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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공손추하(公孫丑下) 12] 맹자가 제나라를 떠났다 / 삼숙이후출주장(윤사어인장)[三宿而後出晝章(尹士語人章)]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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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去齊(맹자거제). 尹士語人曰(윤사어인왈): “不識王之不可以爲湯武(불식왕지불가이위탕무), 則是不明也(즉시불명야); 識其不可(식기불가), 然且至(연차지), 則是干澤也(즉시간택야). 

맹자가(孟子) 제나라를(齊) 떠났다(去). 윤사(尹士)가 사람들에게(人) 말하기를(曰): “왕이(王之) 탕임금이나 무왕이(湯武) 될(爲) 수 없음을(不可以) 알지(識) 못했다면(, 則) 이것은(是) 현명하지 않음이고(不明也); 그(其) 불가함(不可)을 알았고(識), 그러나(然) 또(且) 왔다면(至, 則) 이것은(是) 은택을(澤) 구함이다(也). 

  • 不識王之不可以爲湯武: '王之不可以爲湯武'는 '不識'의 목적어절이다. 절이 '주어+동사'의 구조이므로 목적어절을 표시하는 주격조사 '之'가 들어갔다.

 

千里而見王(천리이현왕), 不遇故去(불우고거). 三宿而後出晝(삼숙이후출주), 是何濡滯也(시하유체야)? 士則茲不悅(사즉자불열).”

천 리를 와서(千里而) 왕을 보고(見王), <뜻이> 맞지 않아(不遇) 그러므로(故) 떠났다(去). 세 밤(三)을 자고(宿) 나서야(而後) 주읍에서(晝) 나갔으니(出), 이것이(是) 무슨(何) 지체함인가(濡滯也)? 사라면(士則) 이것(茲)을 기뻐하지 않는다(不悅).”

  • 千里而見王: '而'는 술어와 술어를 연결하는 접속사이므로 '千里'를 서술어로 보고 '천 리를 오다'로 해석한다. 

 

○ 尹士, 齊人也. 干, 求也. 澤, 恩澤也. 濡滯, 遲留也.

윤사(尹士)는, 제나라(齊) 사람이다(人也). 간(干)은, 구함이다(求也). 택(澤)은, 은택이다(恩澤也). 유체(濡滯)는, 더디고(遲) 멈춤이다(留也).

 

高子以告. (고자이고)

고자가(高子) 이것으로(以) 고했다(告).

 

高子, 亦齊人, 孟子弟子也.

고자(高子)는, 또한(亦) 제나라(齊) 사람으로(人), 맹자(孟子) 제자다(弟子也).

 

曰: “夫尹士惡知予哉(부윤사오지여재)? 千里而見王(천리이견왕), 是予所欲也(시여소욕야); 不遇故去(불우고거), 豈予所欲哉(기여소욕재)? 予不得已也(여부득이이야).

말하기를: 저(夫) 윤사(尹士)가 어찌(惡) 나를(予) 알겠는가(哉)? 천 리를 와서(千里而) 왕을 본(見王) 것이, 이것이(是) 내가(予) 바란(欲) 것(所)이고(也); <뜻이> 맞지 않아(不遇) 그러므로(故) 떠나는(去) 것이,  어찌(豈) 내가(予) 바란(欲) 것(所)이겠는가(哉)? 내가(予) 어쩔 수 없었다(不得已也).

 

○ 見王, 欲以行道也. 今道不行, 故不得已而去, 非本欲如此也.

견왕(見王)은, 欲그것으로(以) 도를 행하고자(行道) 함이다(欲也). 지금(今) 도가(道) 행해지지 않고(不行), 그러므로(故) 어쩔 수 없이(不得已而) 떠나니(去), 본래(本) 이와 같기를(如此) 바란(欲) 것이 아니다(非也).

 

予三宿而出晝(여삼숙이출주), 於予心猶以爲速(어여심유이위속). 王庶幾改之(왕서기개지), 王如改諸(왕여개저), 則必反予(즉필반여).

내가(予) 세 밤(三)을 자고(宿而) 주읍을(晝) 출발한(出) 것이, 내 마음(予心)에는(於) 오히려(猶) 빠르게(速) 여겨진다(以爲). 왕이(王) 거의(庶幾) 그것을 고쳤고(改之), 왕이(王) 만일(如) 그것을(諸) 고친다면(, 則) 반드시(必) 나를(予) 돌아오도록(反) 할 것이다.

  • 王庶幾改之, 王如改諸: '庶幾'는 '아마도, 부디, 거의, 가깝다' 등의 뜻이다. '諸'는 '之'와 같다. (맹자로 문리나기, 임옥균)
    성백효 번역에 따르면 '王庶幾改之'를 '왕이 행여 고치시기를 바라니'라고 했는데, 문맥에는 더 잘 어울리지만 어떻게 해석한 건지 알 길이 없다. 

 

所改必指一事而言然今不可考矣.

고친 것(所改)이 반드시(必) 하나의(一) 일(事)을 가리키고(指而) 말했는데(言), 그러나(然) 지금(今) 상고할(考) 수 없다(不可矣).

 

夫出晝而王不予追也(부출주이왕불여추야), 予然後浩然有歸志(여연후호연유귀지). 予雖然(여수연), 豈舍王哉(기사왕재)?

무릇(夫) 주읍(晝)을 나가고서(而) 왕이(王) 나를(予) 뒤쫓지(追) 않았으니(也), 내가(予) 그 뒤에야(然後) 확실하게(浩然) 돌아갈(歸) 뜻(志)을 가졌다(有). 내가(予) 비록(雖) 그렇더라도(然), 어찌(豈) 왕을(王) 버리겠는가(舍-哉)?

  • 王不予追也: 부정어와 서술어 사이에 대명사 목적어가 도치된 문장이다. '王不追予也'가 원래 문장이다. 

 

王由足用爲善(왕유족용위선). 王如用予(왕여용여), 則豈徒齊民安(즉기도제민안), 天下之民擧安(천하지민거안). 王庶幾改之(왕서기개지), 予日望之(여일망지).

왕이(王) 오히려(由) 선(善)을 할(爲) 수(足用) 있다. 왕이(王) 만일(如) 나를 쓴다면(用予, 則) 어찌(豈) 다만(徒) 제나라(齊) 백성(民)만 편안하겠는가(安), 천하의(天下之) 백성이(民) 모두(擧) 편안할(安) 것이다. 왕이(王) 부디(庶幾) 그것을(之) 고치기를(改), 나는(予) 날마다(日) 그것을 바란다(望之).

  • 王由足用爲善: '由'는 '猶'와 같고, '用'은 '以'와 같다. 

 

浩然, 如水之流不可止也.

호연(浩然)은, 물의(水之) 흐름이(流) 그칠(止) 수 없는(不可) 것과 같다(如也).

 

○ 楊氏曰: “齊王天資朴實, 如好勇, 好貨, 好色, 好世俗之樂, 皆以直告而不隱於孟子, 故足以爲善. 

양씨가 말하기를: “제나라(齊) 왕의(王) 타고난 자질(天資)이 소박하고(朴) 성실하여(實), 용맹을 좋아하고(好勇), 재화를 좋아하고(好貨), 여색을 좋아하고(好色), 세속의 음악을(世俗之樂) 좋아하는(好) 것과 같음을(如), 모두(皆) 바로(以直) 일러주고(告而) 맹자에게(於孟子) 숨기지 않았으니(不隱), 그러므로(故) 선을(善) 하기에(爲) 충분하다(足以). 

 

若乃其心不然, 而謬爲大言以欺人, 是人終不可與入堯舜之道矣, 何善之能爲?”

만약(若乃) 그(其) 마음이(心) 그렇지 않은데도(不然, 而) 거짓으로(謬) 큰 소리(大言) 하고(爲) 그것으로(以) 사람을 속인다면(欺人), 이런(是) 사람은(人) 끝내(終) 더불어(與) 요순의 도에(堯舜之道) 들어갈(入) 수 없고(不可矣), 어찌(何) 선을(善之) 할 수 있겠는가(能爲)?”

 

予豈若是小丈夫然哉(여기약시소장부연재)? 諫於其君而不受則怒(진어기군이불수즉노), 悻悻然見於其面(행행연견어기면), 去則窮日之力而後宿哉(거즉궁일지력이후숙재)?”

내가(予) 어찌(豈) 이(是) 소장부(小丈夫)와 같겠는가(然哉)? 그 임금에게(於其君) 간하다가(而) 받아들이지 않으면(不受, 則) 노하고(怒), 화가 나서(悻悻然) 그 얼굴에(於其面) 보이고(見), 떠나면(去則) 하루를 다할 수 있는(窮日之) 힘을 써서(力) <간> 뒤에야(而後) 자겠는가(宿哉)?”

 

○ 悻悻, 怒意也. 窮, 盡也.

행행(悻悻)은, 성낸다는(怒) 뜻이다(意也). 궁(窮)은, 다함이다(盡也).

 

尹士聞之曰: “士誠小人也(사성소인야).”

윤사가(尹士) 그것을(之) 듣고(聞) 말하기를(曰): “사/내가(士) 진실로(誠) 소인이다(小人也).

 

此章見聖賢行道濟時, 汲汲之本心; 愛君澤民, 惓惓之餘意.

이(此) 장은(章) 성현이(聖賢) 도를 행하고(行道) 세상을 구하는(濟時),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는(汲汲之) 본심을(本心)과; 임금을 사랑하고(愛君) 백성을 윤택하게 하려는(澤民), 간절한(惓惓之) 남은(餘) 뜻(意)을 보여준다(見).

 

李氏曰: “於此見君子憂則違之之情, 而荷蕢者所以爲果也.”

이씨가 말하기를: 이것에서(於此) 군자가(君子) 걱정하면(憂則) 멀리 가는(違之之) 정(情)을 보고(見), 때문에(而) 해괴한(荷蕢) 사람이(者) 과감함이(果) 되는(爲) 것이다(所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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