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에게 나루터 가는 길을 묻다
長沮ㆍ桀溺耦而耕(장저걸익우이경), 孔子過之(공자과지), 使子路問津焉(사자로문진언).
장저와(長沮) 걸익이(桀溺) 나란히 서서(耦而) 밭을 가는데(耕), 공자가(孔子) 그들을(之) 지나가다(過), 자로(子路)로 하여금(使) 그들에게(焉) 나루터를(津) 묻도록(問) 했다.
○ 二人, 隱者. 耦, 並耕也. 時孔子自楚反乎蔡. 津, 濟渡處.
두 사람이(二人), 은자다(隱者). 우는(耦), 나란히(並) 밭가는 것이다(耕也). 이때(時) 공자가(孔子) 초나라에서(自楚) 채나라로(乎蔡) 돌아왔다(反). 진(津)은, 물 건너는(濟渡) 곳이다(處).
長沮曰: “夫執輿者爲誰(부집여자위수)?” 子路曰: “爲孔丘(위공구).”
장저가 말하기를(長沮曰): “저(夫) 수레를 잡고 있는(執輿) 사람이(者) 누구인가(爲誰)?” 자로가 말하기를(子路曰): “공구(孔丘) 입니다(爲).”
○ 執輿, 執轡在車也.
집여(執輿)는, 고삐를(轡) 잡고(執) 마차에(車) 있음이다(在也).
曰: “是魯孔丘與(시노공구여)?” 曰: “是也(시야).” 曰: “是知津矣(시지진의).”
말하기를: “이 사람이(是) 노나라의(魯) 공구인가(孔丘與)?” 말하기를: “그렇습니다(是也).” 말하기를: “이 사람이(是) 나루터를(津) 알 것이다(知矣).”
- 是魯孔丘與: '是'는 '~이다'라는 뜻의 술어로 쓰였다.
○ 蓋本子路御而執轡, 今下問津, 故夫子代之也. 知津, 言數周流, 自知津處.
아마도(蓋) 본래(本) 자로가(子路) 마차를 몰고(御而) 고삐를 잡았는데(執轡), 지금(今) 내려서(下) 나루터를 물었고(問津), 그러므로(故) 선생님이(夫子) 그것을 대신했다(代之也). 지진(知津)은, 자주(數) 돌아다녀서(周流), 스스로(自) 나루터(津) 있는 곳(處)을 안다(知)는 말이다(言).
問於桀溺(문어걸익), 桀溺曰: “子爲誰(자위수)?” 曰: “爲仲由(위중유).” 曰: “是魯孔丘之徒與(시공구지도여)?” 對曰: “然(연).”
걸익에게(於桀溺) 묻자(問), 걸익이(桀溺) 말하기를(曰): “그대는(子) 누구인가(爲誰)?” 말하기를(曰): “중유입니다(爲仲由).” 말하기를(曰): “이 사람이(是) 노나라(魯) 공구의(孔丘之) 무리인가(徒與)?” 대답하여 말하기를(對曰): “그렇습니다(然).”
曰: “滔滔者天下皆是也(도도자천하개시야), 而誰以易之(이수이역지)?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차이여기종피인지사야), 豈若從辟世之士哉(기약종피세지사재)?” 耰而不輟(우이불철).
말하기를: “도도한(滔滔) 것이(者) 천하가(天下) 모두(皆) 이러하니(是也, 而) 누구와 더불어(誰以) 그것을(之) 바꾸겠는가(易)? 또(且) 그대가(而) 사람 피하는(辟人之) 선비를(士) 따르기(從) 보다는(與其也), 세상 피하는(辟世之) 선비(士)를 따르는(從) 것이 낫지 않은가(豈若哉)?” 씨앗 덮으면서(耰而) 그치지 않았다(不輟).
-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與其~豈若'은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다'라는 뜻의 관용어다. 與其(여기)는 與(여)로 쓰기도 하고 豈若(기약) 대신에 豈如(기여)·孰若(숙약)·孰如(숙여)·不若(불약)·不如(불여) 등을 쓸 수도 있다.
'辟人之士'는 '맘에 들지 않은 임금을 피해다니는 사람'이란 뜻으로 공자를 조롱한 것이다.
○ 滔滔, 流而不反之意. 以, 猶與也. 言天下皆亂, 將誰與變易之? 而, 汝也. 辟人, 謂孔子. 辟世, 桀ㆍ溺自謂. 耰, 覆種也. 亦不告以津處.
도도(滔滔)는, 흘러서(流而) 돌아오지 않는다는(不反之) 뜻이다(意). 이(以)는, 더불어와 같다(猶與也). 천하가(天下) 모두(皆) 혼란스러우니(亂), 장차(將) 누구와 더불어(誰與) 그것을(之) 바꾸겠는가(變易) 하는 말이다(言) 이(而)는, 너다(汝也). 피인(辟人)은, 공자를 말한다(謂孔子). 피세(辟世)는, 걸익(桀溺) 자신을(自) 말한다(謂). 우(耰)는, 씨앗을 덮음이다(覆種也). 또한(亦) 나루터를(以津處) 일러주지 않음이다(不告).
子路行以告(자로행이고). 夫子憮然曰(부자무연왈): “鳥獸不可與同群(조수불가여동군),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오비사인지도여이수여)? 天下有道(천하유도), 丘不與易也(구불여역야).”
자로가(子路) 돌아가서(行以) 고했다(告). 선생님이(夫子) 무연하게(憮然, 실망한 모습으로) 있다가 말하기를(曰): “조수와 더불어(鳥獸與) 함께(同) 무리지을(群) 수 없으니(不可), 내가(吾) 이(斯) 사람의(人之) 무리와(徒) 함께하지(與) 않으면(非而) 누구와 함께하겠는가(誰與)? 천하에(天下) 도가 있다면(有道), 내가(丘) 더불어(與) 바꾸지(易) 않는다(不也).”
○ 憮然, 猶悵然, 惜其不喩己意也. 言所當與同群者, 斯人而已, 豈可絶人逃世以爲潔哉? 天下若已平治, 則我無用變易之. 正爲天下無道, 故欲以道易之耳.
무연(憮然)은, 몹시 슬픔과(悵然) 같고(猶), 그가(其) 자기 뜻을(己意) 깨닫지 못함(不喩)을 슬퍼하는(惜) 것이다(也). 마땅히(當) 더불어(與) 함께 무리지어야 할(同群) 것은(所者), 이 세상(斯) 사람들일(人) 뿐이니(而已), 어찌(豈) 사람을 끊고(絶人) 세상을 피해서(逃世以) 깨끗하게 될 수(爲潔) 있겠는가(可哉) 하는 말이다(言). 천하가(天下) 만약(若) 이미(已) 공평하게 다스려진다면(平治, 則) 내가(我) 그것을(之) 바꾸려고(變易) 쓸 것이 없다(無用). 바로(正) 천하에(天下) 도가 없기(無道) 때문이고(爲), 그러므로(故) 도로써(以道) 그것을 바꾸려(易之) 할(欲) 뿐이다(耳).
○ 程子曰: “聖人不敢有忘天下之心, 故其言如此也.”
정자가 말하기를: “성인이(聖人) 감히(敢) 천하를(天下) 잊는(忘之) 마음이(心) 있지 않고(不有), 그러므로(故) 그 말이(其言) 이와 같다(如此也).”
張子曰: “聖人之仁, 不以無道必天下而棄之也.”
장자가 말하기를: “성인의(聖人之) 인이(仁), 천하에(天下) 도가 없기(無道) 때문에(以) 단정하고(必而) 그것을 벌리지(棄之) 않는다(不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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