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팔일(八佾) 3-3] 사람이 인하지 않으면 예가 쓸데없다 / 인이불인 여례하(人而不仁, 如禮何?)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8. 31.
반응형

인하지 않으면 예악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인이불인 여례하)? 人而不仁, 如樂何(인이불인 여악하)?”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인데도(人而) 불인하면(不仁), 예를 따라서 무엇하겠는가(如禮何)? 사람인데도(人而) 불인하면(不仁), 악를 따라서 무엇하겠는가(如禮何)?

 

* 而는 가정이나 조건을 나타내는 접속사로 보고, 如의 본래 의미는 '~따르다, ~의지하다'이다. 여기서는 '행하다'의 의미로 '예를 행해서 무엇하겠는가?, '예를 의지해서 무엇하겠는가?'의 뜻이다. <논어의 문법적 이해, 류종목>

 

* 如禮何 : 직역하면 '예를 따르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다. 그 의미는 '예를 따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또는 '예를 따라서 무엇하겠는가?'라는 뜻이 된다. '如何'는 '어떠하다'는 뜻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어찌 된 일인가?' 등의 뜻으로 다양하게 쓴다.

 

* 전통적으로 예는 악을 동반하고, 크게 본다면 악이 예에 포함된다. 악은 하늘의 세계에, 예는 땅의 세계에 속한다. 악은 신을 거느리고 하늘을 따르고, 예는 귀를 거느리고 땅을 따른다. 악은 부드러운 정감에서 나오고, 예는 딱딱한 이지에서 나온다. 악은 정의 불가변자요, 예는 리의 불가역자다. 악은 위동, 서로 친해지기 위해서, 예는 위이, 서로 구별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악은 인간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고, 예는 인간의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예악이 위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인이다. 예를 예답게, 악을 악답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인이다. 인간이 인하지 않다면, 인의 덕성이 없는 인간이라면 예와 악의 내용이 의미가 없다. 인이라는 본질이 없는 예악은 형식적이고 제식적일 뿐이며, 빈껍데기만 남는다.

인은 무엇인가? 공자는 그토록 인을 말하지만 한 번도 규정한 적이 없다. 인은 그 자체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고정적, 불변적 실체를 가지는 언어적 개념의 결과물이 아니다.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游氏曰: “人而不仁, 則人心亡矣, 其如禮樂何哉? 言雖欲用之, 而禮樂不爲之用也.”

유씨가 말하기를: 사람인데도(人而) 인하지 않으면(不仁, 則), 사람의 마음이(人心) 없어지니(亡矣), 그(其) 예악(禮樂)을 어찌하겠느냐(如-何哉)? 비록(雖) 그것을 쓰고자 하지만(欲用之, 而) 예악(禮樂)이 그를 위해(爲之) 쓰일 수 없다(不-用也)는 말이다(言).

 

○ 程子曰: “仁者, 天下之正理, 失正理則無序而不和.”

정자가 말하기를: 인이란 것은(仁者), 천하의 바른 이치고(天下之正理), 바른 이치를 잃는다면(失正理則) 질서가 없어서(無序而) 어우러질 수 없다(不和).

 

李氏曰: “禮樂, 待人而後行, 苟非其人, 則雖玉帛交錯, 種鼓鏗鏘, 亦將如之何哉? 

계씨가 말하기를: 예와 악(禮樂)은, 사람을 기다린(待人) 뒤에(而後) 행해지니(行), 진실로(苟) 그 사람이 아니라면(非其人, 則) 비록(雖) 옥과 비단을(玉帛) 주고받으며(交錯), 종과 북(種鼓)을 연주하더라도(鏗鏘), 또한(亦) 장차(將) 어찌할 것인가(如之何哉)? 

 

然記者序此於八佾ㆍ雍徹之後, 疑其爲僭禮樂者發也.”

그러나(然) 기록자(記者)가 이것(此)을 팔일과 옹철의 뒤에(於八佾ㆍ雍徹之後) 배치했으니(序), 아마도(其) 참람되게 예악을 행한 사람(僭禮樂者) 때문에(爲) 말한(發) 것이 아닌가(疑) 싶다(也).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