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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학이(學而) 1-13] 인불실기친 역가종야(因不失其親 亦可宗也) /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면 주인 삼을 만하다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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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子曰: “信近於義(신근어의), 言可復也(언가복야)

유자가 말하기를: 약속(信)이 의로움에(於義) 가까우면(近), 말(言)을 실천할(復) 수 있고(可也);

 

* 선진 문헌에서 '信'은 인간의 말이다. 신은 곧, 사람의 말이 증명 가능한가, 즉 실현 가능성을 말한다. 말을 약속이라고 새겨도 달라지지 않는다. 신과 언은 결국 같은 의미를 가지는 다른 표현이다. (논어한글역주, 김용옥)

 

信, 約信也. 義者, 事之宜也. 復, 踐言也.

신(信)은 약속(約信)이다. 의(義)는 일의(事之) 마땅함(宜)이다(也). 복(復)은, 말을 실천하는(踐言) 것이다(也). 

 

恭近於禮(공근어례), 遠恥辱也(원치욕야);  

공손함이(恭) 예에(於禮) 가까우면(近), 치욕(恥辱)을 멀리할(遠) 수 있고(也);

 

近, 遠, 皆去聲. ○ 恭, 致敬也. 禮, 節文也.

공(恭)은, 공경함에(敬) 이름이다(也). 예(禮)는, 예절의 규범(節文)이다(也). 

 

因不失其親(인불실기친), 亦可宗也(역가종야).”  

의지한 사람(因)이 그 친인(其親)을 잃지 않으면(不失), 또한(亦) 종주로 삼을(宗) 수(可) 있다(也).

 

* '인불실기친 역가종야(因不失其親 亦可宗也)'도 因과 親의 해석을 둘러싸고 많은 설이 있었다. 주자는 因을 내가 의지하려고 하는 사람, 親을 가까운 사람으로 풀었다. 즉, 가까운 사람에게 신임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면, 즉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는다면 종주로 받들 수 있다고 해석한다.  朱注에서 因仍이란 벌어진 사태를 개선이나 결단 없이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을 말한다.  <김용옥, 논어 한글역주>

 

因, 猶依也. 宗, 猶主也. 言約信而合其宜, 則言必可踐矣. 

인(因)은, 의지함(依)과 같다. 종(宗)은 주인으로 모심(主)과 같다. 약속(約信)하면서(而) 그 마땅함(其宜)에 부합하면(合則), 말을(言) 반드시(必) 실천할(踐) 수(可) 있다(矣)는 말이다(言).

 

致恭而中其節, 則能遠恥辱矣. 

공경함에 이르면서도(致恭而) 그 절도(其節)에 맞으면(中則), 치욕(恥辱)에서 멀어질(遠) 수(能) 있다(矣). 

 

所依者不失其可親之人, 則亦可以宗而主之矣. 

의지하는(所依) 사람(者)이 그(其) 친한 사람(可親之人)을 잃지 않는다면(不失則), 또한 존중하고(宗而) 그를(之) 주인삼을(主) 수 있다(可以宗).

 

此言人之言行交際, 皆當謹之於始而慮其所終, 不然, 則因仍苟且之間, 將有不勝其自失之悔者矣.

이것은 사람의(人之) 언행(言行)과 교제(交際)는, 모두 당연히(當) 처음부터(於始) 그것을(之) 삼가서(謹而) 그(其) 마치는 것(所終)을 깊이 생각하여야 하니(慮), 그렇지 않으면(不然, 則), 인습에 따르는(因仍) 구차한 사이에(苟且之間), 장차 그(其) 스스로(自) 잘못하는(失之) 후회(悔)를 이기지 못할(不勝) 수 있다(有)는 말이다(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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