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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諸子百家)/장자(莊子)

[장자(莊子) 내편(內篇) 제1편 소요유(逍遙遊) 1-1] 북쪽 바다에 사는 물고기 이름이 곤이다 / 북명유어 기명위곤(北冥有魚 其名爲鯤)

by ഗൗതമബുദ്ധൻ 2023.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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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이 변해서 새가 되니 그 이름이 붕이다

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북쪽(北) 검푸른 바다에(冥) 물고기가 있는데(有魚), 그 이름이(其名) 곤이다(爲鯤). 곤의 크기는(鯤之大), 그것이(其) 몇 천리나(千里) 되는지 알지 못한다(不知也).

 

* 北冥(북명): 북쪽 바다, 곧 北海를 말한다. 東方朔의 《十洲記》에는 “바닷물이 검푸른 것을 명해라 하늬바람이 없는데도 큰 파도가 백 길이나 인다 [水黑色 謂之冥海 無風洪波百丈].”라고 했고, 嵆康은 ‘아득하여 끝이 없는 뜻을 취한 것[取其溟漠無涯也]’이라고 풀이했고, 梁의 簡文帝는 ‘멀어서 끝이 없기 때문에 冥이라 한 것[窅窅無極 故謂之冥]’이라고 풀이했다. 이들 주석을 종합해 보면 北冥의 冥은 ‘暗黑色’의 뜻과 ‘아득하여 끝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적절하다.

 

* 鯤(곤): 물고기 이름. 淸 郭慶藩은 方以智의 견해를 따라 “곤은 본래 작은 물고기의 이름인데 장자는 큰 물고기의 이름으로 썼다[鯤本小魚之名 莊子用爲大魚之名].”라고 풀이했다. 곧 알에서 막 자란 작은 물고기인 鯤을 더할 수 없이 큰 물고기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에서 齊物의 뜻이 암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은 것을 큰 것에 비유한 것이라면, 〈齊物論〉편 제1장의 “天地도 한 개의 손가락이고, 萬物도 한 마리의 말이다 [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라는 비유와 비슷하다.

 

化而爲鳥, 其名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그것이> 변해서(化而) 새가 되는데(爲鳥), 그 이름이(其名) 붕이다(鵬). 붕의(鵬之) 등은(背), 것이(其) 몇 천리나(千里) 되는지 알지 못하고(不知也);  힘내서(怒而) 날면(飛), 그 날개가(其翼) 하늘의 구름이(天之雲) 드리운(垂) 것과 같다(若).

 

* 怒(노): 온몸의 힘을 다함. 淸 林雲銘은 《莊子因》에서 “온몸에 힘을 꽉 집어넣는다 [用力之意].”는 뜻으로 풀이했고 民國 馬叙倫은 힘쓴다 [勉]는 뜻으로 풀이했다. 怒(노): 성내다, 꾸짖다, 세차다, 힘쓰다, 기세, 위세.

* 垂天之雲: 하늘에 드리운 구름. 垂는 드리운다는 뜻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을 표현. 司馬彪는 “구름이 하늘 한 곁에 드리우고 있는 것 같다 [若雲垂天旁].”라고 풀이했다.

 

是鳥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 齊諧者, 志怪者也.

이(是) 새는(鳥也), 바다가(海) 움직이면(運則) 장차(將) 남명으로(於南冥) 옮겨간다(徙). 남명이란(南冥者), 하늘의 연못이다(天池也). 제해란(齊諧) 사람이(者), 괴이한 것을(怪) 잘 기억하는(志) 사람이다(者也).

 

* 海運: 바다가 움직임. 육덕명, 성현영 등은 運을 轉으로 풀이했고, 곽경번은 《玉篇》을 근거로 運을 行의 뜻으로 풀이했다.

* 運(운): 움직이다, 궁리하다, 쓰다, 휘두르다, 어지럽다. 

* 齊諧(제해): 人名. 또는 書名. 林希逸은 “제해는 책 이름이다. 여기에 記述되어 있는 내용은 모두 지금의 《山海經》과 같은 유의 괴이하고 상식에 벗어난 일들이다[齊諧書名也 其所志述者 怪異非常之事 如今山海經之類)].”라고 했으나, 司馬彪, 崔譔, 成玄英, 池田知久 등은 사람 이름으로 보았다. 

 

諧之言曰: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摶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제힐이(諧之) 말하기를(言曰): '붕이(鵬之) 남명으로(於南冥) 옮겨갈 때는(也), 물이(水) 삼천 리를(三千里) 치고(擊), 회오리 바람을(扶搖) 타고 올라(摶而) 위로(上者) 9만 리를 올라가서(九萬里), 떠나고서(去以) 6개월에(六月) 숨을 <한 번> 쉬는 것이다(息者也)'고 했다. 

 

* 擊(격): 치다, 부딪치다, 공격하다, 마주 보다, 두드리다.

* 摶(단): 뭉치다, 둥글다, 후려치다, 맺다, 엉기다, 모이다, (새가 날며) 돌다. 

* 摶扶搖(단부요): 회오리바람을 탐. 摶은 ‘바람 風’ 자와 합하여 摶風이라 할 때는 빙 돌며 날다, 새가 바람을 타고 날쌔게 날아오르다의 뜻. 王叔岷의 《莊子校詮》에서는 “摶과 搏은 글자 모양이 비슷해서 잘못 쓰였을 것이며, 搏은 拍(날개로 친다)과 같다.”라고 풀이했다.

* 去以六月息者也: 떠나서 6개월을 계속 난 뒤에 비로소 한 번 크게 숨을 내쉼. 以六月은 ‘6개월 동안 즉 반년을 난 뒤’라는 뜻이고 息은 숨 쉰다는 뜻.

☞ 전치사 以가 시간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이때의 뜻은 "于, 在"에 가깝다. (武以始元六年春至京師. 무는 시원 6년 봄 수도에 이르렀다.)

 

野馬也, 塵埃也, 生物之以息相吹也.

아지랑이와(野馬也), 티끌은(塵埃也), 살아있는 생명이(生物之) 숨을 쉬면서(息) 서로(相) 내뿜기(吹) 때문이다(也).

 

* 野馬: 아지랑이, 맑은 봄날 멀리 땅 위에 아른거리는 공기(空氣) 현상(現象). 郭象은 ‘野馬는 일렁거리는 기[野馬者 游氣也]’라고 풀이했는데, 원래는 말[馬]의 일종이다.

* 生物之以息相吹也: 살아 있는 생물들이 입김을 서로 내뿜는 데서 생겨남. 生物은 〈人間世〉편 제3장에서도 살아 있는 생물의 뜻으로 쓰였다. 

 

天之蒼蒼, 其正色邪? 其遠而無所至極邪?

하늘이(天之) 푸르고 푸른 것이(蒼蒼), 그(其) 본래의(正) 색깔인가(色邪)? <아니면> 그것이(其) 멀어서(遠而) 끝에(極) 이를 곳이(所至) 없어서인가(邪)?

 

* 天之蒼蒼, 其正色邪?: 邪는 의문형 종결사. 이 구절은 〈齊物論〉편 제3장의 ‘正處’, ‘正味’, ‘天下之正色’의 논의와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其視下也亦若是, 則已矣.

그가(其, 붕) 아래를(下) 내려볼 때도(也) 또한(亦) 이와(是) 같을 뿐이다(, 則已矣).

 

且夫水之積也不厚, 則負大舟也無力.

그러나(且) 저(夫) 물이(水之) 쌓인 것이(積也) 두텁지 않다면(不厚, ) 큰 배를(大舟) 짊어지는 것에(也) 힘이 없다(無力).

 

覆杯水於坳堂之上, 則芥為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

물구덩이(坳堂之) 위에(上) 한 잔의 물을(杯水) 쏟는다면(, 則) 작은 풀이(芥) 배가 되지만(為之舟), 거기에(焉) 잔을(杯) 둔다면(則) <아래> 달라붙으니(膠), 물이 얕고(水淺而) 배가 크기 때문이다(舟大也).

 

* 芥(개): 겨자, 갓, 티끌, 작은 풀

* 坳堂(요당): 마루의 움푹 파인 자리. 坳는 깊이 파인 곳 [陷也 凹也]. 林希逸은 ‘坳堂 堂上坳深處也’라 주해하고 있다.

 

風之積也不厚, 則其負大翼也無力.

바람이(風之) 쌓인 것이(積也) 두텁지 않으면(不厚, 則) 그(其) 큰 날개를(大翼) 짊어지는 것에(也) 힘이 모자란다(無力).

 

故九萬里則風斯在下矣, 而後乃今培風; 背負青天而莫之夭閼者, 而後乃今將圖南.

그러므로(故) 9만 리까지 <올라가면>(九萬里則) <날개를 지탱할만한> 바람이(風) 곧(斯) 아래에 있고(在下矣), 이후에야(而後) 이제(乃今) 바람을 타고(培風); 등에(背) 푸른 하늘을(青天) 지고서(而) 무엇도(莫之) 가로막는 것이(夭閼者) 없고, 나서야(而後) 이제(乃今) 장차(將) 남쪽을 <날기를> 도모한다(圖南).

 

* 圖南: 남쪽으로 가는 것을 도모함. 林希逸은 “도남은 북해에서 남쪽으로 옮겨갈 것을 도모함이다. 도는 모이다[圖南 自北海而謀南徙也 圖謀也].”라고 풀이했다.

 

蜩與學鳩笑之曰: '我決起而飛, 槍榆枋, 時則不至而控於地而已矣, 奚以之九萬里而南?'

매미와(蜩與) 작은 비둘기가(學鳩) 이것을 비웃으며(笑之) 말하기를(曰): '우리는(我) 힘을 다해(決) 일어나서(起而) 날아올라(飛), 느릅나무나 다목나무에(榆枋) 다다르는데(槍), 때로는(時則) 이르지 못하고(不至而) 땅에(於地) 내동댕이쳐질 뿐인데(而已矣), 무엇 때문에(奚以) 구만 리를 올라가서(九萬里而) 남으로(南) 가려고(之) 하는가(爲)?'

 

* 槍(창): 장창, 어지럽다, 다다르다, 막다.

* 時則不至而控於地: 때로는 혹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동댕이쳐짐. 王念孫은 則을 或으로 풀이했다. 

* 奚以之九萬里而南爲: '무엇 때문에 9만 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남쪽으로 가는가'라는 뜻이다. 之는 가다는 뜻의 동사이고, ‘奚以…爲’는 ‘무엇 때문에 …하는가’의 뜻이다.

 

適莽蒼者三湌而反, 腹猶果然; 適百里者宿舂糧; 適千里者三月聚糧.

풀숲 우거진 곳에(莽蒼, 들판) 가는 사람은(者) 세끼 음식을 먹고(三湌而) 돌아와도(反), 배가(腹) 여전히(猶) 부르고(果然); 백리를(百里) 가는 사람은(者) 하룻밤 필요한(宿) 식량을 찧어 <준비하고>(舂糧); 천리를(千里) 가는 사람은(者) 석 달 필요한(三月) 식량을 모은다(聚糧).

 

* 湌(찬): 먹다, 거두다, 음식, 샛밥.

* 宿舂糧: 전날 밤에 식량을 찧음. 宿은 전날 밤. 舂은 방아를 찧다의 뜻.

 

之二蟲又何知!

그러니(之) 두 벌레가(二蟲) 또(又) 어찌 알겠는가(何知)! 

 

<출처: 동양고전번역서 장자, 동양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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