乃今(내금)
부사 어떤 사건이 늦게 발생하거나 끝남을 나타내며, '겨우' '비로소' '지금'이라고 해석한다.
故九萬里則風斯在下矣, 而後乃今培風, 背負青天而莫之天夭閼者, 而後乃將圖南. (《莊子》〈逍遙遊〉)
그러므로 [대붕(鵬)이] 구만리를 올라가면 바람이 그 아래에 쌓인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등지며 아무런 장애도 없게 된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남쪽으로 날아가려 한다.
* 夭閼(요알): → 抑制, 억눌러 제지(制止)함.
始吾不知水可以滅人之國, 吾乃今知之. (《韓非子》<難三>)
처음에 나는 물이 사람의 국가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나는 지금 그것을 알게 되었다.
寡人出亡二十年, 乃今得返國. (《韓非子》〈外儲說左上〉)
과인은 망명한 지 20년 만에 겨우 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乃遂(내수)
부사 두 동작 혹은 행위가 서로 긴밀하게 이어지거나 원인이 됨을 나타내며, '바로' '이에'라고 해석한다. '遂乃'라고 쓰는 경우도 많은데, 뜻은 마찬가지다.
管仲曰: “以地衛君, 非以君衛地, 君其許也." 乃遂封於汶南, 與之盟. (《呂氏春秋》〈貴信〉)
관중은 "땅으로써 임금을 지키는 것이지 임금으로써 땅을 지키는 것이 아니니, 임금께서는 이를 허락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에 문의 남쪽에 봉해주고 [노나라 장공과] 맹약을 맺었다.
荊軻知太子不忍, 乃遂私見樊於期. (《史記》<刺客列傳>)
형가는 태자(단丹)가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이에 몰래 번오기를 만났다.
乃若(내약)
① 접속사 새로운 화제를 제시하며, '그런데'라고 해석한다. '若乃(약네)'라고도 쓴다.
是以天子親耕, 聖人重粟, 凡為生民粒食計耳, 乃若散之棄之, 或在田拋散而不收. (徐有桀,《林園經濟志》)
그러므로 천자가 몸소 밭 갈고 성인이 곡식을 중시한 것은 백성이 양식을 먹게 하기 위한 생각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곡식)을 흩고 버리며 어떤 때는 밭에 흩어져 있어도(拋散) 거두지 않는다.
② 어조사 화제를 이끌어낼 뿐 뜻은 없다. 해석하지 않는다.
乃若兼則善矣, 雖然, 不可行之物也, (《墨子》〈兼愛〉)
겸애하면 좋다. 비록 그렇지만 [쉽게]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乃爾/乃耳(내이)
대사 상태 혹은 정도 등에 대한 감탄이나 반문을 나타내며, '이와 같이' '이처럼'이라고 해석한다.
蜀卓氏寡女, 亡奔司馬相如, 貴土風俗, 何以乃爾乎? (《三國志》<蜀書 張裔傳>)
촉 땅 탁왕손(孫)의 과부 딸은 사마상여에게로 도망했으니, 귀(貴) 고장의 풍속이 어찌 이렇게 되었는가?
臣不意永昌風俗, 敦直乃爾! (《三國志》<蜀書 呂凱傳>)
나는 영창의 풍속은 생각지 못했는데 순박함이 이와 같구나!
乃者(내자)
부사 대사 앞에 쓰이는 경우 과거의 일을 말한다. '지난번'이라고 해석한다.
至朝時, 惠帝讓參曰: "與窋胡治乎? 乃者我使諫君也. (《史記》〈曹相國世家〉)
조회할 때 제가 조참을 나무라며(讓) 말했다. "왜(胡) 조줄(曹窋)을 치죄했소? 지난번 일은 짐이 시켜서 그대에게 간하게 한 것이었소."
乃且(내차)
부사 앞으로 일어날 일을 나타낸다. '乃(내)'는 앞의 일을 이어받고 且 (차)'는 뒤의 동작을 끌어내며, '장차'라고 해석한다.
衛有士十人於吾所, 吾乃且伐之, 十人者其言不義也. (《呂氏春秋》〈期賢〉)
위나라의 사인 열 명이 내가 있는 이곳에 있다. 나는 장차 [위나라를] 토벌하려고 했으나, 열 사람은 의롭지 않다고 말했다.
乃後(내후)
부사 앞뒤의 동작이나 상황을 이어준다. '而後(이후)'와 같고 '다음' '뒤에' '비로소' 등으로 해석한다.
又讓次弟公子結, 亦不可, 乃又讓次弟公子閭, 五讓, 乃後許爲王. (《史記》 <楚世家>)
다시 둘째 아들 공자 결(結)에게 물려주려고 했으나 또한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그다음 아들 공자 여(閭)에게 다섯 번이나 물려주려 하여 비로소 왕이 되겠다는 허락을 얻어냈다.
願爲諸軍決戰, 必三勝, 斬將, 艾旗, 乃後死. (《漢書》〈項籍列傳〉)
그대들을 위해 [저 한나라의 군대와] 결전을 하여 반드시 세 차례 싸우 고, 적장의 목을 베고, 군기(軍旗)를 꺾은(艾) 뒤에 죽겠다.
[출처: 김원중, 한문 해석 사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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