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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이루상(離婁上) 10] 스스로 해치고 스스로 버리는 사람 / 자포자기장[自暴自棄章] / 자포자 불가여유언야(自暴者, 不可與有言也;)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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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曰: “自暴者(자포자), 不可與有言也(불가여유언야); 自棄者(자기자), 不可與有爲也(불가여유위야). 言非禮義(언비례의), 謂之自暴也(위지자폭야); 吾身不能居仁由義(오신불능거인유의), 謂之自棄也(위지자기야).

맹자가 말하기를: “스스로(自) 해치는(暴) 사람은(者), 더불어(與) 말이 있을(有言) 수 없고(不可也); 스스로(自) 버리는(棄) 사람은(者), 더불어(與) 할 것이 있을(有爲) 수 없다(不可也). 말이(言) 예와 의를(禮義) 비방하는(非) 것을, 그것을(之) 자포라고(自暴) 하고(也); 내 몸이(吾身) 인에 머물고(居仁) 의를 따를(由義) 수 없는(不能) 것을, 그것을(之) 자기라고(自棄) 한다(也).

  • 自暴者(자포자), 不可與有言也: '不可以與自暴者有言也'라는 문장에서 '自暴者'를 강조하려고 앞으로 빼고, '不可以'를 '不可'로 바꾸었다. 이처럼 전치사나 서술어의 목적어를 강조하려고 앞으로 옮기면 不可以'를 '不可'로 쓴다. 

 

暴, 猶害也. 非, 猶毁也. 自害其身者, 不知禮義之爲美而非毁之, 雖與之言, 必不見信也. 

포(暴)는, 해침과 같다(猶害也). 비(非)는, 훼손함과 같다(猶毁也). 스스로(自) 자기 몸을(其身) 해치는(害) 사람은(者), 예의가(禮義之) 아름답게 됨을(爲美) 알지 못하고(不知而) 그것(之)을 비방하고 훼손하니(非毁), 비록(雖) 그와 더불어(與之) 말을 해도(言), 반드시(必) 믿음을(信) 볼 수 없다(不見也). 

 

自棄其身者, 猶知仁義之爲美, 但溺於怠惰, 自謂必不能行, 與之有爲, 必不能勉也.

스스로(自) 자기 몸을(其身) 버리는(棄) 사람은(者), 猶인의가(仁義之) 아름다움이 됨을(爲美) 알지만(知), 단지(但) 게으름에(於怠惰) 빠져(溺), 반드시(必) 행할(行) 수 없다고(不能) 스스로 말하고(自謂), 그와(之) 더불어(與) 일이 있으면(有爲), 반드시(必) 힘쓰지(勉) 못한다(不能也).

 

程子曰:“人苟以善自治, 則無不可移者, 雖昏愚之至, 皆可漸磨而進也. 

정자가 말하기를: “사람이(人) 만약(苟) 선으로(以善) 자기를 다스리면(自治, 則) 옮기지(移, 변하지) 못할(不可) 사람이(者) 없고(無), 비록(雖) 어둡고 어리석이(昏愚之) 지극해도(至), 모두(皆) 점점(漸) 연마해서(磨而) 나아갈(進) 수 있다(可也). 

 

惟自暴者拒之以不信, 自棄者絶之以不爲, 雖聖人與居, 不能化而入也. 此所謂下愚之不移也.”

오직(惟) 자포자(自暴者)는 믿지 않고서(以不信) 그것을 거부하고(拒之), 자기자(自棄者)는 하지 않고서(以不爲) 그것을 그만두니(絶之), 비록(雖) 성인이(聖人) 더불어(與) 머물러도(居), 변하여(化而) 들어갈(入) 수 없다(不能也.) 이것이(此) 이른바(所謂) 하우불이다(下愚之不移也).”

 

仁, 人之安宅也(인 인지안택야); 義, 人之正路也(의 인지정로야).

인(仁)은, 사람의(人之) 편안한(安) 집이고(宅也); 의(義)는, 사람의(人之) 바른 길이다(正路也).

 

仁宅已見前篇. 義者, 宜也, 乃天理之當行, 無人欲之邪曲, 故曰正路.

인택(仁宅)은 이미(已) 전편에(前篇) 보인다(見). 의는(義者), 마땅함이요(宜也), 바로(乃) 천리이(天理之) 당연한(當) 행함이니(行), 인욕의(人欲之) 그릇됨과 굽힘(邪曲)이 없고(無), 그러므로(故) 바른 길이라고(正路) 한다(曰).

 

曠安宅而弗居(광안택이불거), 舍正路而不由(사정로이불유), 哀哉(애재)!”

편안한 집(安宅)을 비우고(而) 머물지 않고(弗居), 바른 길을(正路) 버리고(而) 지나가지 않으니(不由), 슬프구나(哀哉)!”

 

○ 曠, 空也. 由, 行也.

광(曠)은, 빔이다(空也). 유(由)는, 지나감이다(行也).

 

○ 此章言道本固有而人自絶之, 是可哀也. 此聖賢之深戒, 學者所當猛省也.

이 장(此章)은 도(道)가 본래(本) 고유하지만(固有而) 사람이(人) 스스로(自) 그것을 끊으니(絶之), 이것이(是) 슬퍼할 만하다(可哀)는 말이다(言也). 이것은(此) 성현의(聖賢之) 깊은(深) 경계요(戒), 학자가(學者) 마땅히(當) 크게(猛) 반성할(省) 것이다(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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