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공손추하(公孫丑下) 13]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 / 부예색장(충우로문장)[不豫色章(充虞路問章)] / 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15.
반응형

孟子去齊(맹자거제). 充虞路問曰(충우로문왈): “夫子若有不豫色然(부자약유불예색연). 前日虞聞諸夫子曰(전일우문저부자왈): ‘君子不怨天(군자불원천), 不尤人(불우인).’”

맹자가(孟子) 제나라를(齊) 떠났다(去). 충우가(充虞) 길에서(路) 물어 말하기를(問曰): “선생님이(夫子) 기쁘지 않은(不豫) 얼굴빛이(色) 있는(有) 듯 합니다(然). 지난날(前日) 우가(虞) 그것(諸)을 들었는데(聞) 선생님이(夫子) 말하기를(曰): ‘군자는(君子) 하늘을(天) 원망하지 않고(不怨), 남을(人) 탓하지 않는다(不尤).’”

  • 若有不豫色然: '若~然'은 '~인 듯하다, ~과 같다'라고 하는 말이다. 
  • 聞諸夫子: '諸'는 '之於'의 준말이고, '之'는 뒤에 나오는 맹자의 말을 받는다.

路問, 於路中問也. 豫, 悅也. 尤, 過也. 此二句實孔子之言, 蓋孟子嘗稱之以敎人耳.

노문(路問)은, 길 가는(路) 중(中)에(於) 물음이다(問也). 예(豫)는, 기뻐함이다(悅也). 우(尤)는, 탓함이다(過也). 이(此) 두(二) 구절이(句) 실제로는(實) 공자의(孔子之) 말이고(言), 아마도(蓋) 맹자가(孟子) 일찍이(嘗) 그것(之)을 칭(언급)(稱)하고 그것으로(以) 사람을(人) 가르쳤을(敎) 것이다(耳).

 

曰: “彼一時(피일시), 此一時也(차일시야).

말하기를: 그것(彼, 전일)도 한(一) 때이고(時), 이것(此)도 한(一) 때이다(時也).

 

彼, 前日. 此, 今日.

피(彼)는, 지난날이다(前日). 차(此)는, 지금이다(今日).

 

五百年必有王者興(오백년필유왕자흥), 其間必有名世者(기간필유명세자).

오백 년(五百年)이면 반드시(必) 왕 노릇 하는 사람(王者)이 일어남(興)이 있고(有), 그(其) 사이에(間) 반드시(必) 세상에(世) 이름난(名) 사람(者)이 있다(有).

 

自堯舜至湯, 自湯至文武, 皆五百餘年而聖人出. 名世, 謂其人德業聞望, 可名於一世者, 爲之輔佐. 

요순으로(堯舜)부터(自) 탕임금에(湯) 이르기까지(至), 탕임금(湯)으로부터(自) 문왕과 무왕에(文武) 이르기까지(至), 모두(皆) 오백(五百)하고 해(年)가 남았고(餘而) 성인이(聖人) 나왔다(出). 명세(名世)는, 그(其) 사람의(人) 덕업(德業)과 명성(聞望)이, 한(一) 세대(世)에(於) 이름날(名) 만한(可) 사람(者)이, 그를(之) 보좌(輔佐) 함(爲)을 말한다(謂). 

 

若皐陶ㆍ稷ㆍ契ㆍ伊尹ㆍ萊朱ㆍ太公望ㆍ散宜生之屬.

도고(皐陶), 직(稷), 계(契). 이윤(伊尹), 내주(萊朱), 태공망(太公望), 산의생(散宜生) 같음(若)의(之) 무리다(屬).

 

由周而來(유주이래), 七百有餘歲矣(칠백유여세의). 以其數則過矣(이기수즉과의), 以其時考之則可矣(이기시고지즉가의).

주나라로부터(由周) 이래로(而來), 칠백(七百)하고 해가(歲) 남음(餘)이 있다(矣). 그(其) 수(數)로써(以) 라면(則) 지났고(過矣), 그(其) 때(時)로써(以) 그것을(之) 살피면(則) 가능하다(可矣).

  • 七百有餘歲矣; 직역하면 '칠백하고 남은 해를 가졌다'가 되므로 칠백 년이 지났다는 말이다. 

 

周, 謂文武之間. 數, 謂五百年之期. 時, 謂亂極思治可以有爲之日. 於是而不得一有所爲, 此孟子所以不能無不豫也.

주(周)는, 문왕과 무왕의(文武之) 사이(間)를 말한다(謂). 수(數)는, 오백 년(五百年)의(之) 기간(期)을 말한다(謂). 시(時)는, 혼란(亂)이 지극하면(極) 다스려질(治) 것을 생각하고(思) 훌륭한 일을 할(有爲) 수(可以) 있는(之) 날(日)을 말한다(謂). 이것이(是) 있는데도(於而) 할 것(所爲)이 하나도(一)있지(有) 않으니(不得), 이것이(此) 맹자가(孟子) 기뻐하지 않음이(不豫) 없을(無) 수 없는(不能) 까닭이다(所以-也).

 

夫天(부천), 未欲平治天下也(미욕평치천하야); 如欲平治天下(여욕평치천하), 當今之世(당금지세), 舍我其誰也(사아기수야)? 吾何爲不豫哉(오하위불예재)?”

저(夫) 하늘(天)이, 천하를(天下) 평화롭게(平) 다스리려(治) 하지(欲) 않음이고(也); 만일(如) 천하를(天下) 평안하게(平) 다스리려(治) 한다면(欲), 지금(當今之) 세상에서(世), 그(其) 누가(誰) 나를(我) 버리겠는가(也)? 내가(吾) 무엇(何) 때문에(爲) 기뻐하지 않겠는가(不豫哉)?”

  • 吾何爲不豫哉: '何爲'는 원래 '爲何'인데 의문사가 전치사 앞으로 갔다. '爲'는 '~때문'이란 뜻이다. 

 

○ 言當此之時, 而使我不遇於齊, 是天未欲平治天下也. 然天意未可知, 而其具又在我, 我何爲不豫哉? 

이(此之) 때(時)를 당하여(當, 而) 나(我)로 하여금(使) 제날에서(於齊) <뜻이> 맞지 않게(不遇) 한 것이, 이것이(是) 하늘이(天) 천하를(天下) 평안하게(平) 다스리려(治) 하지(欲) 않음이다(未也). 그러나(然) 하늘의(天) 뜻(意)을 알(知) 수 없지만(未可, 而) 그(其) 도구(具)가 또(又) 나에게 있으므로(在我), 내가(我) 무엇 때문에(何爲) 기뻐하지 않겠는가(不豫哉)하는 말이다(言).

 

然則孟子雖若有不豫然者, 而實未嘗不豫也. 蓋聖賢憂世之志, 樂天之誠, 有並行而不悖者, 於此見矣.

그렇다면(然則) 맹자(孟子)가 비록(雖) 기쁘지 않은 기색이(不豫然) 있는(有) 것(者) 같지만(若, 而) 실제로(實) 일찍이(嘗) 기뻐하지 않은(不豫) 것이 아니다(未也). 대체로(蓋) 성현이(聖賢) 세상을(世 걱정하는(憂之) 뜻(志)과, 하늘을 즐기는(樂天之) 정성이(誠), 함께(並) 가고(行而) 거스르지 않는(不悖) 것(者)이 있음(有)을, 이것에서(於此) 본다(見矣).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