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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선진(先進) 11-17] 삼은 둔하고 유는 거칠다 / 시야우 삼야노 사야벽 유야언(柴也愚, 參也魯, 師也辟, 由也喭.)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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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증삼, 자장, 자로의 가치

柴也愚, (시야우) 시는(柴也) 어리석고(愚),

 

柴, 孔子弟子, 姓高, 字子羔. 愚者, 知不足而厚有餘.

시(柴)는, 공자(孔子) 제자(弟子)로, 성(姓)은 고(高)고, 자는(字) 자고다(子羔). 어리석은(愚) 사람이란(者), 지혜가(知) 부족하지만(不足而) 두터움에(厚) 남음이(餘) 있는(有) 것이다.

 

 『家語』記其“足不履影, 啓蟄不殺, 方長不折. 執親之喪, 泣血三年, 未嘗見齒. 避難而行, 不徑不竇”. 可以見其爲人矣.

가어에(家語) 그(其)가 발로(足) 그림자를(影) 밟지 않고(不履), 봄에 나온 벌레(啓蟄)를 죽이지 않고(不殺), 자라는 싹을(方長) 꺽지 않았다(不折). 부모의(親之) 상(喪)을 치루면서(執), 삼년을(三年) 슬피 울었고(泣血), 일찍이(嘗) 이빨이(齒) 보이지(見) 않았다(未). 난(難)을 피해서(避而) 가더라도(行), 지름길로 가지 않고(不徑) 구멍으로 다니지 않았다(不竇)고 기록했다(記). 그(其) 사람됨(爲人)을 볼(見) 수 있다(可以矣).

 

參也魯, (삼야노) 삼은(參也) 둔하고(魯),

 

魯, 鈍也. 程子曰: “參也竟以魯得之.”

노(魯)는, 둔함이다(鈍也). 정자가 말하기를: “증삼이(參也) 마침내(竟) 둔함으로(以魯) 그것을 얻었다(得之).

 

又曰: “曾子之學, 誠篤而已. 聖門學者, 聰明才辯, 不爲不多, 而卒傳其道, 乃質魯之人爾. 故學以誠實爲貴也.”

또 말하기를: 증자의(曾子之) 학문(學)이, 성실함과(誠) 돈독함(篤) 뿐이다(而已). 성인 문하의(聖門) 학자가(學者), 총명하고(聰明) 재주있고(才) 말 잘한(辯) <사람이>, 많지 않음이(不多) 아니었지만(不爲, 而) 마침내(卒) 그 도를(其道) 전한(傳) 것이, 바로(乃) 질박하고(質) 둔한(魯之) 사람일(人) 뿐이다(爾). 그러므로(故) 학문은(學) 성실함으로(以誠實) 귀하게 여긴다(爲貴也).

 

尹氏曰: “曾子之才魯, 故其學也確, 所以能深造乎道也.”

윤씨가 말하기를: 증자의(曾子之) 재주(才)가 둔하고(魯), 그러므로(故) 그(其) 학문이(學也) 확고했고(確), 도에(乎道) 깊이(深) 갈(造) 수(能) 있던 까닭이다(所以-也).”

 

師也辟, (사야벽) 사는(師也) 치우쳤고(辟),

 

○ 辟, 便辟也. 謂習於容止, 少誠實也.

벽(辟)은, 편벽함이다(便辟也). 몸가짐과 행동에(於容止) 익숙하지만(習), 성실함이(誠實) 적다(少)는 말이다(謂也).

 

由也喭. (유야언) 유는(由也) 거칠다(喭).

 

○ 喭, 粗俗也. 傳稱喭者, 謂俗論也.

언(喭)은, 조잡하고(粗) 속됨이다(俗也). 전에서(傳) 언자라고(喭者) 칭한(稱) 것은, 속된 논의를(俗論) 말한다(謂也).

 

○ 楊氏曰: “四者性之偏, 語之使知自勵也.”

양씨가 말하기를: 네(四) 가지의(者) 성이(性之) 치우쳤고(偏), 이것을 말해서(語之) 스스로 힘써야 함(自勵)을 알게(知) 하려했다(使也).

 

吳氏曰: “此章之首, 脫‘子曰’二字.” 或疑下章‘子曰’, 當在此章之首, 而通爲一章.

오씨가 말하기를: 이 장의(此章之) 처음에(首), 자왈(‘子曰’) 두 글자가(二字) 빠졌다(脫).” 혹(或) 다음 장의(下章) 자왈(‘子曰’)이, 마땅히(當) 이 장의 처음에(此章之首) 있고(在, 而) 통해서(通) 한 장이 되는(爲一章) 것이 아닐까 한다(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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