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人而無信(인이무신), 不知其可也(부지기가야). 大車無輗(대거무예), 小車無軏(소거무월), 其何以行之哉(기가이행지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인데도(人而) 믿음이 없으면(無信), 그것(其)이 옳은지(可) 모르겠다(不知-也). 큰 수레에(大車) 예가 없고(無輗), 작은 수레에(小車) 월이 없으면(無軏), 장차(其) 무엇으로(何以) 그것을 가게(行之) 하겠는가(哉)?
*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 여기서 而는 가정이나 조건을 표시하는 접속사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도 '~이면서', '~으로서'의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 문장은 '사람이면서 신의가 없으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可'는 ①가능성이나 쓸모 또는 ② 옳다로 해석이 가능하다.
輗, 五兮反. 軏, 音月.
○ 大車, 謂平地任載之車. 輗, 轅端橫木, 縛軛以駕牛者. 小車, 謂田車, 兵車, 乘車.
대거(大車)는, 謂평지(平地)에서 짐 싣는(任載之) 수레다(車). 예(輗)는, 끌채(轅) 끝(端)의 가로대(橫木)로, 멍에를 매서(縛軛以) 소를 부리는 것(駕牛者)이다. 소거(小車)는, 전거(田車/사냥에 쓰는), 병거(兵車/전투에 쓰는), 승거(乘車/사람이 타는)를 말한다(謂).
軏, 轅端上曲, 鉤衡以駕馬者. 車無此二者, 則不可以行, 人而無信, 亦猶是也.
월(軏)은, 끌채 끝(轅端)의 윗 갈고리(上曲)로, 쇠 갈고리를 걸어서(鉤衡以) 말을 부리는 것(駕馬者)이다. 수레에(車) 이 두가지가(此二者) 없다면(無, 則) 운행할 수 없고(不可以行), 사람인데도(人而) 믿음이 없으면(無信), 또한(亦) 이와 같다(猶是也).
* 駕(가): 멍에, 탈것, 타다, (소나 말을) 부리어 몰다, 능가하다, 멍에 메다.
○ 『論語古今註』曰: “車與牛本是二物, 其體各別, 不相聯接. 惟以輗軏固結而聯接之, 然後車與牛爲一體, 牛行而車亦行, 所以喻信也. 我與人本是二人, 不以信固結之, 則亦無以行.”
論語古今註에 이르기를: 수레와 말(車與牛)이 본래(本是) 두 물건(二物)이지만, 그(其) 체(體)가 저마다 따로여서(各別), 서로(相) 붙어 있지 않는다(不-聯接). 오직(惟) 예와 월로(以輗軏) 단단히(固) 묶어서(結而) 그것을 연결하고(聯接之), 그 뒤에야(然後) 수레아 소(車與牛)가 한 몸이 되어(爲一體), 소가 가면(牛行而) 수레(車) 또한(亦) 가고(行), 그래서(所以) 믿음을 비유한 것이다(喻信也). 나와 남(我與人)이 본래(本是) 두 사람(二人)이고, 믿음으로(以信) 단단히(固) 그것을 묶지 않으면(不-結之, 則), 또한(亦) 갈(行) 수 없다(無以).
여기서 信은 공자가 계속 강조하는 인간의 언어생활에 관한 것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말은 구체적이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공자는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이 도덕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잣대라는 생각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언어는 최소한 우리가 사는 세계의 사실과 동떨어진 막연한 개념일 수는 없다. 언어의 진실성은 인간의 성실성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사람이 믿음이 없다면, 나는 그 가(可)함을 알 수 없다. 가하다는 인간의 가능성이라고 풀 수 있다. 즉, 믿음이 없는 사람, 진실하고 성실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인격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믿음이 없으면 예측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다.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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