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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학이(學而) 1-2] 효제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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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친이인민(親親而仁民)

 

有子曰: “其爲人也孝弟(기위인야효제), 而好犯上者(이호범상자), 鮮矣(선의);

유자가 말하기를: 그(其) 사람됨이(爲人也) 효성스럽고(孝) 공손한데도(弟而), 윗사람(上) 범하기를(犯) 좋아하는(好) 사람은(者), 드물고(鮮矣);

 

*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 A也 B矣, A者 B矣는 'A는 B다'의 문형이다.

 

* 어조사 也(야) : 어조사 '야'가 문장 중간에 쓰였다. '~이', '~은'하고 한 박자 쉬고 뒤에 나오는 말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체언이 뒤에 붙어서 이 말을 주어로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은, 는, 이, 가'와 같은 주격조사를 붙이면 자연스럽다. 고전에서는 '者, 也, 也者, 焉 등이 이런 용법으로 자주 쓰였다.)

 

* 어조사 矣(의) : 문장 끝에서 단정의 뜻을 나타내는 어조사다.

 

○ 有子, 孔子弟子, 名若. 善事父母爲孝, 善事兄長爲弟. 犯上, 謂干犯在上之人. 鮮, 少也.

유자는, 공자 제자로, 이름은 약이다. 부모(父母)를 잘(善) 모시는(事) 것이 효가(孝) 되고(爲), 형이나 어른을 잘 모시는 것이 제(弟)가 된다(爲). 범상(犯上)이란, 윗자리에(上之) 있는(在) 사람(人)을 간여하고(干) 침범하는(犯) 것을 말한다(謂). 선(鮮)은, 적음이다(少也).

 

干犯(간범): 간섭하여 남의 권리를 침범함.

不好犯上(불호범상), 而好作亂者(이호작란자), 未之有也(미지유야).

윗사람 거스르기(犯上)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而), 분란 일으키기를(作亂) 좋아하는(好) 사람(者)은, 그런 사람은(之) 있지(有) 않다(未-也).

 

* 미지유(未之有) : '아직까지 그런 일이 있지 않았다'로 번역한다. 미지유(未之有)는 미유지(未有之)가 도치된 문장이다. 한문에서 의문사나 부정사 뒤에 대명사 목적어가 나오면 목적어가 전치된다. '之'는 '不好犯上, 而好作亂者'를 받는다. 

 

作亂, 則爲悖逆爭鬪之事矣. 此言人能孝弟, 則其心和順, 少好犯上, 必不好作亂也.

작란(作亂)이란(則), <도리에> 어긋나고(悖) <순리를> 거스르고(逆) 싸우는(爭鬪之) 일을(事) 하는 것이다(爲-矣). 이것은 사람이 효성스럽고 공손할(孝弟) 수(能) 있다면(則), 그 마음이 (其心) 조화롭고 화목해서(和順),  윗사람 능멸하기(犯上)를 좋아함(好)이 적고(少), 반드시(必) 난리 일으키기(作亂)를 좋아하지 않는다(不好-)는 말이다().

君子務本(군자무본), 本立而道生(본립이도생). 孝弟也者(효제야자), 其爲仁之本與(기인지본여)!”

군자는(君子) 근본에(本) 힘쓰고(務), 근본이(本) 서야(立而) 도가(道) 생겨난다(生). 효도(孝)와 공경(弟也)이란 것은(者), 아마도(其) 인을 행하는(爲仁之) 근본(本)일 것이다(其-與)!

 

* 의문사 與(여) : 문장 끝에서 추축이나 의문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추측을 나타내는 其와 함께 강한 추측을 나타낸다. 주희는 與는 의문사로 겸손하게 물러서서 함부로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풀었다. 해석은 '아마도 ~일 것이다!' 또는 '~라고나 할까!' 정도로 한다.

 

○ 務, 專力也. 本, 猶根也. 仁者, 愛之理, 心之德也. 

務는, 힘을(力) 한 곳에 쓰는(專) 것이다(也). 본(本)은, 뿌리(根)와 같다(也). 인(仁)이란 것은(者), 사랑의(愛之) 이치(理)고, 마음의(心之) 덕이다(德也). 

 

爲仁, 猶曰行仁. 與者, 疑辭, 謙退不敢質言也.

위인(為仁)은, 인을 실천함(行)을 말함(曰)과 같다(猶). 여란(與者), 의문사(疑辭)로, 겸손하게 물러서서(謙退) 감히(敢) 사실을 딱 잘라 말하지(質言, 단정해서 말하지) 않음이다(不).

 

* 質言(질언): 참된 사실(事實)을 들어 딱 잘라 말함, 또는 그 말.

言君子凡事專用力於根本, 根本旣立, 則其道自生. 

군자(君子)는 모든 일에서(凡事) 오로지(專) 근본에(於根本) 힘을 쓰고(用力), 근본(根本)이 서고(立) 나면(), 그(其) 도(道)가 저절로(自) 생겨난다(生).

 

若上文所謂孝弟, 乃是爲仁之本, 學者務此, 則仁道自此而生也.

윗글(上文)에서 말한(所謂) 효제(孝弟)와 같은 경우는(), 곧(乃) 이것이(是) 인을 실천하는(爲仁之) 근본이므로(本), 배우는 사람(學者)이 이것에 힘쓰면(務-則), 인도(仁道)가 이것에서 나와서(自此) 생겨난다(生也)는 말이다(言).

○ 程子曰: “孝弟, 順德也, 故不好犯上, 豈復有逆理亂常之事.

정자가 말하기를: 효와 제(孝弟)는, 덕을 따르는 것이고(順德), 그러므로(故) 윗사람 능멸하기(犯上)를 좋아하지(好) 않으면(不), 어찌(豈) 다시(復) 이치를 거스르고(逆理) 일상을 어지럽히는(亂常) 일이 있겠는가(有)

 

德有本, 本立則其道充大. 

덕에는 근본이(本) 있으므로(), 근본(本)이 서면(立則) 그(其) 도(道)가 차고 커진다(充大).

 

孝弟行於家, 而後仁愛及於物, 所謂親親而仁民也.

효제(孝弟)가 집에서(於家) 행해지고(行) 나서(而後), 인과 사랑(仁愛)이 사물에게(於物) 미치니(及), 이른바(所謂) 가까운 사람(親)을 친하게 대하면(親而) 백성을(民) 사랑할 수 있다(仁也)고 했다.

 

故爲仁以孝弟爲本. 論性, 則以仁爲孝弟之本.”

그러므로(故) 인을 실천함(爲仁)은 효제로써(以孝弟) 근본을 삼는다(爲本). 성품을 논하자면(-則), 인을(以仁) 효제의(孝弟之) 근본(本)으로 삼는다(爲).

或問: “孝弟爲仁之本, 此是由孝弟可以至仁否?”

누군가 묻기를: 효제가 인을 실천함의(爲仁之) 근본이라면(本), 이것은(此) 바로(是) 효제로 말미암아(由孝弟) 인에 이를(至仁) 수(可) 있지 않은가요(否)

 

曰: “非也. 謂行仁自孝弟始, 孝弟是仁之一事. 

왈: 아니다(非也). 인을 실천함이(行仁) 효제에서(自孝弟) 시작하지만(始), 효제 이는 인의(仁之) 한 가지 일(一事) 일뿐이라는 말이다(謂). 

 

謂之行仁之本則可, 謂是仁之本則不可.

그것(之)을 인을 행하는(行仁之) 근본이라고(本) 말한다면(謂-則) 옳지만(可), 이것을(是) 인의(仁之) 근본이라고(本) 말한다면(謂-則) 옳지 않다(不可).

蓋仁是性也, 孝弟是用也, 性中只有箇仁ㆍ義ㆍ禮ㆍ智四者而已, 曷嘗有孝弟來.

대체로(蓋) 인은 곧() 본성(性)이고, 효제는 곧(是) 쓰임(用)이니, 본성 중(性中)에 다만(只) 인, 의, 예, 지 네 가지 것(四者) 뿐이므로(而已), 어찌(曷) 일찍이(嘗) 효제가 옴이(孝弟來) 있겠는가(有)

 

然仁主於愛, 愛莫大於愛親, 故曰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그러나 인은 사랑을 주로 하고, 사랑은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기 때문에, 효제라는 것이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라고 말한다.


 

2장은 유약의 말이다. 논어에서 유약과 증삼 만을 제자들이 존칭인 자(子)를 붙여 표기한 점에서 논어를 편집한 주체 세력이 유약과 증삼 학파라는 설이 있다. '가어'에 따르면 유약은 공자보다 36세 연하이고, 기억력이 뛰어났고 옛 문화를 숭상했다고 한다. 맹자 '등문공 상'에 따르면 공자가 죽은 이후 제자들이 공자와 용모가 비슷한 유약을 공자 대역으로 세워서 스승으로 모시려고 헀지만, 증삼이 화를 내고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이야기는 공자가 죽은 유약이 공문 집단을 어느 정도 이끌었지만, 노나라 출신이면서 예학을 교조적으로 해석하는 증삼 일파가 공자 학단의 주축 세력이 되었다고 본다.

효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종적인 덕목이고, 제는 형제 사이의 횡적인 덕목이다. 유가는 이런 혈연관계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덕성을 인륜의 근본으로 삼아서 가까운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넓혀 나가는 것이 모든 도리의 근간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본립이도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를 범상이나 작란이라는 규범적 논리에 맞춘 것은 저급한 해석이다.

송유는 이런 논리를 다시 체용론으로 바꿔서, 공자의 인을 체로, 효제를 용으로 설명한다. 여기에 더해서, 공자의 인을 맹자가 말한 사단의 하나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공자가 말하는 인은 단지 사단의 하나가 아니라 사단을 초월하고, 사단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인성론이면서 동시에 우주론이다. 【김용옥, 논어 한글 역주1, 25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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