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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중용장구(中庸章句)

[중용장구(中庸章句) 6] 양 끝을 잡아 헤아려 백성에 중도를 베푼다 / 순호문장(舜好問章) / 집기양단 용기중어민(執其兩端, 用其中於民)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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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임금은 매우 지혜로웠을 것이다

子曰: “舜其大知也與! (자왈 순기대지야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순임금(舜)은 아마도(其) 크게(大) 지혜로웠을(知) 것이다(也與)!

 

舜好問而好察邇言, (순호문이호찰이언)

순임금(舜)은 묻기(問)를 좋아하고(好-) <일상적인> 하찮은 말(邇言) 살피기(好)를 좋아했고(好),

 

舜之所以爲大知者, 以其不自用而取諸人也. 

순임금이(舜之) 크게(大) 지혜로운(知) 사람이(者) 된(爲) 까닭은(所以), 그(其)가 스스로(自)를 쓰지(用) 않고(而) 남에게서(諸人) 취했기(取) 때문이다(以-也).

 

邇言者, 淺近之言, 猶必察焉, 其無遺善可知.

이언은(邇言者), 천근한(淺近之, 천박하고 얕은) 말(言)인데, 오히려(猶) 반드시(必) 거기에서(焉) 살피고(察), 아마도(其) 좋은 점(善)을 남김이(遺) 없음을(無) 알(知) 수 있다(可)

 

隱惡而揚善, (은악이양선)

<남의> 나쁜 것(惡)은 숨겨주고(隱-而) 좋은 것(善)은 드러나게(揚) 했고,

 

然於其言之未善者, 則隱而不宣; 其善者, 則播而不匿. 

그러나(然) 그(其) 말의(言之) 좋지(善) 않은(未) 것(者)에 대해서(於)라면(則), 숨기고(隱而) 드러내지(宣) 않았고(不); 그(其) 좋은 점(善者)이라면(則), 퍼뜨리고(播而) 숨기지 않았다(不匿)

 

其廣大光明, 又如此, 則人孰不樂告以善哉?

그(其) 넓고 크고 빛나고 밝음이(廣大光明), 또(又) 이와 같다면(如此, 則), 사람들(人) 중 누가(孰) 좋은 점으로(以善) 고하기(告)를 즐기지 않겠는가(不樂-哉)?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斯以爲舜乎!” (집기양단 용기중어민 기사이위순호)

<의견이 다르면> 그(其) 양 끝(兩端)을 잡아(執), 백성에게(於民) 그(其) 중도(中)를 쓰고(), 아마도(其) 이것(斯) 때문에(以) 순임금(舜)이 되었으리라(爲-乎)!

  • 'A以爲B, 以A爲B'는 'A를 B로 여기다, A를 B로 삼다'라는 뜻의 숙어로 쓰인다. 이때 '以'를 목적격 조사인 '~을/를'로 보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以爲'를 숙어로 쓰지 않을 때도 있다. 또한, '以'는 '때문에 또는 때문이다'라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兩端, 謂衆論不同之極致. 蓋凡物皆有兩端, 如小大ㆍ厚薄之類. 

양단(兩端)은, 여럿의 의견(衆論)이 같지 않은(不同) 것의(之) 맨 끝(極致)을 말한다(謂). 대체로(蓋) 모든 사물(凡物)이 모두(皆) 양 끝(兩端)을 가지니(有), 크고 작음(小大)과 얇고 두터움(厚薄) 따위(之類)와 같다(如).

 

於善之中又執其兩端而量度以取中, 然後用之, 則其擇之審而行之至矣.

좋은 것의(善之) 가운데(中)서(於) 또(又), 그(其) 양 끝(兩端)을 잡아서(而) 헤아리고 생각하여(量度) 중도를 취하고(取中) 나서(然後), 그것을 쓰면(用之, 則), 그(其) 선택이(擇之) 자세하고(而) 행해짐이(行之) 지극하다(至矣).

 

然非在我之權度精切不差, 何以與(예)此? 

그러나(然) 내(我之) 저울(權)과 자(度)가 정확하고 적절해서(精切) 어긋나지 않음이(不差) 있지(在) 않다면(非), 어찌 여기에 참여하겠는가? 

  • 精切(정절) : 1. 확실하다. 2. 정확하고 적절하다

 

此知之所以無過不及, 而道之所以行也. 

이것(此)이 지혜가(知之) 과불급(過不及)이 없는(無) 까닭이고(所以), 그리고(而) 도가(道之) 행해지는(行) 까닭이다(所以-也).

 

右第六章.

이상은 제 6장이다. 


순임금의 큰 지혜는 '캐물음'에 있다. 이런 주제는 서양 철학사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타인의 무지를 폭로하기 위한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신탁의 명제는 온전한 지식의 신의 전유물이고, 인간의 지식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대학의 '호문(好問)'은 자기 자신의 무지를 일깨우고, 자기 지식을 시중화(時中化)하는 작업이며, 자신을 겸손하게 비우는 격물치지의 과정이다. 논어 팔일편에 나오는 공자의 '매사문(每事問)'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용 한글역주,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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