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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옹야(雍也) 6-28] 백성에게 널리 베푸는 것은 요순도 부족할 것이다 / 자공왈 여유박시어민이능제중 하여 가위인호(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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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여유박시어민이능제중), 何如(하여)? 可謂仁乎(가위인호)?”

자공이 말하기를: 만약(如) 백성에게(於民) 널리 베풂이(博施) 있어서(而) 많은 사람을(衆) 구제할 수 있다면(能濟), 어떠한가요(何如)? 인이라고(仁) 말할 수 있을까요(可謂-乎)?

 

○ 博, 廣也. 仁以理言, 通乎上下. 聖以地言, 則造其極之名也. 乎者, 疑而未定之辭.

박(博)은, 넓음이다(廣也). 인은(仁) 이치로써(以理) 말했으니(言), 위(성인)와 아래(백성)에(乎上下) 통하고(通). 성은(聖) 지위로써(以地) 말했고(言), 곧(則) 그 지극함에(其極) 이른(造) 것의(之) 이름이다(名也). 호란(乎者)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여겨서(疑而) 단정하지 않은(未定之) 말이다(辭).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자왈 하사어인 필야성호 요순기유병저)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어찌(何) 인에(於仁) 그치는 것인가(事), 반드시(必也) 성인일 것이다(聖乎)! 요순도(堯舜) 아마(其) 오히려(猶) 이것에(諸) 부족하다 여길 것이다(病)!

  • 事(사)는 ~에 그치다, ~일뿐이다로 해석한다. 啻(시)와 같다.

 

病, 心有所不足也. 言‘此何止於仁, 必也聖人能之乎! 則雖堯舜之聖, 其心猶有所不足於此也.’ 以是求仁, 愈難而愈遠矣.

병(病)은, 마음에(心) 모자란 것이(所不足) 있음이다(有-也). 이것이(此) 어찌(何) 인에서(於仁) 그치겠는가(止), 반드시(必也) 성인이(聖人) 그것을(之) 할 수(能) 있을 것이다(乎)! 곧(則) 비록(雖) 요임금과 순임금(堯舜之)이 성인이지만(聖), 그(其) 마음에(心) 오히려(猶) 이것으로는(於此) 부족한 것이(所不足) 있을 것이다(有-也)는 말이다(言). 이것으로(以是) 인을 구하면(求仁), 더욱(愈) 어렵고(難而) 더욱(愈) 멀어진다(遠矣).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부인자 기욕립이입인 기욕달이달인)

대저(夫) 인자는(仁者), 자기가(己) 서고자(立) 하면(欲而) 남을 서게 하고(立人), 자기가(己) 통달하고자(達) 하면(欲而) 남을 통달하게 한다(達人).

 

○ 以己及人, 仁者之心也. 於此觀之, 可以見天理之周流而無閒矣. 狀仁之體, 莫切於此.

자기로써(以己) 남에게 미침이(及人), 인자의(仁者之) 마음이다(心也). 이것에서(於此) 그것을 보면(觀之), 천리가 두루 유행하고(天理之周流而) 사이가 없음을(無閒) 볼(見) 수 있다(可以-矣). 인의 본체를(仁之體) 형상한 것이(狀), 이보다(於此) 더 절실한(切) 것이 없다(莫).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가까이서(近) 깨달음을(譬) 얻을(取) 수 있다면(能), 인의 방법이라고(仁之方) 말할 수 있다(可謂也已).

 

喩也術也近取諸身以己所欲譬之他人知其所欲亦猶是也.

비(譬)는, 깨달음이다(喩也). 방은(方), 방법이다(術也). 가까이에서(近) 자기 몸에서 그것을(諸身) 취하여(取), 자기가 바라는 것(己所欲)으로(以) 그것을(之) 남에게(他人) 비유하면(譬), 그 바라는 것이(其所欲) 또한(亦) 이와 같음을(猶是) 알게 된다(知-也). 

 

然後推其所欲以及於人, 則恕之事而仁之術也. 於此勉焉, 則有以勝其人欲之私, 而全其天理之公矣.

그리고 나서(然後) 그 바라는 것을(其所欲以) 미루어(推) 남에게(於人) 미친다면(及, 則) 서의(恕之) 일이고(事而) 인의(仁之) 방법이다(術也). 이것으로(於此) 거기에(焉) 힘쓴다면(勉), 곧(則) 그(其) 인욕의(人欲之) 사사로움을(私) 이길(勝) 수 있고(有以, 而) 그(其) 천리의(天理之) 공정함을(公) 온전하게 할 수 있다(全矣).

 

○ 程子曰: “醫書‘以手足痿痹爲不仁’, 此言最善名狀. 仁者以天地萬物爲一體, 莫非己也. 認得爲己, 何所不至; 

정자가 말하기를: 의서에(醫書) 손발이(手足) 마비된 것(痿痹)으로(以) 불인이라(不仁) 했으니(爲), 이 말이(此言) 가장 잘(最善) 이름 붙이고(名) 표현했다(狀). 인자는(仁者) 천지만물로(以天地萬物) 한 몸이(一體) 되니(爲), 자기 아님이(非己) 없다(莫-也). <만물이> 자기가 됨을(爲己) 얻어(得) 인식한다면(認), 어느 곳에(何所) 이르지 못할까(不至); 

 

若不屬己, 自與己不相干. 如手足之不仁, 氣已不貫, 皆不屬己. 故博施濟衆, 乃聖人之功用. 

만약(若) 자기에게(己) 속하지 않는다면(不屬), 자연히(自) 자기와 더불어(與己)  서로 간섭하지(相干) 않는다(不). 만약(如) 손발이(手足之) 저려서(不仁), 기운이(氣) 이미(已) 통하지 않으면(不貫), 모두(皆) 자기에게(己) 속하지 않고(不屬). 그러므로(故) 널리 베풀어(博施)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濟衆), 바로(乃) 성인의(聖人之) 보람/역할이다(功用). 

 

仁至難言, 故止曰: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欲令如是觀仁, 可以得仁之體.”

인은(仁) 지극히(至) 말하기 어려워서(難言), 그러므로(故) 다만(止曰): 자기가(己) 서고자 하면(欲立而) 남을 세우고(立人),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己欲達而) 남을 통달하게 하고(達人), 가까이서(近)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면(能取譬), 인의 방법이라고(仁之方) 말할 수 있을 뿐이다(可謂也已)고 했다. 이와 같이(如是) 인을 관찰하게(觀仁) 해서(令), 인의 본체를(仁之體) 얻을 수 있게(可以得) 하려 했다(欲).

 

又曰: “『論語』言 ‘堯舜其猶病諸’者二. 夫博施者, 豈非聖人之所欲? 

또 말하기를: 논어에(論語) 이르기를(言) 요순(堯舜)이 아마도(其) 오히려(猶) 그것에(諸) 부족하게 여겼을 것이다(病)라는 것이(者) 두 번이다(二). 대저(夫) 널리 베푸는 것이(博施者), 어찌(豈) 성인이(聖人之) 바라는 것이(所欲) 아니겠는가(非)? 

 

然必五十乃衣帛, 七十乃食肉. 聖人之心, 非不欲少者亦衣帛食肉也, 顧其養有所不贍爾, 此病其施之不博也. 

그러나(然) 반드시(必) 50살이면(五十乃) 비단옷을 입고(衣帛), 70살이면(七十乃) 고기를 먹는다(食肉). 성인의 마음이(聖人之心), 젊은이가(少者) 또한(亦) 비단옷을 입고(衣帛) 고기 먹는 것을(食肉) 바라지 않은 것이(不欲) 아니지만(非-也), 돌아보면(顧) 그(其) 기름에(養) 넉넉하지 않은(不贍) 것이(所) 있어(有爾), 이것이(此) 그 베풂이(其施之) 넓지 않음을(不博) 부족하게 여겼다(病也). 

 

濟衆者, 豈非聖人之所欲? 然治不過九州. 聖人非不欲四海之外亦兼濟也, 顧其治有所不及爾, 此病其濟之不衆也.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濟衆者), 어찌(豈) 성인이(聖人之) 바라는 것이(所欲) 아니겠는가(非)? 그러나(然) 다스림이(治) 구주를(九州) 넘지 못했고(不過). 성인이(聖人) 사해의 밖(四海之外) 또한(亦) 함께(兼) 구제(濟)하려 하지 않음이(不欲) 아니라(非也), 다만(顧) 그(其) 다스림에(治) 미치지 못하는 것이(所不及) 있을(有) 뿐이고(爾), 이것이(此) 그 구제가(其濟之) 많지 않음을(不衆) 부족하게 여겼다(病-也). 

 

推此以求, 脩己以安百姓, 則爲病可知. 苟以吾治已足, 則便不是聖人.”

이것으로 미루어(推此以) 찾아보면(求), 자기를 닦아서(脩己以) 백성을 편안하게 함이(安百姓), 곧(則) 부족함이 됨을(爲病) 알 수 있다(可知). 진실로(苟) 나의 다스림이(吾治) 이미(已) 족하다고(足) 여기면(以), 곧(則) 바로(便) 성인(聖人)이 아니다(不是).

 

呂氏曰: “子貢有志於仁, 徒事高遠, 未知其方. 孔子敎以於己取之, 庶近而可入. 

 

是乃爲仁之方, 雖博施濟衆, 亦由此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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