 수 없는(未可知) 것이다(也).”

 

○ 槁壤, 乾土也. 黃泉, 濁水也. 抑, 發語辭也. 言蚓無求於人而自足, 而仲子未免居室食粟, 若所從來或有非義, 則是未能如蚓之廉也.

고양(槁壤)은, 마른 흙이다(乾土也). 황천(黃泉)은, 탁한 물이다(濁水也). 억(抑)은, 발어사다(發語辭也). 言지렁이가(蚓) 사람에게(於人) 요구하는 것이 없고(無求而) 스스로(自) 충족하지만(足, 而) 중자가(仲子) 집에 살고(居室) 곡식을 먹음(食粟)을 벗어나지 못하니(未免), 만약(若) 따라 오는 것(所從來)이 혹(或) 의가 아님(非義)이 있으면(有, 則) 이것은(是) 지렁이의(蚓之) 청렴함(廉)과 같을(如) 수 없다(未能也).

 

 

曰: “是何傷哉(시하상재)? 彼身織屨(피신직구), 妻辟纑(처벽로), 以易之也(이역지야).”

말하기를: “이것이(是) 무엇을(何) 상하게(傷) 하는가요(哉)? 저 사람이(彼) 몸소(身) 신발을(屨) 만들고(織), 처가(妻) 실을(纑) 잣고(辟), 그것으로(以) 바꿉니다(易之也).”

 

○ 辟, 績也. 纑, 練麻也.

벽(辟)은, 길쌈이다(績也). 로(纑)는, 삼을 누임이다(練麻也).

 

曰: “仲子(중자), 齊之世家也(제지세가야). 兄戴(형대), 蓋祿萬鍾(개세록만종). 以兄之祿爲不義之祿而不食也(이형지록위불의지록이불식야), 以兄之室爲不義之室而不居也(이형지실위불의지실이불거야), 辟兄離母(피형리모), 處於於陵(처어오릉). 他日歸(타일귀), 則有饋其兄生鵝者(즉유궤기형생아자), 己頻顣曰(기빈축왈): ‘惡用是鶃鶃者爲哉(오용시예예자위재)?’ 他日(타일), 其母殺是鵝也(기모살시아야), 與之食之(여지식지). 其兄自外至(기형자외지), 曰: ‘是鶃鶃之肉也(시예예지육야).’ 出而哇之(출이와지).

말하기를: “중자(仲子)는, 제나라의(之) 세가다(世家也). 형(兄) 대가(戴), 합에서(蓋) 녹(祿)이 만종이다(萬鍾). 형의 녹을(兄之祿) 불의한(不義之) 녹으로(祿) 여겨(而) 먹지 않고(不食也), 형의 집을(以兄之室) 불의한(不義之) 집으로(室) 여겨(而) 살지 않았고(不居也), 형을 피하고(辟兄) 어머니를 떠나(離母), 오릉에(於於陵) 거처했다(處). 후일에(他日) 돌아오니(歸則) 그(其) 형에게(兄) 산 거위를(生鵝) 보내온(饋) 사람이(者) 있어(有), 자기(己) 이마(頻)를 찡그리며(顣) 말하기를(曰): ‘이(是) 예예(鶃鶃, 꽥꽥거리는 소리)한 것(者)으로(用) 어디에(惡) 쓸 것인가(爲哉)?’ 다른 날他日), 그(其) 어머니가(母) 이 거위(是鵝)를 죽여(殺也), 그에게 주고(與之) 그것을 먹었다(食之). 그(其) 형이(兄) 밖에서(自外) 와서(至), 말하기를: ‘是예예의(鶃鶃之) 고기(肉)이다(也).’ 나가서(出而) 그것을 뱉었다(哇之).

  • 以兄之祿爲不義之祿而不食也: '以A爲B' 구문이며, 'A를 B로 여기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爲'는 모든 동사를 대신하므로 문맥에 맞게 해석할 수 있다.
  • 惡用是鶃鶃者爲: '用'은 '以'와 통한다. '惡'는 의문사로 원래 위치는 '爲' 다음으로 원래 문장은 '用(以)是鶃鶃者爲惡'가 된다. 전체적으로 '以A爲B' 구문이다. 

 

○ 世家, 世卿之家. 兄名戴, 食采於蓋, 其入萬鍾也. 歸, 自於陵歸也. 

세가는(世家), 대대로(世) 경의(卿之) 집안이다(家). 형(兄)은 이름이(名) 대요(戴), 합에서(於蓋) 채(采, 땅에서 걷는 조세)를 먹으니(食), 그(其) 수입이(入) 만종이다(萬鍾也). 귀(歸)는, 릉에서(自於陵) 돌아옴이다(歸也). 

 

己, 仲子也. 鶃鶃, 鵝聲也. 頻顣而言, 以其兄受饋爲不義也. 哇, 吐之也.

기(己)는, 중자다(仲子也). 예예(鶃鶃)는, 거위(鵝) 소리다(聲也). 이마를 찡그리며(頻顣而) 말함(言)은, 그(其) 형(兄) 궤를 받는(受饋) 것을(以) 불의라고(不義) 여김(爲)이다(也). 규(哇), 그것을 뱉음이다(吐之也).

 

以母則不食(이모즉불식), 以妻則食之(이처즉식지); 以兄之室則弗居(이형지실즉불거), 以於陵則居之(이오릉즉거지). 是尙爲能充其類也乎(시상위능충기류야호)? 若仲子者(약중자자), 蚓而後充其操者也(인이후충기조자야).”

어머니의 음식이라면(以母則) 먹지 않고(不食), 처의 음식이라면(以妻則) 먹고(食之); 형의 집이라면(以兄之室則) 거처하지 않고(弗居), 오릉이라면(以於陵則) 거기에 머문다(居之). 이것이(是) 오히려(尙) 그(其) 류를(類) 채울 수 있음이(能充) 되는 것인가(也乎)? 중자와(仲子) 같은(若) 것이라면(者), 지렁이가 되고(蚓) 나서야(而後) 그 지조를(其操) 채울(充) 것이다(者也).”

  • 以母, 以妻, 以兄之室, 以於陵: 앞의 문장을 참고해서 '以母'는 '以母之食爲不義之食'의 줄임말로 보고 해석한다. 

 

言仲子以母之食, 兄之室, 爲不義而不食不居, 其操守如此. 

중자가(仲子) 어머니의 음식(母之食)과, 형의 집(兄之室)을(以), 불의하다고(不義) 여겨(爲而) 먹지 않고(不食) 머물지 않으니(不居), 그(其) 절개를 지킴이(操守) 이와 같다(如此)는 말이다(言). 

 

至於妻所易之粟, 於陵所居之室, 旣未必伯夷之所爲, 則亦不義之類耳. 

아내가(妻) 바꾼 것(所易之)의 곡식과(粟), 오릉(於陵)의 머무는 것의9所居之) 집(室)에(於) 이르면(至), 이미(旣) 반드시(必) 백이가(伯夷之) 한 것(所爲)이 아니라면(未, 則) 또한(亦) 불의한(不義之) 류일(類) 뿐이다(耳). 

 

今仲子於此則不食不居, 於彼則食之居之, 豈爲能充滿其操守之類者乎? 

지금(今) 중자가(仲子) 이것에 대해서는(於此則) 먹지 않고(不食) 머물지 않고(不居), 저것에 대해서는(於彼則) 먹고(食之) 거주하니(居之), 어찌(豈) 그(其) 지조 지키는(操守之) 류(類)를 채울 수(能充滿) 있는 것(者)이 되겠는가(爲乎)? 

 

必其無求自足, 如丘蚓然, 乃爲能滿其志而得爲廉耳, 然豈人之所可爲哉?

반드시(必) 그(其) 구함이 없이(無求) 스스로 충족함이(自足), 지렁이가(丘蚓) 그러함과(然) 같아야만(如), 비로소(乃) 그(其) 뜻(志)을 채울 수 있게(能滿) 되고(爲而) 청렴하게 됨을(爲廉) 얻을(得) 뿐이니(耳), 그러나(然) 어찌(豈) 사람이(人之) 할 수 있는 것(所可) 이겠는가(爲哉)?

 

○ 范氏曰: “天之所生, 地之所養, 惟人爲大. 人之所以爲大者, 以其有人倫也. 

범씨가 말하기를: “하늘이(天之) 낳은 것과(所生), 땅이(地之) 기른 것(所養)이, 오직(惟) 사람이(人) 위대하다(爲大). 사람이(人之) 위대한(爲大) 까닭인(所以) 것이(者), 그(其) 인륜이(人倫) 있기(有) 때문이다(以也). 

 

仲子避兄離母, 無親戚君臣上下, 是無人倫也. 豈有無人倫而可以爲廉哉?”

중자가(仲子) 형을 피하고(避兄) 어머니를 떠나(離母), 친척(親戚), 군신(君臣) 상하(上下)가 없으니(無), 是無人倫) 없는(無) 것이다(是也). 어찌(豈) 인륜이(人倫) 없음(無)이 있는데(有而) 청렴하게 될(爲廉) 수 있는가(可以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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