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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팔일(八佾) 3-1] 계씨가 뜰에서 팔일무를 추게 하니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 팔일무어정 시가인야 숙불가인야(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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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팔일무어정), 是可忍也(시가인야), 孰不可忍也(숙불가인야)?”

선생님이 계씨를 비판하여 말하기를: 뜰에서(於庭) 팔일춤(八佾)을 추도록 했으니(舞), 이것(是)을 차마 한다면(可忍也), 무엇(孰)을 차마 하지(忍) 못하겠는가(不可-也)?

 

* 많은 현대의 주석가들은 공자가 계씨의 참월을 비판한 것을 두고, 공자가 역사를 보수적으로 인식하고 지주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한다. 계씨가 팔일 춤을 춘 것이 진보적인가? 공자는 단지 그가 한 행위가 비도덕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는 하나의 질서이다. 질서는 반드시 도덕적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 팔일무는 천자만 할 수 있는 예식이었고, 일개 대부가 팔일무를 사가에서 한 것은 예의 파괴이다.

 

* 시가인야 숙불가인야是可忍也,孰不可忍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1. 주자는 인을 용인으로 보고, '계씨가 이런 짓을 함부로 한다면, 어떤 짓이라도 함부로 할 것이다'라고 풀었다. 다른 견해는, '내가 이것을 참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참지 못하겠느냐?'라고 해석할 수 있다.
2. 숙을 '무슨 일'로 보지 않고, '누구라도'로 본다면 '계씨가 이런 짓을 함부로 한다면, 누구라도 이런 짓을 못하겠는가?'라고 해석한다. (논어한글역주, 김용옥)

 

○ 季氏, 魯大夫季孫氏也. 佾, 舞列也, 天子八, 諸侯六, 大夫四, 士二. 每佾人數, 如其佾數.

계씨(季氏)는, 노나라(魯) 대부(大夫) 계손씨다(季孫氏也). 일(佾)은, 춤의 열/줄(舞列)이다(也), 천자는(天子) 여덟 줄이고(八), 제후는(諸侯) 여섯 줄이고(六), 대부는(大夫) 네 줄이고(四), 사는(士) 두 줄이다(二). 각(每) 줄의 사람 수(佾人數)는, 그(其) 줄 수(佾數)와 같다(如).

 

或曰: “每佾八人.” 未詳孰是. 季氏以大夫而僭用天子之樂, 孔子言其此事尙忍爲之, 則何事不可忍爲.

누군가 말하기를: 각(每) 줄(佾)이 여덟 명(八人)이라고 했다. 누가 옳은지(孰是) 자세하지 않다(未詳). 계씨가(季氏) 대부면서도(以大夫而) 천자의 음악(天子之樂)을 분수에 넘치게(僭) 사용했으니(用), 공자(孔子)는 그가(其) 이런 일(此事)을 오히려(尙) 차마 한다면(忍爲之), 곧(則) 어떤 일도(何事) 차마 하지 못하겠는가(不可忍爲)라고 하셨다(言).

 

或曰: “忍, 容忍也.” 蓋深疾之之辭.

누군가 말하기를: 인(忍)은, 참는(容忍) 것이다(也). 대체로(蓋) 깊이(深) 그것을 싫어한다는(疾之之) 말이다(辭).

 

* 이 경우 '是可忍也, 孰不可忍也'는 '이것을 참을 수 있다면, 무엇을 참지 못하겠는가?'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范氏曰: “樂舞之數, 自上而下, 降殺以兩而已, 故兩之間, 不可以毫髮僭差也. 孔子爲政, 先正禮樂, 則季氏之罪不容誅矣.”

범씨가 말하기를: 음악(樂)에 <맞춘> 춤의(舞之) 수(數)는, 위로부터(自上) 그 아래로(而下), 두 줄씩(以兩) 아래로 낮출(降殺) 뿐이며(而已), 그러므로(故) 둘 사이에(兩之間), 조금이라도(毫髮) 분수에 넘치고(僭) 어긋날(差) 수 없다(不可以-也). 공자(孔子)가 정치해서(爲政), 먼저(先) 예악을 바르게 한다면(正禮樂, 則) 계씨의 죄(季氏之罪)는 죽음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不容誅矣).

 

謝氏曰: “君子於其所不當爲不敢須臾處, 不忍故也. 而季氏忍此矣, 則雖弑父與君, 亦何所憚而不爲乎?”

사씨가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그(其)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所不當爲)에 대해(於) 감히(敢) 잠시라도(須臾) 처하지 않음(不-處)은, 차마 못하기(不忍) 때문이다(故也). 그런데(而) 계씨(季氏)가 이것을 차마 한다면(忍此矣, 則) 비록(雖) 부모와 임금을 시해하는(弑父與君) 것이라도, 또한(亦) 무엇을(何) 꺼리는 것이 있어(所憚而) 하지 못하겠는가(不爲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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