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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四書) 독해/중용(中庸) 한문 문법(文法) 분석

[중용(中庸) 제13장 도불원인장(道不遠⼈章)] 도는 사람에게서 먼 것이 아니다 / 충서위도불원 시저기이불원 역물시어인 (忠恕違道不遠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

by ഗൗതമബുദ്ധൻ 2023.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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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子曰: “道不遠人.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 (자왈 도불원인 인지위도이원인 불가이위도)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子曰): “도는(道) 사람에게서(人) 멀지 않다(不遠). 사람이(人之) 도를(道) 행하면서도(而) 사람을(人) 멀리하면(遠) / 사람에게서(人) 멀다고 여긴다면(遠), 도를(道) 행할(爲) 수 없다(不可以).

 

* 주희가 이 문장을 수장의 “도야자道也者, 불가수유리야不可須離也"를 부연설명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타당하다. 그런데 이 문장은 논어와 연관 지어 이해하는 것이 더 명확하다. 공자는 "인"이라는 덕성을 제자 누구에게도 쉽게 허여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자는 또 이런 말을 한다: "인이 멀리 있다고? 내가 원하면 당장 나에게로 달려오는 것이 인인데!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7-29). 인 仁은 지고한 동시에 내가 마음먹으면 또 당장에도 구현되는 것이다. “도불원인道不遠人"은 "인원호재仁遠乎哉"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중용한글역주, 김용옥)

 

* "인지도이원인人之爲道而遠人"의 "원인遠人"을 "사람을 멀리한다"로 번역하는 것은 오류이다. "원"은 타동사가 아닌 자동사다. 즉, "원인遠"은 "사람을 멀리한다"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멀리 있다"는 뜻이다. 

 

13.2 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 (시운 벌가벌가 기칙불원)

시에 이르기를(詩云): ‘도낏자루를(柯) 베는 것이(伐) 도낏자루를(柯) 베는 것이(伐), 그(其) 법칙이(則) 멀리 있지 않다(不遠).’ 

 

* 柯(가): 가지, 줄기, 자루(끝에 달린 손잡이)

 

* 도낏자루를 만드는 법칙이 바로 내 손에 들려있는 도끼 속에 있다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도가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 고자 하는 맥락에서 시구가 인용된 것이다. 따라서 군자君子가 사람을 다스리는 법칙도 사람 그 자체에 내재하고 있다. (중용한글역주, 김용옥)

 

執柯以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 (집가이벌가 예이시지 유이위원)

도낏자루를(柯) 잡고서(執) 그것으로(以) 도낏자루를(柯) 베면서(伐), 곁눈질로(睨而) 그것을 보면서도(視之), 오히려(猶) 멀다고(遠) 여긴다(以爲).

 

* 睨(예): 곁눈질하다, 흘겨보다, 노려보다, 엿보다.

 

* '以+동사(형용사)', 즉 '以' 뒤에 동사나 형용사가 나오면, 대명사 之를 넣어 '以+之+동사(형용사)'로 보고, '그것으로서(써)'라고 해석한다. '執柯以伐柯'는 '柯(도낏자루)를 잡고() 그것으로써(以) 柯(도낏자루)를 벤다(伐)'라고 해석한다.

 

故君子以人治人, 改而止. (고군자이인치인 개이지)

그러므로(故) 군자가(君子) 사람으로(以人) 사람을(人) 다스리니(治), <스스로> 고치면(改) 그칠 뿐이다(而止) / 고치도록 <만들>(改) 뿐이다(而止)

 

* "이지而止"는 "이이而已"와 같은 의미로 새길 수도 있다.  "개改 즉, 스스로 허물을 고치게 만드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而止". 공자는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허물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15-29)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스림은 백성이 스스로를 교정해 나가도록 만드는 것일 뿐이다. 개改의 자발성이 강조된다.  "개이지而止”를 "백성들이 스스로를 고치면 곧 다스림을 그만둔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 '+명사', 즉 '' 뒤에 명사가 나오면, '명사를 가지고' 혹은 '명사로서(써)'의 의미이며, '' 는 우리말의 부사격 조사이다.

 

13.3 忠恕違道不遠(충서위도불원), 施諸己而不願(시저기이불원), 亦勿施於人(역물시어인).

충과 서는(忠恕) 도와의(道) 거리가(違) 멀지 않으니(不遠), 자기에게(己) 그것을(諸) 베풀어서(而) 바라지 않으면(不願), 또한(亦) 남에게(於人) 베풀지(施) 말아야 한다(勿).

 

* 違(위): 어긋나다, 거스르다, 다르다, 떨어지다, 달아나다, 멀리하다. 여기서는 '거리'의 뜻이다.

 

* "충서恕"가 같이 한 단어처럼 언급되고 있는 맥락에서 보면 "충忠"과 "서恕"를 구별되는 두 개의 대립적 개념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주희가 "자기의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이라 하고, 자기를 미루어 타인에게 미치는 것을 서恕라고 한다己之心爲 思, 推已及人爲恕”라고 했는데 이것은 이미 황간皇侃이 『논어』(415) 소疏에서 "충이란 자기 내면 한가운데 마음을 다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요, 서恕란 자기를 헤아려 사물을 형량하는 것이다忠謂盡中心也, 恕謂付己度物也"라고 한 것을 계승한 것이다. (중용한글역주, 김용옥)

 

* 이 자료는 「위령공衛靈公」 2와 23의 두 자료를 합성하여 구성한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논어』의 “기소불욕所不欲, 물시어인施於人"이라는 구절의 네거티브한 성격을 더 구체적으로 강조하여 "시저기이불施己而不願, 역물시어인亦勿施於人"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공자가 "기소불욕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을 말했다면 예수는 정확하게 그 반대인 “기소욕己所欲, 시어인於人"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세계의 보편성 universality 이란 현실적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의 호상성 reciprocality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정情이란 반드시 쌍방적 관계를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감의 보편성에 있어서 호상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네거티브한 포뮬레이션만이 그 진실한 기초가 된다. 포지티브 포뮬레이션은 독단이나 독선, 강요, 지배의 논리로 함몰되기 십상이다. (중용한글역주, 김용옥)

 

*  '諸'는 기본적으로 '모두'의 의미이다. 그러나 문장 중간에 쓰인 '諸'는 '於'은 준말로도 쓰이며, '저'로 독음한다. 문장에서 '諸'는 '모두' 또는 '여럿'으로 해석해 보고, 그 해석이 어색하면 '於'로 바꿔서 해석한다.

 

13.4 君子之道四, 丘未能一焉: (군자지도사 구미능일언 )

군자의(君子之) 도가(道) 넷인데(四), 나는(丘) 그중에(焉) 한 가지도(一) 잘하지 못한다(未能):

 

所求乎子, 以事父, 未能也; (소구호자 이사부 미능야)

자식에게(乎子) 바라는(求) 것으로(, 以) 부모를(父) 섬기는 것을(事), 잘하지 못했고(未能也); 

 

* '者'는 앞에 나온 단어의 수식을 받아 명사화하고, '所'는 뒤에 나오는 동사, 형용사의 수식을 받아 명사화한다. 각각 '所' 뒤에 놓인 '求'는 동사로서 술어인데, '所'와 연결해 명사화되었다. 

 

所求乎臣, 以事君, 未能也; (소구호신 이사군 미능야)

신하에게(乎臣) 바라는(求) 것으로(, 以) 임금을(君) 섬기는 것을(事), 잘하지 못했고(未能也); 

 

所求乎弟, 以事兄, 未能也; (소구호제 이사형 미능야)

동생에게(乎弟) 바라는(求) 것으로(, 以) 형을(兄) 섬기는 것을(事), 잘하지 못했고(未能也); 

 

所求乎朋友, 先施之, 未能也. (소구호붕우 선시지 미능야)

친구에게(乎朋友) 바라는 것을(所求), 먼저(先) 그에게(之) 베푸는 것을(施), 잘하지 못했다(未能也). 

 

* '之' 뒤에 단어가 없거나 단어가 있더라도 그 품사를 명사나 동사(형용사)로 보기 어려운 경우, '之'는 앞에 나온 명사(명사구)를 받는 대명사로 쓰인다. '先施之'에서 '先(먼저)'은 부사로서 술어 '施(베풀다)'를 수식하고, '之'는 대명사로서 '施'의 목적어다.

 

庸德之行(용덕지행), 庸言之謹(용언지근), 有所不足(유소부족), 不敢不勉(불감불면), 有餘不敢盡(유여불감진).

떳떳한 덕을(庸德之) 행하고(行), 떳떳한 말을(庸言之) 삼가서(謹), 부족한(不足) 점이(所) 있으면(), 감히(敢) 힘쓰지 않을(不勉) 수 없고(), 남음이 있으면(有餘) 감히(敢) 다하지 않는다() / 감히(敢) 드러내어 자랑하지 않는다().

 

* "용庸"은 범용, 일상 commonality의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 매우 우주론적 도道의 본체론적 성격이 있다.  그것은 일상적인 작용의 세계인 동시에, 만물에 통通하고 자득得하 여 도道를 구현하는 본체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용덕은 범용의 덕성인 동시에 가장 항상스러운 constant 덕이며, 가장 본질적인 essential 덕이며, 모든 만 물과 상통하는 작용을 지닌 보편적인 universal 덕이다. (중용한글역주, 김용옥)

 

* 주희는 "유소부족有所不足"은 행行의 문제로 보아, 행동에 부족함이 있으면 힘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해석하였고, "유여有餘"는 언言의 문제로 보아, 말에 유여함이 있으면 삼감을 극진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석했다. 부족과 유여는 행行과 언言, 모두에게 적용되는 상황이어야 할 것이다. “유여有餘, 불감진不敢盡"을 주역 「문언」에서 말한 “선세이불벌善世而不伐, 세상을 선하게 만들어 가면서도 그것을 남에게 내보이거나 자랑하는 법이 없다."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  '必', '敢', '欲' 등이 우리말 부사나 보조사로 쓰일 때, 술어 앞에 위치하므로 술어를 찾는 단서가 된다.

 

言顧行, 行顧言, 君子胡不慥慥爾!” (언고행 행고언 군자호불조조이)

말은(言) 행실을(行) 돌아보고(顧), 행실은(行) 말을(言) 돌아보니(顧), 군자가(君子) 어찌(胡) 독실하지(慥慥) 않겠는가(爾)!” 

 

* 慥(조): 착실한 모양, 서두는 모양, 갑자기

 

* "조조慌憐”를 주희는 "독실모篤實貌"라 했는데, "계신戒愼"의 의미가 강하게 들어가 있는 말이다. “조조慌慌”는 “축축蹙"(삼가는 모습) "축척煦踏”(조심스럽게 걷는 모습, 『논어』10-2)과 통한다.

 

* '言顧行'만 쓰였다면, 어떻게 해석할까? 먼저, 기본 의미와 품사는 '말하고(言, 동사), 돌아보고(顧, 동사), 행하다(行, 동사)'이다. 두 번째 문장 구조로는 ''이 '~을 말하다'이므로 뒤에 ''은 목적어가 되어, '行을 말하다'라고 해석된다. 다음으로 ''를 술어로 보면, ~을 돌아보다'로 ''앞의 '言'은 주어, '' 뒤의 ''은 목적어가 되어, '주어+술어+목적어 구조가 된다. 한문 해석은 단어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므로 어느 해석이 맞거나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해석은 문장구조와 단어의 결합으로 풀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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