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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공손추하(公孫丑下) 2] 병이 있어 조회에 나갈 수 없습니다 / 맹자장조왕장[孟子將朝王章]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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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將朝王(맹자장조왕), 王使人來曰(왕사인래왈): “寡人如就見者也(과인여취견자야), 有寒疾(유한질), 不可以風(불가이풍). 朝將視朝(조장시조), 不識可使寡人得見乎(불식가사과인득견호)?”

맹자가(孟子) 장차(將) 왕을(王) 조회하려는데(朝), 왕이(王) 사람으로 하여금(使人) 와서(來) 말하기를(曰): “과인이(寡人) 마땅히(如) 나아가(就) 볼(見) 사람인데(者也), 감기가(寒疾) 있어(有), 바람을 쐴(以風) 수 없다(不可). 아침에(朝) 장차(將) 조회를(朝) 보니(視), 과인으로 하여금(使寡人) 볼 수(得見) 있도록(可) 할지 알지 못할까요(不識-乎)?”

  • 寡人如就見者也: '如'는 '當'과 같다. 직역하면 '과인이 마땅히 나갈 볼 사람'이라고 해석한다. 

 

○ 王, 齊王也.  왕은 제나라 왕이다.

 

對曰: “不幸而有疾(불행이유질), 不能造朝(불능조조).”

대답하여 말하기를: 불행히도(不幸而) 병이 있어(有疾), 조회에(朝) 나아갈(造) 수 없습니다(不能).

 

○ 孟子本將朝王, 王不知而託疾以召孟子, 故孟子亦以疾辭也.

맹자(孟子)가 본래(本) 장차(將) 왕을 조회하려(朝王) 했는데, 왕이(王) 알지 못하고(不知而) 병을 핑계로(託疾) 그것으로(以) 맹자를 불렀고(召孟子), 그러므로(故) 맹자(孟子) 또한(亦) 병으로(以疾) 사양했다(辭也).

 

明日, 出弔於東郭氏(명일 출조어동곽씨). 公孫丑曰: “昔者辭以病(석자사이병), 今日弔(금일조), 或者不可乎(혹자불가호)?”

다음날(明日), 나가서(出) 동곽씨에게(於東郭氏) 조문했다(弔). 공손추가 말하기를: “어제(昔者) 병으로써(以病) 사양했는데(辭), 오늘(今日) 조문함이(弔), 혹시라도(或者) 안될 것 같습니다(不可乎)?”

 

東郭氏, 齊大夫家也. 昔者, 昨日也. 或者, 疑辭.

동곽씨는(東郭氏), 제나라(齊) 대부(大夫) 집안이다(家也). 석은(昔者), 어제다(昨日也). 혹은(或者), 의문사다(疑辭).

 

曰: “昔者疾(석자질), 今日愈(금일유), 如之何不弔(여지하부조)?”

말하기를: 어제(昔者) 아팠고(疾), 오늘(今日) 나았으니(愈), 어찌(如之何) 조문하지 않겠는가(不弔)?

  • 之何不弔: '如之何'의 '之'는 앞에 나온 말을 받아서 '그것을 어찌할까?, 그것은 무엇인가'의 뜻이다. 하지만, '如之何+其+서술어' 또는 '如之何+서술어'로 쓰면, '之'가 허사로 '어찌(그렇게) ~하다'라는 뜻이다. (맹자로 문리 나기, 임옥균)

 

辭疾而出弔, 與孔子不見孺悲取瑟而歌同意.

병으로 사양하고(辭疾而) 조문을 나감은(出弔), 與공자가(孔子) 유비를(孺悲) 만나지 않고(不見) 슬을 취하여(取瑟而) 노래함(歌)과 같은(同) 뜻이다(意).

 

王使人問疾(왕사인문질), 醫來(의래). 孟仲子對曰: “昔者有王命(석자유왕명), 有采薪之憂(유채신지우), 不能造朝(불능조조). 今病小愈(금병소유), 趨造於朝(추조어조), 我不識能至否乎(아불식능지부호)?”

왕이(王) 사람을 시켜(使人) 병을 묻고(問疾), 의원이(醫) 왔다(來). 맹중자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어제(昔者) 왕명이(王命) 있었는데(有), 병이(采薪之憂) 있어(有), 조회에(朝) 나아갈(造) 수 없었다(不能). 오늘(今) 병이(病) 조금(小) 나아서(愈), 달려서(趨) 조정에(於朝) 나아갔는데(造), 나는(我) 이르렀는지(能至) 아닌지(否) 알지 못합니다不識-乎)?”

  • 采薪之憂: 자기 병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로, 직역하면 '땔나무를 모을 걱정'이다. 종이 주인을 위해 나무를 해야 하지만 몸이 아파서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 孟仲子, 趙氏以爲孟子之從昆弟, 學於孟子者也. 采薪之憂, 言病不能采薪, 謙辭也.

맹자중(孟仲子)은, 조씨가(趙氏) 맹자의(孟子之) 종곤제(從昆弟)로 생각했는데(以爲), 맹자에게서(於孟子) 배운(學) 사람이다(者也). 채신지우(采薪之憂)는, 병이(病) 땔나무를 채취할(采薪) 수 없다는(不能) 말로(言), 겸사다(謙辭也).

 

使數人要於路(사수인요어로), 曰: “請必無歸(청필무귀), 而造於朝(이조어조)!”

여러 사람으로(數人) 하여금(使) 길에서(於路) 기다리게(要) 하고, 말하기를: “청컨대(請) 반드시(必) 돌아오지 말고(無歸, 而) 조정에(於朝) 나아가시오(造)!

 

○ 仲子權辭以對, 又使人要孟子令勿歸而造朝, 以實己言.

중자(仲子)가 권사(權辭, 둘러대는 말)로(以) 대응하고(對), 또(又) 사람으로 하여금(使人) 맹자를 기다려(要孟子) 돌아오지 말고(勿歸而) 조정에 나아가도록(造朝) 하였으니(令), 그것으로(以) 자기 말을(己言) 실증했다(實).

 

不得已而之景丑氏宿焉. (부득이이지경추씨관숙언)

어쩔 수 없이(不得已而) 경추씨(景丑氏)에게 가서(之) 거기에서(焉) 묵었다(宿).

 

景子曰: “內則父子(내즉부자), 外則君臣(외즉군신), 人之大倫也(인지대륜야). 父子主恩(부자주은), 君臣主敬(군신주경). 丑見王之敬子也(축견왕지경자야), 未見所以敬王也(미견소이경왕야).”

경자가 말하기를: 안으로는(內則) 부자(父子) 사이가, 밖으로는(外則) 군신(君臣) 사이가, 사람의(人之) 큰 윤리다(大倫也). 부자는(父子) 은혜를 주로 하고(主恩), 군신은(君臣) 공경을 주로 한다(主敬). 추는(丑) 왕이(王之) 그대를(子) 공경하는 것(敬)을 보았는데(也), 왕을 공경하는(敬王) 것(所以)을 보지 못했다(未見也).”

  • 不得已: '得'은 조동사이고, '已'는 '그만두다'의 뜻으로 '그만둘 수 없다'인데 나중에는 '어쩔 수 없다'는 관용어로 쓰였다. 
  • 之景丑氏宿焉: '之'는 '가다'라는 뜻으로 썼다. 뒤에 목적어 '景丑氏'가 나온다. '焉'은 '거기에서'라는 뜻이지만 문장 마지막에 쓰여서 해석하지 않아도 의미가 통한다. 
  • 未見所以敬王: '<무엇, 何>을 가지고(以) 왕(王)을 공경하는(敬) 것(所)을 아직(未) 보지(見) 못했다'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문장은 '서술어(未見)+목적어절(所以敬王)'인데 목적어절이 되려면 명사가 되어야 하므로 명사화 전치사 '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맹자로 문리나기, 임옥균)

 

○ 景丑氏, 齊大夫家也. 景子, 景丑也.

경추씨는(景丑氏), 제나라(齊) 대부(大夫) 집안이다(家也). 경자(景子)는, 경추다(景丑也).

 

曰: “惡(오)! 是何言也(시하언야)! 齊人無以仁義與王言者(제인무이인의여왕언자), 豈以仁義爲不美也(기이인의위불미야)? 

말하기를: 아(惡)! 이것(是)이 무슨(何) 말인가(言也)! 제나라(齊) 사람들이(人) 인의로써(仁義) 왕와 더불어(與王) 말할(言) 사람이(者) 없는(無) 것이, 어찌(豈) 인의로써(以仁義) 아름답지 않게(不美) 되어서인가(也)? 

 

其心曰(기심왈) ‘是何足與言仁義也’(시하족여언인의야) 云爾(운이), 則不敬莫大乎是(즉불경막대호시). 我非堯舜之道(아비요순지도), 不敢以陳於王前(불감이진어왕전), 故齊人莫如我敬王也(고제인막여아경왕야).”

그(其) 마음이(心) 말하기를(曰) ‘이 사람이(是) 어찌(何) 더불어(與) 인의를 말하기에(言仁義) 족하겠는가(也)’ 말할 뿐이니(云爾), 그렇다면(則) 불경함이(不敬) 이보다(乎是) 더 큰(大) 것이(莫) 없다. 나는(我) 요순의 도가(堯舜之道) 아니면(非), 감히(敢) 그것으로(以) 왕 앞에서(於王前) 늘어놓지(陳) 않았고(不), 그러므로(故) 제나라 사람(齊人) 중에 나처럼(如我) 왕을 공경하는(敬王) 사람이 아무도(莫) 없다(也).”

  • 是何足與言仁義也云爾: '是'는 원래 '與' 다음에 오는 단어다. '何足與是言仁義也云爾'가 원래 문장이다. '云爾'는 인용문 다음에 붙이는 말로 요즘이 문장 부호에 해당한다.
  • 不敬莫大乎是: '莫+형용사' 문장으로 '~보다 더 ~한 것이 없다'는 최상급을 나타낸다. '是'는 앞 문장(其心曰‘是何足與言仁義也')을 받는다. 

 

惡, 歎辭也. 景丑所言, 敬之小者也; 孟子所言, 敬之大者也.

오(惡)는, 감탄사다(歎辭也). 경씨가(景丑) 말한 것(所言)은, 경의(敬之) 작은 것이고(小者也); 맹자가(孟子) 말한 것(所言)은, 경의(敬之) 큰 것이다(大者也).

 

景子曰: “否, 非此之謂也(부 비차지위야). 『禮』曰: ‘父召(부소), 無諾(무낙); 君命召(군명소), 不俟駕(불사가).’ 固將朝也(고장조야), 聞王命而遂不果(문왕명이수불과), 宜與夫禮若不相似然(의여부례약불상사연).”

경자가 말하기를: 아니다(否), 이것을(此之) 말함이(謂) 아니다(也). 예(禮)에 이르기를(曰): ‘아비가 부르면(父召), <천천히> 대답함이(諾) 없고(無); 임금의 명이(君命) 부르면(召), 말 멍에 매기를(駕) 기다리지 않는다(不俟).’ 본래(固) 장차(將) 조회하려 했는데(朝也), 왕명을(王命) 듣고(而) 마침내(遂) 실행하지 않으니(不果), 마땅히(宜) 이(夫) 예와(禮) 더불어(與) 서로(相) 비슷하지 않은(似) 듯하다().”

  • 無諾: '諾'은 천천히 대답하는 것이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대답하는 것은 '唯'다.
  • 若不相似然: '若~然'은 '~과 같다'는 뜻으로 연용해서 쓰는 관용어다. 

 

○ 『禮』曰: “父命呼, 唯而不諾.” 又曰: “君命召, 在官不俟屨, 在外不俟車.”

예에 이르기를: “아비가(父) 명(命)하여 부르면(呼), 바로 대답하고(唯而) 느리게 대답하지(諾) 않는다(不).” 또 말하기를: 임금이(君) 명하여(命) 부르면(召), 관청에 있으면(在官) 신발 신기를(屨) 기다리지 않고(不俟), 바깥에 있으면(在外) 마차를(車) 기다리지 않는다(不俟).”

 

言孟子本欲朝王, 而聞命中止, 似與此『禮』之意不同也.

맹자가(孟子) 본래(本) 왕을 조회하려(朝王) 하다가(欲, 而) 명을 듣고(聞命) 그만두었으니(中止), 이(此) 예의(禮之) 뜻(意)과 더불어(與) 같지 않은(不同) 듯하다(似也)는 말이다(言).

 

曰: “豈謂是與(기위시여)? 曾子曰: ‘晉楚之富(진초지부), 不可及也(불가급야). 彼以其富(피이기부), 我以吾仁(아이오인); 彼以其爵(피이기작), 我以吾義(아이오의), 吾何慊乎哉(오하겸호재)?’ 夫豈不義而曾子言之(부기불의이증자언지)? 是或一道也(시혹일도야).

말하기를: 어찌(豈) 이것을(是) 말하는 것인가(與)? 증자가 말하기를: ‘진나라와 초나라의(晉楚之) 부유함(富)을, 미칠(及) 수 없다(不可也). 저들은(彼) 그 부(其富)로 하면(以), 나는(我) 내 인(吾仁)으로 하고(以); 저들이(彼) 그 작위(其爵)로 하면(以), 나는(我) 내 의(吾義)로 하니(以), 내가(吾) 어찌(何) 불만스럽겠는가(慊乎哉)?’ 무릇(夫) 어찌(豈) 의롭지 않은데도(不義而) 증자가(曾子) 그것을(之) 말하겠는가(言)? 이것이(是) 혹(或) 하나의 도리다(一道也).

  • 晉楚之富, 不可及也: '晉楚之富는 '及'의 목적어다. 원래 문장은 '我不可以及晉楚之富'로 보고 해석한다. 
  • 彼以其富, 我以吾仁: '以'는 '用'과 같다. '저들이 그 부를 '쓰면/내세우면/(로써) 하면'으로 해석한다. 

 

○ 慊, 恨也, 少也. 或作嗛, 字書以爲口銜物也. 然則慊亦但爲心有所銜之義, 其爲快, 爲足, 爲恨, 爲少, 則因其事而所銜有不同耳. 

겸(慊)은, 유감이며(恨也), 부족함이다(少也). 혹은(或) 겸(嗛)으로 쓰고(作), 자서(字書, 자전)에 입에 물건을 머금은(口銜物) 것이라 했다(以爲也). 그렇다면(然則) 겸(慊) 또한(亦) 단지(但) 마음에(心) 머금은 것(所銜)이 있다는(有之) 뜻(義)이 되니(爲), 그것이(其) 쾌함도 되고(爲快), 만족함도 되고(爲足), 유감도 되고(爲恨), 부족함도 되고(爲少), 그러므로(則) 그 일에(其事) 따라서(因而) 머금은 것이(所銜) 가지 않음이(不同) 있을 뿐이다(有耳). 

 

孟子言我之意, 非如景子之所言者. 因引曾子之言, 而云夫此豈是不義, 而曾子肯以爲言, 是或別有一種道理也.

맹자가(孟子) 나의 뜻이(我之意), 경자가(景子之) 말한(言) 것(所-者)과 같지 않다(非如)고 말했다(言). 잇따라(因) 증자의 말을(曾子之言) 인용하고(引, 而) 말하기를(云) 무릇(夫) 이것이(此) 어찌(豈) 이것이(是) 불의하다면(不義, 而) 증자가(曾子) 즐겨(肯) 그것으로(以) 말하겠는가(爲言), 이것이(是) 혹시(或) 다른(別) 하나의(一種) 도리가(道理) 있는 것이다(有也).

 

天下有達尊三(천하유달존삼): 爵一(작일), 齒一(치일), 德一(덕일). 朝廷莫如爵(조정막여작), 鄕黨莫如齒(향당막여치), 輔世長民莫如德(보세장민막여덕). 惡得有其一(오득유기일), 以慢其二哉(이만기이재)?

천하에(天下) 통달한 높은 것(達尊)이 셋(三)이 있는데(有): 작위(爵)가 하나요(一), 나이(齒)가 하나요(一), 덕(德)이 하나다(一). 조정에서는(朝廷) 작위(爵) 만한(如) 것이 없고(莫), 향당에서는(鄕黨) 나이 만한(如齒) 것이(莫) 없고, 세상을 돕고(輔世) 백성을 기르는데(長民) 덕 만한(如德) 것이(莫) 없다. 어찌(惡) 그중(其) 하나를(一) 가지고서(得有), 그것으로(以) 그(其) 둘(二)을 업신여기겠는가(哉)?

 

○ 達, 通也. 蓋通天下之所尊, 有此三者. 曾子之說, 蓋以德言之也. 今齊王但有爵耳, 安得以此慢於齒德乎?

달(達)은, 통함이다(通也). 대체로(蓋) 천하를 통하여(通天下之) 높이는 것(所尊)이, 이(此) 세 가지가(三者) 있다(有). 증자의(曾子之) 말이(說), 아마도(蓋) 덕으로(以德) 그것을 말했다(言之也). 지금(今) 제나라(齊) 왕이(王) 다만(但) 작위(爵)가 있을 뿐이니(有耳), 어찌(安) 이것으로(此) 나이와 덕을(於齒德) 업신여길(慢) 수(得以) 있는가(乎)?

 

故將大有爲之君(고장대유위지군), 必有所不召之臣(필유소부소지신). 欲有謀焉(욕유모언), 則就之(즉취지). 其尊德樂道(기존덕낙도), 不如是(불여시), 不足與有爲也(부족여유위야).

그러므로(故) 장차(將) 크게(大) 훌륭한 일을 하려는(有爲之) 임금은(君), 반드시(必) 부르지 않는(不召之) 신하가(臣) 있다(有). 그에게(焉) 의논함이(謀) 있고자 한다면(欲有, 則) 그에게(之) 나아간다(就). 그(其) 덕을 높이고(尊德) 도를 즐김이(樂道), 이와 같지 않다면(不如是), 더불어(與) 큰 일을 하기에(有爲) 부족하다(不足也).

  • 有爲: 직역하면 '할 일을 가진다'라고 해석하지만, 항상 좋은 뜻으로 '훌륭한 일을 하다'라는 뜻으로 쓴다. 

 

○ 大有爲之君, 大有作爲, 非常之君也.

크게(大) 훌륭한 일을 하는(有爲之) 임금은(君), 크게(大) 작위함이(作爲) 있고(有), 평범하지 않은(非常之) 임금이다(君也).

 

程子曰: “古之人所以必待人君致敬盡禮而後往者, 非欲自爲尊大也, 爲是故耳.”

정자가 말하기를: 옛사람이(古之人) 반드시(必) 임금이(人君) 공경을 다하고(致敬) 예를 다하기를(盡禮) 기다리고(待) 나서야(而後) 나아가는(往者) 까닭은(所以), 자기를(自) 높이고(尊) 크게(大) 하기(爲)를 바라서(欲)가 아니고(非也), 이런(是) 이유가(故) 될(爲) 뿐이다(耳).”

 

 

故湯之於伊尹(고탕지어이윤), 學焉而後臣之(학언이후신지), 故不勞而王(고불노이왕); 桓公之於管仲(환공지어관중), 學焉而後臣之(학언이후신지), 故不勞而霸(고불노이패).

그러므로(故) 탕임금이(湯之) 이윤(伊尹)에 대하여(於), 그에게(焉) 배우고(學) 나서(而後) 그를(之) 신하로 삼고(臣), 그러므로(故) 수고롭지 않고도(不勞而) 왕 노릇 했고(王); 환공이(桓公之) 관중에 대하여(於管仲), 그에게(焉) 배우고(學) 나서(而後) 그를 신하삼았고(臣之), 그러므로(故) 수고롭지 않고(不勞而) 패자가 되었다(霸).

 

先從受學, 師之也. 後以爲臣, 任之也.

먼저(先) 따르고(從) 배움을 받음은(受學), 그를 스승삼은 것이다(師之也). 뒤에(後) 신하로 삼아(以爲臣), 그에게(之) 임무를 맡겼다(任也).

 

今天下地醜德齊(금천하지추덕제), 莫能相尙(막능상상), 無他(무타). 好臣其所敎(호신기소교), 而不好臣其所受敎(이불호신기소수교).

지금(今) 천하의(天下) 땅이(地) 비슷하고(醜) 덕이(德) 같아서(齊), 능히(能) 서로(相) 더 나은(尙) 이가(莫) 없움아, 다른 것이 아니다(無他). 그(其) 가르칠 사람(所敎)을 신하 삼기(臣) 좋아하고(, 而) 그(其) 가르침 받을(受敎) 사람(所)을 신하 삼기(臣) 좋아하지 않는다(不好).

 

○ 醜, 類也. 尙, 過也. 所敎, 謂聽從於己, 可役使者也. 所受敎, 謂己之所從學者也.

추(醜)는, 비슷함이다(類也). 상(尙)은, 넘어섬이다(過也). 소교(所敎)는, 자기를(於己) 듣고 따라서(聽從), 부릴(役使) 수(可) 있는 사람(者)을 말한다(謂也). 소수교(所受敎)는, 자기가(己之) 따라서 배울(從學) 사람(所者)을 말한다(謂也).

 

湯之於伊尹(탕지어이윤), 桓公之於管仲(환공지어관중), 則不敢召(즉불감소). 管仲且猶不可召(관중차유불가소), 而況不爲管仲者乎(이황불위관중자호)?”

탕임금이(湯之) 이윤에 대해서(於伊尹), 환공이(桓公之) 관중에 대해서(於管仲), 라면(則) 감히(敢) 부르지 못했다(召). 관중도(管仲) 또한(且) 오히려(猶) 부르지 못하는데(不可召, 而) 하물며(況) 관중이(管仲) 되지 않으려는(不爲) 사람은(者) 어떤가(乎)?”

 

不爲管仲, 孟子自謂也.

불위관중(不爲管仲)은, 맹자가(孟子) 자기를(自) 말했다(謂也).

 

范氏曰: “孟子之於齊, 處賓師之位, 非當仕有官職者, 故其言如此.”

범씨가 말하기를: 맹자가(孟子) 제나라에(於齊) 가서(之), 빈사(賓師之) 자리(位)에 처해서(處), 임무를 담당하여(當仕) 관직(官職)이 있는(有) 사람(者)이 아니고(非), 그러므로(故) 그 말이(其言) 이와 같다(如此).”

 

○ 此章見賓師不以趨走承順爲恭, 而以責難陳善爲敬; 人君不以崇高富貴爲重, 而以貴德尊士爲賢, 則上下交而德業成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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