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之敎者(고지교자), 家有塾(가유숙), 黨有庠(당유상), 術有序(술유서), 國有學(국유학).
옛날의(古之) 교육하는(敎) 것을(者) <말하자면>, 가(家, 25 가구 단위 지역)에는 숙이 있었고(有塾), 당(黨, 500 가구 단위 지역)에는 상이 있었고(有庠), 술(術, 12,500 가구 단위 지역(遂))에는 서가 있었고(有序), 나라 <수도>에는(國) 학이 있었다(有學).
比年入學(비년입학), 中年考校(중년고교).
매년(比年) 학(學)에 들어가고(入), 둘째 해에(中年, 2년에 한 번) 가르침을 점검했다(考校).
一年視離經辨志(일년시리경변지), 三年視敬業樂群(삼년시경업락군), 五年視博習親師(오년시박습친사), 七年視論學取友(칠년시논학취우), 謂之小成(위지소성);
일 년에는(一年) 경전을 나누고(離經) 뜻을 변별하는지를(辨志) 보고(視), 삼 년에는(三年) 학업을 공경하게 하고(敬業) 무리와 즐겁게 어울리는지(樂群)를 보고(視), 오 년에는(五年) 널리 익히고(博習) 스승을 잘 따르는지(親師)를 보고(視), 칠 년에는(七年) 배운 것을 논하고(論學) 벗을 취하는(取友) 것을 보니(視), 이것을(之) 소성이라(小成) 했고(謂);
九年知類通達(구년지류통달), 強立而不反(강립이불반), 謂之大成(위지대성).
구 년에는(九年) 부류를 알고(知類) 통달하여(通達), 굳건하게 서서(強立而)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不反), 이것을(之) 대성이라(大成) 했다(謂).
夫然後足以化民易俗(부연후족이화민역속), 近者說服(근자열복), 而遠者懷之(이원자회지), 此大學之道也(차대학지도야).
이런(夫) 이후에야(然後) 백성을 교화하고(化民) 풍속을 바꾸기에(易俗) 충분하고(足以), 가까운 사람이(近者) 기쁘게 복종하고(說服, 而) 먼 사람이(遠者) 그것을 마음에 품으니(懷之), 이것이(此) 대학의(大學之) 도다(道也).
《記》曰: 「蛾子時術之(아자시술지).」 其此之謂乎(기차지위호)!
기록에 말하기를(《記》曰): 개미가 흙을 입에 머금는 것을 배운다(蛾子時術之). 아마(其) 이것을(此之) 말하는 것인가(謂乎)!
여기서 '대학지도大學之道'라는, 대학의 첫머리에 있는 것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그리고 대학이란 교육기관의 교육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청나라의 진례는 여기서 말하는 '지류통달知類通達'이 대학에서 말하는 '물격이후지지物格而后知至'와 상통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소성小成'과 '대성大成'이다. 소성과 대성은 '성신成身', 즉 수신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수신의 가장 마지막 단계는 대성이며, 대성은 '강립이불반強立而不反'이다. 한번 굳건하게 서면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욕망의 제어다. 이것이 송유가 말하는 인심과 도심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화민역속化民易俗'의 논리는 단지 사회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 개체에서도 '화민역속'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바로 '나의 인격을 변화시키고, 나의 풍속(습관)을 개혁'하는 것이다. '진리를 깨달아 굳건히 서서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공부의 참된 의미이고, 대학의 길이 된다. (대학학기 한글역주,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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