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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이루상(離婁上) 8] 불인자와 더불어 말할 수 없다 / 불인자가여언장(자취지야장)[不仁者可與言章(自取之也章)]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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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曰: “不仁者可與言哉(불인자가여언재)? 安其危而利其菑(아기위이이기치), 樂其所以亡者(락기소이망지). 不仁而可與言(불인이가여언), 則何亡國敗家之有(즉하망국패가지유)?

맹자가 말하기를: “불인자와(不仁者) 더불어(與) 말할(言) 수 있겠는가(哉)? 그(其) 위험을(危) 편안하게 여기고(而) 그 재앙을(其菑) 이롭게 여겨(利), 그(其) 망할(亡) 원인이 될(所以) 것을 좋아하는(樂) 사람이다(者). 불인한(不仁) 사람인데도(而) 더불어(與) 말할(言) 수 있다면(, 則) 어찌(何) 망한 나라와(亡國) 무너진 집안이(敗家之) 있겠는가(有)?

  • 其所以亡者: '以' 다음에 서술어가 오면 以'와 서술어 사이에 '之'가 생략된 것으로 보고 해석한다. '之'는 앞 구절의 '其危, 其菑'를 받는다.
  • 何亡國敗家之有: '之'는 도치를 나타낸다. 원래 문장은 '有何亡國敗家'인데 의문사를 포함한 '何亡國敗家'를 앞으로 보내고 도치를 표시했다.

 

○ 安其危利其菑者, 不知其爲危菑而反以爲安利也. 所以亡者, 謂荒淫暴虐, 所以致亡之道也. 

그 위험을(其危) 편안하게 여기고(安) 그 재앙을(其菑) 이롭게 여기는(利) 사람(者)은, 그것이(其) 위험과 재앙(危菑)이 됨을(爲) 알지 못하고(不知而) 반대로(反) 편안함과 이익(安利)으로 여긴다(以爲也). 망할 원인이 될 것(所以亡)이란 것(者)은, 謂황음하고(荒淫) 포악해서(暴虐), 망함에 이르게(致亡) 되는 것(所以之) 방법이다(道也). 

 

不仁之人, 私欲固蔽, 失其本心, 故其顚倒錯亂至於如此, 所以不可告以忠言, 而卒至於敗亡也.

불인한(不仁之) 사람(人)은, 사욕이(私欲) 굳게(固) 가려서(蔽), 그(其) 본심을(本心) 잃고(失), 그러므로(故) 그(其) 전도와(顚倒) 착란(錯亂)이 이와 같음에(於如此) 이르니(至), 그래서(所以) 충언으로(以忠言) 고해줄(告) 수 없고(不可, 而) 마침내(卒) 패망에(於敗亡) 이른다(至也).

 

有孺子歌曰(유유자가왈): ‘滄浪之水淸兮(창랑지수청혜), 可以濯我纓(가이탁아영); 滄浪之水濁兮(창랑지수탁혜), 可以濯我足(가이탁아족).’

어떤(有) 유자(孺子, 동자)가 노래하며 말하기를(歌曰): ‘창랑의(滄浪之) 물이(水) 맑으면(淸兮), 내(我) 갓끈(纓)을 씻을(濯) 수 있고(可以); 창랑의(滄浪之) 물이(水) 탁하면(濁兮), 내 발(我足)을 씻을(濯) 수 있다(可以).’

 

○ 滄浪, 水名. 纓, 冠系也.

창랑(滄浪)은, 물 이름이다(水名). 영(纓)은, 갓끈이다(冠系也).

 

孔子曰: ‘小子聽之(소자청지)! 淸斯濯纓(청사탁영), 濁斯濯足矣(탁사탁족의), 自取之也(자취지야).’

공자가 말하기를: ‘아이들아(小子) 저것을 들어라(聽之)! 맑으면(淸斯) 갓끈을 씻고(濯纓), 탁하면(濁斯) 발을 씻으니(濯足矣), 스스로(自) 그것을 취했구나(取之也).’

  • 淸斯濯纓: '斯'는 가정(~라면)이나 조건(~라야)을 주로 나타내고, 앞의 단어나 문장을 받는 대명사로도 쓴다. 

 

言水之淸濁有以自取之也. 聖人聲入心通, 無非至理, 此類可見.

물이(水之) 맑고(淸) 탁한(濁) 것이 스스로(自) 그것을(之) 취한다는(取) 말이다(言)也. 성인은(聖人) 소리가 들어가면(聲入) 마음으로 통하고(心通), 지극한 이치가(至理) 아닌(非) 것이 없으니(無), 이런(此) 류에서(類) 볼 수 있다(可見).

 

夫人必自侮(부인필자모), 然後人侮之(연후인모지); 家必自毁(가필자훼), 而後人毁之(이후인훼지); 國必自伐(국필자벌), 而後人伐之(이후인벌지).

무릇(夫) 사람은(人) 반드시(必) 자기를(自) 업신여기고(侮), 나서야(然後) 남이(人) 그를 업신여기고(侮之); 집안이(家) 반드시(必) 스스로(自) 훼손하고(毁), 나서야(而後) 남이(人) 그것을 훼손하고(毁之); 나라는(國) 반드시(必) 스스로(自) 공격당하고(伐), 나서야(而後) 남이(人) 그것을 공격한다(伐之).

 

○ 所謂自取之者.

이른바(所謂) 자기가(自) 그것을 취하는(取之) 것이다(者).

 

「太甲」曰: ‘天作孽(천작얼), 猶可違(유가위); 自作孽(자작얼), 不可活(불가활).’ 此之謂也(차지위야).”

태갑(太甲)에 이르기를(曰): ‘하늘이(天) 재앙을 만들면(作孽), 오히려(猶) 피할 수 있지만(可違); 자기가(自) 재앙을 만들면(作孽), 살아날(活) 수 없다(不可).’ 이것을(此之) 말함이다(謂也).”

  • 天作孽, 猶可違: 원래 문장은 '人猶可以違於天作孽'인데 '天作孽'을 강조하려고 앞으로 보내고, '人'과 '於'를 없애고, '可以'를 '可'로 바꿨다.

 

解見前篇.  해석이(解) 전편에(前篇) 보인다(見).

 

○ 此章言心存則有以審夫得失之幾, 不存則無以辨於存亡之著. 禍福之來, 皆其自取.

이 장은(此章) 마음을(心) 보존하면(存則) 득실의 기미를(夫得失之幾) 살필(審) 수 있고(有以), 보존하지 못하면(不存則) 존망의 드러남도(於存亡之著) 분별할(辨) 수 없다(無以)는 말이다(言). 화와 복이(禍福之) 오는(來) 것이, 모두(皆) 그(其) 자기가 취함이다(自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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