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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입문/명심보감(明心寶鑑)

[명심보감(明心寶鑑) 1] 계선편(繼善篇)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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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爲善者(위선자), 天報之以福(천보지이복). 爲不善者(위불선자), 天報之以禍(천보지이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을(善) 행하는(爲) 사람은(者), 하늘이(天) 그에게() 복으로(以福) 보답한다(報). 불선(不善)을 행하는(爲) 사람(者)은, 하늘이(天) 그에게(之) 화로써(以禍) 보답한다(報).

  • 子曰: 夫子의 줄임말로 스승을 높일 때 쓰인다. 여기서는 공자(B.C.551~B.C.479)를 높여 부른 것이다. ‘子’를 접미사로 써서 활용해온 예를 든다면 공자는 물론이고, 老子․莊子․程子․朱子의 경우가 그것이다. 그런데 접미어로 써서 존칭 하는 것이 부족하였던지, 子程子의 경우처럼 姓의 앞에도 붙여 존칭의 의미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 爲善者: '爲'는 타동사로 “~을 하다. ~을 행하다의 뜻이다.
    '
    ~者'는 '~하는 사람, ~하는 것'의 뜻으로 문장에서 다른 말 뒤에 붙어서 명사구를 만들고 의미의 한 단락을 이룬다. 실제 문장을 이해할 때는 ‘~하면’의 의미의 條件節로 보면 문장 해석이 매끄럽게 된다. 따라서 원문을 “착한 일을 하면 하늘이 〈그에게〉 복으로 갚아주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면 하늘이 〈그에게〉 재앙으로 갚는다.”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 天報之以福: 는 술어로는 “~에 가다” (갈 지)의 뜻이고, 어조사로는 우리말의 관형격 조사인 “~의 뜻이 있다. 또 하나의 쓰임새는 목적어대명사(지시대명사)로서의 를 들 수 있다. '之'가 여기서는 지시대명사로 쓰였다.
    흔히 를 목적어대명사로 보아 이것을,” “그것을등으로 해석한다. 대명사 목적어라면 앞에는 반드시 타동사만 와야 할 것이며또한 대명사로서 가 받는 목적어가 문장 내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之는 타동사는 물론이고, 자동사 뒤에도 붙어서 두루 쓰이는 글자이며, 또한 문장에서 대명사로서 之가 받는 목적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영어식 문법에서 말하는 추상적인 사람이나 사물을 지칭하는 대명사의 역할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목적어대명사라기 보다는 문장의 어감(語感)이나, 어기(語氣), 어세(語勢) 등을 위해서 쓰는 경우다. , 자는 무엇을 지칭하기 위한 대명사가 아니라 문장의 균형감과 안정감을 유지하고, 어조(語調)를 고르기 위해 쓰기도 한다. 

 

漢昭烈將終(한소열장종), 勅後主曰(칙후주왈), 勿以惡小而爲之(물이악소이위지), 勿以善小而不爲(물이선소이불위).

한나라(漢) 소열제(昭烈)가 장차(將) 죽음에 이르러(終), 후주에게(後主) 경계하여(勅) 말하기를(曰), 악이(惡) 작다고(小) 하더라도(而) 그것을(之) 행하지(爲) 말고(勿), 선이(善) 작다고(小) 하더라도(而) 하지 않지는(不爲) 말아라(勿).

  • 漢昭烈將終, 勅後主曰: 將은 “장차 장”으로 미래 시제를 나타낸다. 終은 “마칠 종”으로 죽음을 뜻한다. 勅(칙)은 詔勅(조칙), 즉 詔書로서 제왕의 명령인데, 여기서는 ‘경계하다'는 뜻이다. “술어+사람+曰~”의 구문은 잘 쓰이는 관용구다. 
  • 勿以惡小而爲之: '以'는 이유, 까닭, 수단, 방법을 나타내는 전치사 겸 후치사이다. 以는 주로 명사(구)의 앞 또는 뒤에 붙어서 “~로서”의 뜻이지만, 以뒤에 명사절을 받으면 “이유”를 나타낸다. 즉, “~하여서, ~이기 때문에”의 뜻이 된다. 이 문장에서도 “惡小”라는 명사절을 받아, “악이 적다는 이유로~, 악이 적기 때문에”의 뜻이 된다.

 

莊子曰, 一日不念善(일일불념선), 諸惡自皆起(제악자개기).

장자(莊子)가 말하기를(曰), 하루라도(一日) 선을(善) 생각하지 않으면(不念), 모든(諸) 악(惡)이 저절로(自) 다(皆) 일어난다(起).

 

太公曰, 見善如渴(견선여갈), 聞惡如聾(견오여롱). 又曰, 善事須貪(선사수탐), 惡事莫樂(악사막락).

태공이(太公) 말하기를(曰), 선한 것(善)을 보면(見) 목마른(渴) 것처럼(如)[목이 말라 물을 찾듯이] 하고, 악한(惡) 것을 들으면(聞) 귀머거리(聾)처럼(如) 하라. 또(又) 말하기를(曰), 좋은(善) 일은(事) 모름지기(須) 탐하고(貪), 악한(惡) 일은(事) 즐기지(樂) 마라(莫).

  • 見善如渴, 聞惡如聾: 如는 전치사이나 ‘~처럼 하다’라는 동사로 새기는 것이 글의 맛을 명쾌하게 할 때가 많다. 따라서 우리말로는 ‘목이 타서 물을 찾듯이 하다’로 번역하면 좋다.
  • 善事須貪: 우리가 일반적으로 ‘모름지기’라고 번역하는 조동사이다. 그렇지만 보다 분명하게 번역하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미로 ‘必’과도 같다.
  • 惡事莫樂: 莫은 ① 자전적 의미로 ‘더 없을’, ‘더 이상 없을’의 의미를 갖는다. ② 부사로 ‘~하지 마라’의 의미를 나타내는데, 動詞性 語調를 갖는 금지사다. 본문의 莫은 ②에 해당한다. 例) “君有急病見(현)於面하니 莫多飮酒 하라: 그대는 급한 병이 얼굴에 나타나 있으니, 술을 많이 마시지 마라.”《三國志》〈魏志 方技傳〉 ③ ‘더 이상 없다.’ ‘아무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의 代詞이다. 例) “過而能改면 善莫大焉이니라: 잘못을 했더라도 고칠 수 있으면, 더 이상의 善이 없다.”《左傳》〈宣公 二年〉 ④ 때로는 莫이 無와 같은 의미로 쓰일 때도 있다. 例) “平長하여는 可娶妻로되 富人莫肯與者니라: 陳平이 자라서 아내를 맞을 수 있었는데, 부유한 사람들은 〈딸을〉 주려는 사람이 없었다.”《史記》〈陳丞相世家〉
  • 한문의 어순을 “술목 관계”라 하여 술어 다음에 목적어가 온다고 한다. 이는 한 음절의 술어와 한 음절의 목적어가 있을 때의 관계이다. 예를 들면 登山, 守節, 退社 등등의 경우가 있다. 그러나 두 음절 이상의 목적어일 때는 이러한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즉, 두 음절 이상의 목적어는 강조하기 위해 목적어를 술어보다 앞에 쓰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善事須貪, 惡事莫樂'에서도 見善, 聞惡은 술목 관계지만, 善事, 惡事는 술어 앞에다 쓰고 있다. 단, 목적절을 받을 때는 영어의 어순과 마찬가지로 “술어+목적절”의 어순이 된다.

 

馬援曰, 終身行善(종신행선), 善猶不足(선유부족), 一日行惡(일일행악), 惡自有餘(악자유여).

마원이(馬援) 말하기를(曰), 종신토록(終身) 선을(善) 행하더라도(行), 선이(善) 오히려(猶) 부족하고(不足) , 하루라도(一日) 악을(惡) 행하면(行), 악이(惡) 저절로(自) 남음(餘)이 있다(有).

  • 終身(종신)은 “몸을 마친다. 죽는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관용구이다.
  • 猶는 ① 일반적으로 ‘오히려’라고 해석하는 부사이다. ‘여전히’, ‘또한’, ‘아직도’ 등으로 해석하면 좋으며 ‘오히려’ 尙과 뜻이 일치한다. 例) “今君은 雖終이나 言猶在耳니라: 지금 임금은 비록 죽었지만, 말은 아직도 귓가에 있다. 《左傳》〈文公 七年〉 ② ‘猶’가 ‘오히려’의 의미일 때를 보자. 추론을 이끌어 내고, 부사절에서는 주어 뒤에 쓰이며 주어절 곧 正句에서는 ‘况(하물며)’이나 ‘安(어찌)’과 서로 호응한다. 이때 ‘오히려’, ‘또한’이라고 해석하는데, ‘尙’과 같다. 例) “臣之壯也에도 猶不如人이었는데 今老矣라 無能爲也已이니라 : 내가 젊었을 때도 오히려 남만 못했는데, 지금은 늙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左傳》 〈僖公 三十年〉 ③ ‘猶’의 용례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와 같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例) “文猶質也며 質猶文也니 虎豹之鞹이 猶犬羊之鞹이니라: 文이 質과 같으며 質이 文과 같은 것이니, 호랑이와 표범의 털 없는 가죽이 개와 양의 털 없는 가죽과 같은 것이다.”《論語》〈顔淵 八章〉“子貢問師與商也는 孰賢이니잇고 子曰, 師也는 過하고 商也는 不及이니라 曰 然則師愈與잇가 子曰 過猶不及이니라: 子貢이 ‘子張(師)과 子夏(商)는 누가 낫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子張은 지나치고, 子夏는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자공이〉 ‘그렇다면 子張이 낫습니까?’ 하자, 공자는 말하기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하였다.”《論語》 〈先進 十五章〉

 

司馬溫公曰, 積金以遺子孫(적금이유자손), 未必子孫能盡守(미필자손능진수), 積書以遺子孫(적서이유자손), 未必子孫能盡讀(미필자손이진독), 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불여적음덕이명명지중), 以爲子孫之計(이위자손지계).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하기를(曰), 금을(金) 쌓아서(積) 그것으로(以) 자손에게(子孫) 남기면(遺), 반드시(必) 자손이(子孫) 다(盡) 지킬(守) 수(能) 있지 않고(未), 책을(書) 쌓아서(積) 그것으로(以) 자손에게(子孫) 남기면(遺), 반드시(必) 자손이(子孫) 다(盡) 읽을(讀) 수(能) 없고(未), 명명한(冥冥之,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中) 음덕을(陰德) 쌓아서(積), 그것으로(以) 자손의(子孫之) 계책(計)을 삼는(爲) 것이 낫다(不如).

  • 積金以遺子孫: 以는 명사(구)를 앞 또는 뒤에서 받아 “~로서”의 뜻이고, 명사절 다음에 以가 오면 “~하므로써”의 뜻으로 굳이 우리말로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以다음에 명사절이 오면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유”를 나타내어 “~하기 때문에, ~하여서”의 뜻이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以+명사(구), 명사(구)+以”는 “~로서”의 뜻으로 자격을 나타내고, “명사절+以”는 “~함으로써, ~하여서”의 뜻으로 앞 문장을 뒷문장에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以+명사절”은 “~하기에, ~하므로, ~하기 때문에” 등등의 뜻으로 “이유”를 나타낸다.
  • 未必子孫能盡守: 必은 부사로서 ‘꼭 ~할 것이다’ 또는 ‘반드시 ~하려 한다’는 결연한 의지나 확정을 나타낼 때 쓰이고, 未必은 ‘꼭 ~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하는 것은 아니다’는 의미로 부분 부정을 나타낸다.
    盡은 ①(술어) 다할 진, ②(부사 또는 대명사)다 진, 모두 진의 뜻이다. 여기서는 부사로 ②의 뜻이다. ②의 뜻으로 쓰일 때 盡은 부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술어 앞에서 쓰인다. 즉, '盡+명사'는 '~을 다하다'로 ①의 뜻이고, '盡+술어'는 '모두 ~하다. 다 ~하다'로 ②의 뜻으로 부사 또는 대명사이다.
  • 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 '不如'는 ① ‘차라리 ~하는 게 낫다’의 의미로 해석한다. 例) “齊人有言曰 雖有智慧나 不如乘勢하고 雖有鎡基나 不如待時이니라: 제나라 사람의 속담에 ‘비록 지혜가 있으나 차라리 권력에 편승하는 게 낫고, 비록 호미가 있더라도 때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라고 했다.”《孟子》 〈公孫丑章句 上 一章〉 ② ‘A不如B’는 ‘A는 B만 못하다’의 의미이다. ①의 의미와 軌를 같이 하는 것으로 부정 부사 ‘不’과 동사 ‘如’가 이어져 쓰인다.(현대의 중국어에서도 마찬가지다.) 例) “斯自以爲不如非이니라: 李斯는 스스로 자신을 韓非만 못하다고 생각하였다.”《史記》 〈老莊申韓列傳〉) “我不如他이니라: 나는 그만 못하다.” ③ 不如는 不若과 그 쓰임새가 비슷하다.
  • 以爲子孫之計: 爲는 ①할 위, ②위할 위, ③될 위, ④'~로 삼다. ~로 여기다. ~로 생각하다'의 주로 4가지 뜻이 있고 여기서는 ④의 뜻으로 쓰였다. ④의 뜻으로 쓰일 때는 또한 일반적으로 以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즉, “以A爲B”는 'A로서 B로 여기다'의 뜻으로, “A를 B로 삼다. 여기다”의 뜻이다. 마지막 문장의 “以爲子孫之計”에서 위의 해석과는 달리 “以爲”를 한 단어로 보아도 된다. 즉, 以爲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굳어져서 “~으로 여기다, ~으로 생각하다, ~으로 삼다”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以爲”는 한 단어로 쓰인다.

 

景行錄曰(경행록왈), 恩義廣施(은의광포), 人生何處不相逢(인생하처불상봉), 讐怨莫結(수원막결), 路逢狹處難回避(로봉협처난회피).

경행록에(景行錄) 이르기를(曰), 은혜와(恩) 의리(義)를 널리(廣) 베풀면(施), 사람이(人) 어느(何) 곳에(處) 살든(生) 서로(相) 만나지(逢) 않겠는가(不), 원수와(讐) 원한을(怨) 맺지(結) 말아라(莫), 길가다(路) 좁은 곳(狹處)에서 만나면(逢) 피하기(回避) 어렵다(難).

  • 人生何處不相逢: '生'은 '살다'는 뜻의 동사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디에선가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라는 직역도 괜찮겠다.
  • 路逢狹處難回避: '難+술어~'는 '~하기 어렵다', '易(이)+술어'는 '~하기 쉽다'로 해석한다. '路逢狹處'는 “길가다 좁은 곳에서 만나다”로 직역할 수 있다. 

 

莊子曰, 於我善者我亦善之(어아선자아역선지), 於我惡者我亦善之(어아오자아역선지), 我旣於人無惡(아기어인무오), 人能於我無惡哉(인능어아무오재).

장자가(莊子) 말하기를(曰), 나에게(於我) 선하게 하는(善) 사람은(者) 나(我) 또한(亦) 그에게 선하게 하고(善之), 나에게(於我) 악하게(惡) 하는 사람에게도(者) 나(我) 또한(亦) 그에게(之) 선하게 하고(善), 내가(我) 이미(旣) 남에게(於人) 악하게 함이(惡) 없으면(無), 남이(人) 나에게(於我) 악하게 함이(惡) 없을(無) 것이다(哉).

  • 我旣於人無惡: 일이 완성되었거나 시간이 흘러감의 의미를 포함하는 動詞性의 부사이다.‘이미’, ‘이후에’, ‘마치다’, ‘완성했다’의 의미로 쓰인다.

 

東岳聖帝垂訓曰(동악성제수훈왈), 一日行善(일일행선), 福雖未至(복수미지), 禍自遠矣(화자원의). 一日行惡(일일행악), 禍雖未至(화수미지), 福自遠矣(복자원의). 行善之人(행선지인), 如春園之草(여춘원지초), 不見其長(불견기장), 日有所增(일유소증). 行惡之人(행악지인), 如磨刀之石(여마도지석), 不見其損(불견기손), 日有所虧(일유소휴).

동악성제(東岳聖帝)가 교훈을(訓) 내려(垂) 말하기를(曰), 하루라도(一日) 선을(善) 행하면(行), 복이(福) 비록(雖) 이르지 않아도(未至), 화가(禍) 저절로(自) 멀어진다(遠矣). 하루라도(一日) 악을(惡) 행하면(行), 화가(禍) 비록(雖) 이르지 않아도(未至), 복이(福) 저절로(自) 멀어진다(遠矣). 선을(善) 행하는(之) 사람은(人), 봄(春) 동산의(園之) 풀과(草) 같고(如), 그(其)의 자라남(長)을 보지( ) 못해도(不), 날마다(日) 늘어나는(增) 것(所)이 있다(有). 악(惡)을 행하는(之) 사람(人)은, 칼을 가는(磨刀之) 돌(石)과 같아서(如), 그(其)의 줄어듬(損)을 보지(見) 못해도(不), 날마다(日) 이지러지는(虧) 것(所)이 있다(有).

  • 禍自遠矣: 矣(의)는 평서문의 종결형 어조사로 주로 단정, 결과, 확정 등의 뜻을 내포하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때 쓰이는 종결형 어조사이다. 也도 똑같은 종결형 어조사이지만, 也에는 矣에서와 같은 단정, 결과, 확신의 뜻이 약하고 단순히 평서문의 종결을 나타낼 뿐이다.
  • 不見其長: 其는 주격 또는 소유격 대명사로 쓰인다. 여기서는 其가 春園之草를 받는 대명사이고 주격 또는 소유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위에서는 소유격의 뜻으로 해석했다.

 

子曰, 見善如不及(견선여불급), 見不善如探湯(견불선여탐탕).

공자가(子) 말하기를(曰), 선을(善) 보기를(見) 미치지 못할(不及) 것처럼(如) 하고, 불선을 보기를(見不善) 끓은 물(湯)을 뒤지는(探) 것처럼(如) 해라. 

  • 見不善如探湯: 見善如不及에서 之를 붙여 見善如不及之라 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어조사 之는 “不+술어+之”의 형태로는 대체로 쓰이지 않는다(쓰이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쓰이지 않음). “不+술어+之”의 구문은 어세(語勢)가 좋지 못하고 어조(語調)가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한 어감을 주기 위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之를 쓰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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