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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등문공상(滕文公上) 2] 등나라 정공이 죽었다 / 등정공훙장(상례장)[滕定公薨章(喪禮章)]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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滕定公薨(등정공훙). 世子謂然友曰(세자위연우왈): “昔者孟子嘗與我言於宋(석자맹자상여아어어송), 於心終不忘(어심종불망). 今也不幸至於大故(금야불행지어대고), 吾欲使子問於孟子(오욕사자문어맹자), 然後行事(연후행사).”

등나라(滕) 정공이(定公) 죽었다(薨). 세자가(世子) 연우에게(然友) 일러 말하기를(曰): “예전에(昔者) 맹자와(孟子與) 내가(我) 일찍이(嘗) 송나라에서(於宋) 말한(言) 것이, 마음에서(於心) 끝내(終) 잊히지 않습니다(不忘). 지금(今也) 불행히도(不幸) 큰 일에(於大故) 이르렀으니(至), 내가(吾) 그대로 하여금(使子) 맹자에게(於孟子) 묻게 하고, 나서(然後) 일을(事) 행하려고(行) 합니다(欲).”

定公, 文公父也. 然友, 世子之傅也. 大故, 大喪也. 事, 謂喪禮.

정공(定公)은, 문공의(文公) 아비다(父也). 연우(然友)는, 세자의(世子之) 사부다(傅也). 대고(大故)는, 큰(大) 초상이다(喪也). 사(事)는, 상례(喪禮)를 말한다(謂).

 

然友之鄒問於孟子.

연우가(然友) 추나라에(鄒) 가서(之) 맹자에게(於孟子) 물었다(問).

 

孟子曰: “不亦善乎! 親喪固所自盡也. 曾子曰: ‘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 可謂孝矣.’ 諸侯之禮, 吾未之學也; 雖然, 吾嘗聞之矣. 三年之喪, 齊疏之服, 飦粥之食, 自天子達於庶人, 三代共之.”

맹자가 말하기를: “또한(亦) 착하지(善) 아니한가(不乎)! 어버이의(親) 상(喪)은 진실로(固) 자기를(自) 다할(盡) 것이다(也). 증자가 말하기를: ‘살아 계시면(生), 예로써(以禮) 그를 모시고(事之); 돌아가시면(死), 예로써(以禮) 그를 장사지내고(葬之), 예로써(以禮) 그를 제사지냄이(祭之), 효(孝)라고 할(謂) 수 있다(可矣).’ 제후의(諸侯之) 예는(禮), 내가(吾) 그것을(之) 배우지(學) 않았지만(也); 비록(雖) 그렇더라도(然), 내가(吾) 일찍이(嘗) 그것을 들었다(聞之矣). 삼년의(三年之) 상(喪)은, 제소(齊疏, 거친 베옷)을(之) 옷을 입고(服), 미음을(飦粥之) 먹음(食)이, 천자부터(自天子) 서인에(於庶人) 이르기까지(達), 삼대가(三代) 그것을(之) 같이 한다(共).”

  • 親喪固所自盡也: '所'는 동사를 명사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自'는 부사든 목적어든 항상 서술어 앞에 오는데, 여기서는 목적어로 썼다. '也'는 '~이다'라는 동사 역할을 대신한다.

 

○ 當時諸侯莫能行古喪禮, 而文公獨能以此爲問, 故孟子善之.

당시의(當時) 제후(諸侯) 중에 옛(古) 상례를(喪禮) 행할(行) 수 있는(能) 사람이 없고(莫, 而) 문공이(文公) 오직(獨) 이것으로(以此) 질문했으니(能爲問), 그러므로(故)_ 맹자가(孟子) 그것을(之) 좋게 여겼다(善).

 

又言父母之喪, 固人子之心所自盡者. 蓋悲哀之情, 痛疾之意, 非自外至, 宜乎文公於此有所不能自已也. 

또(又) 부모의(父母之) 상이(喪), 진실로(固) 자식의(人子之) 마음이(心) 스스로(自) 다해야 할(盡) 것이라는(所者) 말이다(言). 대체로(蓋) 슬픔의(悲哀之) 정(情)과, 애통한(痛疾之) 뜻(意)이, 바깥에서(自外) 오지(至) 않으니(非), 마땅히(宜) 여기에서(於此) 문공에게(乎文公) 스스로 그만둘(自已) 수 없는(不能) 것(所)이 있다(有也). 

 

但所引曾子之言, 本孔子告樊遲者, 豈曾子嘗誦之以告其門人歟? 三年之喪者,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다만(但) 증자의 말(曾子之言)을 인용한(引) 것(所)은, 본래(本) 공자가(孔子) 번지에게(樊遲) 일러준(告) 것인데(者), 아마도(豈) 증자가(曾子) 일찍이(嘗) 이것을 외워서(誦之) 그것으로(以) 그 문인에게(其門人) 일러준(告) 것인가(歟)? 삼면의(三年之) 상은(喪者), 자식이(子) 나와서(生) 3년이(三年) 지나고, 나서야(然後) 부모의(父母之) 품에서(於懷) 벗어남(免)이다. 

 

故父母之喪, 必以三年也. 齊, 衣下縫也. 不緝曰斬衰, 緝之曰齊衰. 疏, 麤也, 麤布也. 飦, 糜也. 

그러므로(故) 부모의(父母之) 상이(喪), 반드시(必) 그것 때문에(以) 삼년이다(三年也). 제(齊)는, 옷(衣) 아래의(下) 꿰맴이다(縫也). 꿰매지 않으면(不緝)참최(斬衰)라 하고(曰), 그것을 꿰매면(緝之) 제최(齊衰)라 한다(曰). 소(疏)는, 거침이니(麤也), 거친 삼베다(麤布也). 전(飦)은, 미음이다(糜也). 

 

喪禮: 三日始食粥. 旣葬, 乃疏食. 此古今貴賤通行之禮也.

상례에: 삼일(三日)이 되어 비로소(始) 죽을 먹고(食粥). 장례가 끝나고(旣葬), 비로소(乃) 거친 밥을 먹는다(疏食). 이것이(此) 고금(古今) 귀천(貴賤)에 통하는(通行之) 예다(禮也).

 

然友反命(연우반명), 定爲三年之喪(정위삼년지상). 父兄百官皆不欲(부형백관개불욕), 曰(왈): “吾宗國魯先君莫之行(오종국노선군막지행), 吾先君亦莫之行也(오선군역막지행야), 至於子之身而反之(지어자지신이반지), 不可(불가). 且志曰(차지왈): 喪祭從先祖(상제종선조).” 曰(왈): “吾有所受之也(오유소수지야).”

연우가(然友) 반명하고(反命), 삼년의 상을(三年之喪) 하기로(爲) 정했다(定). 부형과(父兄) 백관이(百官) 모두(皆) 하려고 하지 않고(不欲), 말하기를: “우리(吾) 종국(宗國) 노나라의(魯) 선군이(先君) 이것을 행한(之行) 사람이 없고(莫), 우리(吾) 선군(先君) 또한(亦) 이것을 행한(之行) 사람이 없으니(也), 그대의(子之) 몸에(身) 이르러서(而) 이것을 뒤집는(反之) 것은, 안됩니다(不可). 또한(且) 기록에(志) 말하기를: 초상과 제사는(喪祭) 선조를(先祖) 따른다(從) 했습니다.” 말하기를: “내가(吾) 그것을(之) 받은 곳이(所受) 있다(也).”

 

父兄, 同姓老臣也. 滕與魯俱文王之後, 而魯祖周公爲長. 兄弟宗之, 故滕謂魯爲宗國也. 

부형(父兄)은, 같은(同) 성(姓)의 늙은 신하다(老臣也). 등나라와(滕與) 노나라가(魯) 모두(俱) 문왕의(文王之) 후손이고(後, 而) 노나라(魯)의 조상이(祖) 주공이(周公) 맏이가 된다(爲長). 형제가(兄弟) 그를(之) 으뜸으로 삼았고(宗), 그러므로(故) 등나라가(滕) 노나라를(魯) 종국으로(宗國) 삼는다고(爲) 말했다(謂也). 

 

然謂二國不行三年之喪者, 乃其後世之失, 非周公之法本然也. 志, 記也, 引志之言而釋其意. 

그러나(然) 두 나라(二國)가 삼년의 상을(三年之喪) 행하지 않음(不行)을 말한(謂) 것(者)은, 바로(乃) 그(其) 후세의(後世之) 잘못이니(失), 주공의(周公之) 법이(法) 본래(本) 그렇지(然) 않다(非也). 지(志)는, 기록이며(記也), 기록의(志之) 말(言)을 인용하고(引而) 그(其) 뜻(意)을 풀었다(釋). 

 

以爲所以如此者蓋爲上世以來有所傳受雖或不同不可改也.

이처럼 한 까닭은(以爲所以如此者), 아마도(蓋) 윗세대(爲上世) 이래로(以來), 전수받은(傳受) 것(所)이 있고(有); 비록(雖) 혹(或) 같지 않더라도(不同), 고칠(改) 수 없다(不可也). 

 

然志所言, 本謂先王之世舊俗所傳, 禮文小異而可以通行者耳, 不謂後世失禮之甚者也.

그러나(然) 기록이(志) 말한 것이(所言), 본래(本) 선왕의(先王之) 세대의(世) 옛(舊) 풍속이(俗) 전해온 것으로(所傳), 예문이(禮文) 다소(小) 다르더라도(異而) 통행할(通行) 수 있는(可以) 것(者)일 뿐이라는(耳) 말로(謂), 후세에(後世) 예를 잃음이(失禮之) 심한(甚) 것(者)을 말하지 않는다(不謂也).

 

謂然友曰: “吾他日未嘗學問, 好馳馬試劍. 今也父兄百官不我足也, 恐其不能盡於大事, 子爲我問孟子.”

연우에게(然友) 일러 말하기를(曰): “내가(吾) 언젠가(他日) 일찍이(嘗) 학문을(學問) 하지 않고(未), 말달리기(馳馬)와 칼쓰기(試劍)를 좋아했다(好). 지금(今也) 부형과(父兄) 백관이(百官) 나를(我) 만족하게(足) 여기지 않으니(也), 그(其) 큰 일에(於大事) 다하지 못할까(不能盡) 염려스러우니(恐), 그대가(子) 나를 위하여(爲我) 맹자에게(孟子) 물어보라(問).”

 

○ 不我足, 謂不以我滿足其意也.

부아족(不我足)은, 내가(我) 그(其) 뜻(意)을 만족스럽게(滿足) 여기지(以) 않음(不)을 말한다(謂也).

 

然友復之鄒問孟子.

연우가(然友) 다시(復) 추나라에(鄒) 가서(之) 맹자에게(孟子) 물었다(問).

 

孟子曰: “然. 不可以他求者也. 孔子曰: ‘君薨, 聽於冢宰.’ 歠粥, 面深墨. 卽位而哭, 百官有司, 莫敢不哀, 先之也.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尙之風必偃. 是在世子.”

맹자가 말하기를: “그렇구나(然). 다른데서(他) 찾을(求) 것이(者) 아니다(不可以也). 공자가 말하기를: ‘임금이(君) 죽으면(薨), 총재에게(於冢宰) 듣는다(聽).’ 죽을(粥) 들이마시고(歠), 얼굴이(面) 매우(深) 검었다(墨). 자리(位)에 나아가(卽而) 곡하고(哭), 백관(百官)과 유사(有司)가, 감히(敢) 슬퍼허지 않는(不哀) 사람이 없음(莫)은, 그것(之)을 먼저함(先)이다(也). 윗사람(上)이 좋아하는 것(好者)이 있으면(有), 아랫사람(下)이 반드시(必) 그것보다(焉) 심한(甚) 것(者)이 있다(矣). 군자의(君子之) 덕은(德), 바람이고(風也); 소인의(小人之) 덕(德)은, 풀이다(草也). 풀에(草) 바람이(風) 더해지면(尙之) 반드시(必) 눕는다(偃). 이는(是) 세자에게(世子) 달렸다(在).”

  • 草尙之風必偃: '之'는 도치를 나타낸다. 원래 문장은 '風於草尙'인데, '草尙'을 강조해서 앞으로 내보내고 '於'를 생략했다. (맹자로 문리나기, 임옥균)

 

○ 然者, 然其不我足之言. 不可他求者, 言當責之於己. 冢宰, 六卿之長也. 歠, 飮也. 深墨, 甚黑色也. 卽, 就也. 尙, 加也. 

연(然)은(者), 然그(其) 나를(我) 만족스럽게(足) <여기지> 않았음(不之言. 다른 데서(他) 찾는(求) 것(者)이 불가함(不可)은, 마땅히(當) 나에게(於己) 그것을(之) 꾸짖는다는(責) 말이다(言). 총재(冢宰)는, 육경의(六卿之) 우두머리다(長也). 철(歠)은, 마심이다(飮也). 심묵(深墨)은, 매우(甚) 검은색이다(黑色也). 즉(卽)은, 나아감이다(就也). 상(尙)은, 더함이다(加也). 

 

『論語』作上, 古字通也. 偃, 伏也. 孟子言但在世子自盡其哀而已.

논어에(論語) 상으로(上) 되었는데(作), 옛 글자가(古字) 통한다(通也). 언(偃)은, 누움이다(伏也). 맹자가(孟子) 다만(但) 세자가(世子) 스스로(自) 그 슬픔을(其哀) 다함(盡)에 달렸을(在) 뿐이라고(而已) 말했다(言).

 

然友反命. 世子曰: “然. 是誠在我.” 五月居廬, 未有命戒. 百官族人可謂曰知. 及至葬, 四方來觀之, 顔色之戚, 哭泣之哀, 弔者大悅.

연우가(然友) 복명했다(反命). 세자가 말하기를: “그렇다(然). 이는(是) 참으로(誠) 나에게 달렸다(在我).” 5 개월(五月)을 오두막에 거처하고(居廬), 명령하고(命) 경계함이(戒) 있지 않았다(未有). 그러므로(可謂) 백관(百官)과 집안 사람이(族人) 지혜롭다(知)고 말했다(曰). 장례에 이르러서(及至葬), 사방에서(四方) 와서(來) 그를 보고(觀之), 얼굴빛을(顔色之) 슬프게 하고(戚), 곡하여 우는 것을(哭泣之) 슬프게 하니(哀), 조문하는 사람이(弔者) 크게 기뻐했다(大悅).

  • 未有命戒. 百官族人可謂曰知.: 일반적으로 '戒. 百'로 구두를 떼어 읽는다. 그러나 '百官族人'이 주어라면 '可'와 맞지 않는다. 보통 '可謂' 앞에 오는 구절은 주어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근거나 대상이 된다. '~라고 말할 수 있으니' 정도로 해석할 수 있고, 그 근거를 앞에 나오는 '五月居廬, 未有命戒.'으로 보고 해석할 수도 있다. (맹자로문리나기, 임옥균)

 

諸侯五月而葬, 未葬, 居倚廬於中門之外. 居喪不言, 故未有命令敎戒也. 可謂曰知, 疑有闕誤.

제후는(諸侯) 5 개월이(五月) 지나고(而) 장사지내고(葬), 장사지내지(葬) 않았을(未) 때, 중문의(中門之) 밖에(於外) 오두막(廬)에 의지해서(倚) 거처한다(居). 상을 지내는(居喪) 동안 말하지 않고(不言), 그러므로(故) 명령(命令)과 교계(敎戒, 가르침과 훈계)가 있지 않다(未有也). 가위왈지(可謂曰知)는, 빠지거나(闕) 잘못됨(誤)이 있다고(有) 의심된다(疑).

 

或曰: “皆謂世子之知禮也.”

누군가 말하기를: “모두가(皆) 세자가(世子之) 예를 안다고(知禮) 말했다(謂也).”

 

○ 林氏曰: “孟子之時, 喪禮旣壞, 然三年之喪, 惻隱之心, 痛疾之意, 出於人心之所固有者, 初未嘗亡也. 

“맹자의(孟子之) 시대에(時), 상례가(喪禮) 이미(旣) 무너졌고(壞), 그러나(然) 삼년의(三年之) 상(喪)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고, 애통한(痛疾之) 생각(意)은, 인심의(人心之) 고유한(固有) 것(所-者)에서(於) 나오므로(出), 애초에(初) 일찍이(嘗) 없어지지(亡) 않았다(未也). 

 

惟其溺於流俗之弊, 是以喪其良心而不自知耳. 

오직(惟) 그(其) 유속의(流俗之) 폐단(弊)에(於) 빠졌고(溺), 이때문에(是以) 그(其) 양심(良心)을 잃고(喪而) 스스로(自) 알지(知) 못했을(不) 뿐이다(耳). 

 

文公見孟子而聞性善堯舜之說, 則固有以啓發其良心矣, 是以至此而哀痛之誠心發焉. 

문공이(文公) 맹자(孟子)를 보고(見而) 성선과(性善) 요순의(堯舜之) 말(說)을 들었다면(聞, 則) 진실로(固) 그(其) 양심(良心)을 계발(啓發)할 수 있었고(有以矣), 이때문에(是以) 이때(此)에 이르러(至而) 애통해하는(哀痛之) 성심이(誠心) 거기에서(焉) 나왔다(發). 

 

及其父兄百官皆不欲行, 則亦反躬自責, 悼其前行之不足以取信, 而不敢有非其父兄百官之心. 

그(其) 부형(父兄)과 백관(百官)이 모두(皆) 행하기를(行) 바라지 않음(不欲)에 이르러서는(及, 則) 또한(亦) 자기에게 돌이켜(反躬) 스스로를(自) 꾸짖어(責), 그(其) 전의(前) 행동이(行之) 믿음을(信) 얻을(取) 수 없었음(不足以)을 슬퍼하고(悼 , 而) 감히(敢) 그(其) 부형과(父兄) 백관을(百官) 비난하는(非之) 마음이(心) 있지 않았다(不有). 

 

雖其資質有過人者, 而學問之力, 亦不可誣也. 

비록(雖) 그(其) 자잘이(資質) 남을(人) 뛰어넘는(過) 것이(者) 있지만(有, 而) 학문의(學問之) 공(力)이, 또한(亦) 속일(誣) 수 없다(不可也). 

 

及其斷然行之, 而遠近見聞無不悅服, 則以人心之所同然者, 自我發之, 而彼之心悅誠服, 亦有所不期然而然者. 人性之善, 豈不信哉?”

그(其) 단연코(斷然) 그것을(之) 행함(行)에 이르러서는(及, 而) 원근의(遠近) 보고 듣는(見聞) 사람이 기뻐하고 복종하지 않음이(不悅服) 없었으니(無, 則) 인심이(人心之) 같이(同) 그렇다고(然) 여기는 것(所-者)으로(以), 나로부터(自我) 그것을 드러내어(發之, 而) 저 사람이(彼之) 마음으로 기뻐하고(心悅) 진심으로 복종함이(誠服), 또한(亦) 그렇기를(然) 기약하지 않았는데(不期而) 그렇게 된(然) 것이(所-者) 있다(有). 人性之善, 豈不信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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