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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학이(學而) 1-4]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 날마다 반성하고 살아라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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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子曰: “吾日三省吾身(오일삼성오신): 爲人謀而不忠乎(위인모이불충호)? 
증자가 말하기를: 나는(吾) 내 몸을(吾身) 하루에(日) 세 번(三) 살핀다(省, 반성한다): 남을 위해서(爲人) <일을> 꾀하면서(謀而) 진심을 다하지(忠) 않았는가(不-乎)?

 

* 三省(삼성): 세 가지로 반성하다. '세 번 반성하다, ' 또는 '여러 번 반성하다'의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으나 뒤에 반성하는 내용을 세 가지로 나열했기 때문에 '세 가지 측면에서 반성하다'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논어의 문법적 이해, 류종목>

 

* 傳不習乎(전불습호): 학식을 전수함에 있어서 스스로 익숙하지 않았는가? 曾子曰(증자왈)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것이 그가 스승이 된 뒤 제자들 앞에서 한 말임을 알 수 있으므로 이 문장을 '선생님이 전수해 주신 것을 복습하지 않았는가?'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논어의 문법적 이해, 류종목>

 

* 여기에서의 충은 아직 군신관계에서 말하는 충이 아니다. 논어 전체에서 충이 거론되는 대목을 살펴보면, 그 의미는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진실됨" 정도로 개인의 내면에 있는 실존적 가치 범주다. 그러나 증자가 지었다고 하는 "효경"에 오면 사친의 효를 사군의 충으로 전화시킨다. 그리고 다시 그 충을 순(순종)이라는 말로 재해석한다. 사의 최고 덕목이 효에서 충순으로 전화되고, 이 충순이 작록(작위와 봉급)을 유지하는 최고의 수단이 된다. 증자는 '효와 충'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전국 말기 유가에서 '충효'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기 위해 증자의 이미지를 재구축하고, 그 권위를 보장하기 위해서 날조한 설화를 논어에 편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논어한글역주, 김용옥) 

 

○ 曾子, 孔子弟子, 名參, 字子輿. 盡己之謂忠.

증자(曾子)는, 공자(孔子) 제자로(弟子), 이름(名)은 삼(參)이고, 자(字)는 자여(子輿)다. 나를 다하는 것을(盡己之) 충(忠)이라 말한다(謂).

 

與朋友交而不信乎(여붕우교이불신호) 

벗(朋)과 더불어(與) 사귀면서(交而) 믿음직스럽지(信) 않았는가(不-乎)?

 

* 신(信)이라는 말을 현대의 종교 관념과 결부해서 해석하는 오류가 많다. 신은 서양인이 말하는 믿음이 아니다. 신은 실증할 수 있는 것을 일차적 특징으로 한다. 말이 실천할 수 있고, 검증할 수 있을 때만 믿음이 보장되는 것이다. 서양 가치관이 유입되면서 왜곡된 단어의 대표적인 사례가 '믿음(信)'이다. [논어한글역주1, 김용옥]

 

以實之謂信. 

진실로써 함을 신이라고 한다.

 

傳不習乎(전불습호)?” 

<스승에게> 배운 것(傳)을 익히지(習) 않았는가(不-乎)?

 

* '傳'을 동사로 보고 '익히지 않은 것을 전하지 않았는가"라고 해석하기도 한다(하안의 논어집해). 하지만 문맥에 비추어 보면, 명사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교양인의 논어, 신동준) 다산은 '전傳'이란 글자는 위의 것을 계승하고 아래의 것을 접하는 데 쓰는 말이므로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다'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 주희는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忠', 성실하게 행하는 것을 '신信', 스승에게 전수받은 것을 '전傳', 그것을 자신의 몸에 익숙하게 하는 것을 '습習'이라고 했다. 충신은 전습의 근본이 된다(以忠信爲傳習之本也)고 해서 이 관계를 점층적으로 해석했다. (교양인의 논어, 신동준)

 

○ 傳, 謂受之於師. 習, 謂熟之於己. 曾子以此三者日省其身, 有則改之, 無則加勉.

전(傳)은, 스승에게(於師) 그것을(之) 받은(受) 것을 말한다(謂). 습(習)은, 나에게(於己) 그것(之)을 익숙하게(熟) 함을 말한다(謂). 

 

曾子以此三者日省其身, 有則改之, 無則加勉.

증자는(曾子) 이(此) 세 가지(三者)로 날마다(日) 자기 몸(身)을 반성하여(省), <과실이> 있으면(有則) 그것(之)을 고치고(改), <과실이> 없으면(無則) 더욱(加) 힘썼다(勉).

 

其自治誠切如此, 可謂得爲學之本矣. 而三者之序, 則又以忠信爲傳習之本也.

그(其) 자기를(自) 다스리는(治) 성실함과 절실함(誠切)이 이와(此) 같아서(如), 학문의(爲學之) 근본(本)을 얻었다고(得) 말할(謂) 수(可) 있다(矣). 

 

而三者之序, 則又以忠信爲傳習之本也.

그런데 세 가지(三者)의 차례(序)로, 보면(則) 또(又) 충과 신으로서(以忠信) 전과 습의(傳習之) 근본(本)을 삼는다(爲也).

 

○ 尹氏曰: “曾子守約, 故動必求諸身.”

윤씨가 말하기를: 증자의(曾子)의 지킴(守)이 간략하고(約), 그러므로(故) 움직임(動)을 반드시(必) 자기에게서(諸身) 그것을(諸) 구했다(求).

 

謝氏曰: “諸子之學, 皆出於聖人, 其後愈遠而愈失其眞.

사씨가 말하기를: 모든 제자의(諸子之) 학문(學)이, 모두(皆) 성인에게서(於聖人) 나왔는데(出), 그 뒤에(其後) 더욱(愈) 멀어지고(遠而) 더욱(愈) 그 참모습(其眞)을 잃었다(失).

 

獨曾子之學, 專用心於內, 故傳之無弊, 觀於子思ㆍ孟子可見矣.

오직(獨) 증자의(曾子之) 학문(學)이, 오로지(專) 안에서(於內) 마음을(心) 썼고(用), 그러므로(故) 전해진 것이(傳之) 폐해(弊)가 없음을(無), 맹자와 자사를(於子思孟子) 보면(觀) 알(見) 수(可) 있다(矣).

 

惜乎! 其嘉言善行, 不盡傳於世也. 其幸存而未泯者, 學者其可不盡心乎!”

안타깝구나(惜乎)! 그(其) 좋은 말(嘉言)과 선행(善行)이, 세상에(於世) 모두(盡) 전해지지(傳) 못했다(也). 그(其) 다행히(幸) 전해져서(存而) 없어지지(泯) 않은 것을(未者), 학자(學者)가 어찌(其) 마음을 다하지(盡心) 않을(不) 수(可) 있겠는가(乎)!


 

제3장에서 공자가 말하는 교언영색과 관련해서, 인은 본질적으로 내면적 성실성을 전제하는 가치라고 본다면, 충과 신이 주제가 되는 4장의 증자의 말도 인의 다른 측면을 암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증자가 공자의 '일이관지'하는 도를 충서라고 말한 것과 대비해서, 여기는 충과 신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증자는 공자보다 46세 연하고(중니제자열전), 노나라 무성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인 증석이 공자의 제자였다고 하지만, 증석이 실존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증가가 공자 사후, 일정 기간 공자 교단을 주도했고, 공자-증자 교단에서 자사가 교육을 받았고, 자사의 문인이 맹자를 가르쳤다는 점이다. 자유-자하 학파가 비교적 예의 형식적인 측면을 강조했다면, 증자 학파는 예의 내면적인 측면을 강조했고, 이런 전통에서 자사와 맹자가 나왔다.

 

이 장에서는 가장 마지막 구절인 '전불습호傳不習乎'의 해석이 문제 된다. 전하는 행위 주체를 누구로 보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주자는 '남에게서 배운 것을 익히지 않고 있는가?'라고 해서 누구에게서 배운 것으로 해석했다.

증자의 말은 공자에 비하면 너무 격이 떨어진다. '오일삼성'을 '하루에 세 번'이든 '하루에 세 가지'로 해석하든 너무 형식에 얽매인 말투로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듯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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