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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입문/명심보감(明心寶鑑)

[명심보감(明心寶鑑) 5a] 정기편(正己篇) / 성리서운 견인지선이추기지선(性理書云, 見人之善而尋己之善,)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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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理書云, 見人之善而尋己之善(견인지선이추기지선), 見人之惡而尋己之惡(견인지악이추기지악), 如此方是有益(여차방시유익).

성리서에(性理書) 이르기를(云), 남의(人之) 좋은 점(善)을 보면(而) 자기의(己之) 좋은 점(善)을 찾고(尋), 남의(人之) 나쁜 점(惡)을 보면(而) 자기의(己之) 나쁜 점(惡)을 찾으면(尋), 이와 같으면(如此) 바야흐로(方) 이것에(是) 유익함이(益) 있다(有).

  • 如此方是有益: '方'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바로’ 그 시점을 말하기 때문에 ‘바야흐로’, ‘비로소’로 해석하면 된다.
  • 如此方是有益: 是는 ①옳을 시. ②(지시대명사 또는 지시형용사) 이 시. ③(술어) “~이다”(be동사). 등등 주로 3가지의 뜻이 있다. 是가 지시대명사로 쓰일 경우에 문장의 주어로는 거의 쓰지 않고, 주로 목적어로서의 지시대명사로 사용된다. 주어로 쓰이는 지시대명사는 주로 此가 쓰이고 是는 쓰이지 않는다. 또한 是는 지시대명사․지시형용사로 뿐만 아니라, 술어로서 ③의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현대 중국어에서 是는 ②의 뜻으로는 전혀 쓰이지 않고 ③의 뜻으로만 쓴다. 예를 들면 “我是韓國人”하면 “나는 한국인이다”의 뜻이다. 또 중요한 것은 是의 주어는 문맥상 분명하면 그 주어를 굳이 써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의 문장에서도 “是有益”의 주어는 앞 문장 “見人之善而尋己之善,見人之惡而尋己之惡”이며 이는 문맥상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에 是의 주어를 생략한 것이다. 문맥상 주어가 분명하면 주어가 생략된다는 것을 모르고 흔히 이 술어로 쓰인 是자를 마치 지시대명사로서의 주어인 “이것은, 이는” 등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의역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말의지시대명사인 “이것”이란 말을 붙여준 것 뿐이지, 是가 지시대명사로 쓰여서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아니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論語, 學而篇)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여기서도 是는 술어로서 “~이다”의 뜻이며, 지시대명사로서 주어인 “이것이”의 뜻이 아니다. 주어는 문맥상 분명하므로 굳이 써주지 않은 것이다. 만약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을 한다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가 될 것이다.
    過而不改是謂過矣(論語, 衛靈公篇) [“잘못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일러 잘못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是는 술어로 “~이다”의 뜻이며, 주어는 문맥상 분명하므로 굳이 “此”와 같은 주어를 붙여 “此是謂過矣”라 하지 않고 생략된 것이며, 이때 是의 보어는 명사구가 아닌, 서술절로서 “謂過”인 것이다. 위의 문장을 역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을 한다면,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이 바로 허물을 말한다”가 되지만, 우리말로 어색하므로 위와 같이 번역한다. 

 

景行錄云, 大丈夫(대장부), 當容人(당용인), 無爲人所容(무위인소용).

경행록에(景行錄) 이르기를(云), 대장부(大丈夫)는, 마땅히(當) 남을(人) 용서하고(容, 품어주고), 남이(人) 용서하는(容) 것(所)을 당하지(爲) 말아라(無).

  • 無爲人所容: 이 글은 피동구문이다. 곧 ‘爲A所B’ 구조의 문장으로, ‘A에게 B하는 것이 되다’, ‘A에게 B를 당하다’로 해석한다. 

 

曰, 勿以貴己而賤人(물이귀기이천인), 勿以自大而蔑小(물이자대이멸소), 敵(물이시용이경적).

태공(太公)이 말하기를(曰), 자기를(己) 귀하에 여김(貴)으로써(而) 남을(人) 천하게 여기지(賤) 말고(勿), 자기를(自) 크게 여김(大)으로써(而) 작은 것(小)을 멸시하지(蔑) 말고(勿), 용맹을(勇) 믿음(恃)으로써(而) 적을(敵) 가벼이 여기지(輕) 말라(勿).

 

曰, 失(문인지과실), 如名(여문부모지명), 聞(이가득문), 也(구불가언야).

마원이(馬援) 말하기를(曰), 남의(之) 잘못을(失) 들으면(聞), 부모의(之) 이름(名)을 들은(聞) 것처럼(如)하고, 귀가(耳) 들을(聞) 수 있으나(得), 입이(口) 말할(言) 수 없다(不可-也).

  • 如聞父母之名: '如'는 ‘마치 ~처럼 하다’라는 조동사로 부사성 조동사다.  '如'의 쓰임은 
    ① 접속사로서 대체로 ‘如 ~(則)’의 형태로 쓰이는데,‘만일 ~한다면’으로 해석한다. 例) “如或知爾면 則何以哉오: 만약 누가 너희들을 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論語》〈先進 十五章〉
    ② 접속사로서 ‘若’과 통하고 선택이나 병렬을 나타내는데, ‘혹은’, ‘또는’,‘과(와)’로 해석한다. 例) “求아 爾는 何如오 對曰 方六七十과 如五六十에 求也爲之면 比及三年하여 可使足民이어니와 如其禮樂엔 以俟君子하리이다 : ‘求야!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자, 대답하기를, ‘사방 6,70里, 혹은 50~60리 쯤 되는 〈작은〉 나라를 제가 다스릴 경우, 3년에 이르면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거니와 그 禮樂으로 말하면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 하였다.”《論語》〈先進 二十五章〉
    ③ 상태 형용사 뒤에 놓여 ‘然’과 같은 역할을 한다.“孔子於鄕黨에 恂恂如也하사 似不能言者러시다: 공자는 향당에서 信實히 하여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처럼 하였다.”《論語》〈鄕黨 一章〉
    ④ ‘가다’의 의미로 쓰인다. “文公如齊하고 惠公如秦하다: 문공은 제나라로 갔고 혜공은 진나라로 갔다.”《春秋左傳》〈成公 十三年〉

 

康節邵先生曰, 聞人之謗未嘗怒(문인지방미상노), 聞人之譽未嘗喜(문인지예미상희), 聞人言人之惡未嘗和(문인언인지악미상화), 聞人言人之善(문인언인지선), 則就而和之(즉취이화지), 又從而喜之(우종이희지). 

소강절(康節邵) 선생이(先生) 말하기를(曰), 남의(人之) 헐뜯음(謗)을 듣고(聞) 일찍이(嘗) 노여워하지(怒) 않고(未), 남의(人之) 칭찬을(譽) 듣고(聞) 일찍이(嘗) 기뻐하지(喜) 않고(未), 남이(人) 남의 악을(人之惡) 말하는(言) 것을 들으면(聞) 일찍이(嘗) 어울리지 않고(和), 남이(人) 남의 선을(人之善) 말하는(言) 것을 듣는다면(, 則) 나아가서(就而) 그와 어울리고(和之), 또(又) 따라서(從而) 그것을 기뻐해야(喜之) 한다.

  • 聞人之謗未嘗怒: '未嘗'은 ‘曾經’(진작 ~한 적이 있다)의 부정이다. 동사 앞에 쓰이고 ‘없다’, ‘일찍이 ~한 적이 없다’로 해석한다. “晉平公之於亥唐也에 入云則入하고 坐云則坐하고 食云則食하고 雖疏食(사)菜羹이라도 未嘗不飽하니라 : 晉平公이 亥唐(晉나라 賢人)에 대하여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가고 앉으라고 하면 앉고 먹으라고 하면 먹어서,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일찍이 먹지 않은 적이 없었다.” 《孟子》〈萬章章句 下 三〉

 

故其詩曰(고기시왈), 樂見善人(락견선인), 樂聞善事(락문선사), 樂道善言(락도선언), 樂行善意(락행선의), 聞人之惡如負芒刺(문인지악여부망자), 聞人之善如佩蘭蕙(문인지선여패난혜).

그러므로(故) 그(其) 시에(詩) 이르기를(曰), 선한 사람(善人) 보기를(見) 즐기고(樂), 선한 일(善事) 듣기를(聞) 즐기고(樂), 선한 말(善言) 하기를(道) 즐기고(樂), 선한 뜻(善意) 행하기를(行) 즐기고(樂), 남의(人之) 악한 점(惡)을 들으면(聞) 가시를(芒刺) 등에 진(負) 것처럼(如) 하고, 남의(人之) 좋은 점(善)을 들으면(聞) 난초(蘭蕙)를 몸에 찬(佩) 것처럼(如)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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