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父在, 觀其志(부재관기지); 父沒, 觀其行(부몰관기행);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父)가 <살아> 계시면(在), 그의(其, 아들) 뜻(志)을 보고(觀); 아버지(父)가 돌아가시면(沒), 그의(其, 아들) 행동(行)을 보고(觀);
* '父在觀其志 父沒觀其行'에서 其를 해석할 때, 고주나 신주 모두 주체를 자식으로 본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므로 그의 내면을 살피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거리낌 없이 행동하므로 그 행동을 본다는 말이다. 그러나 뒷 구절에서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말라'는 말과 연결해서 본다면, 其志, 其行을 아버지와 관련된 말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버지의 뜻을 즉각 살피고, 돌아가시면 뜻을 알 수 없으므로 과거의 행동을 살핀다는 것이다. <김용옥, 논어 한글역주 1, 364-367>
行, 去聲. ○ 父在, 子不得自專, 而志則可知.
아버지(父)가 <살아> 계시면(在), 자식(子)이 자기 마음대로 할(自專) 수 없어서(不得, 而), 뜻이라면(志則) 알(知) 수 있다(可).
父沒, 然後其行可見, 故觀此足以知其人之善惡.
아버지(父)가 돌아가시면(沒), 그 뒤에(然後) 그(其) 행실(行)을 볼(見) 수(可) 있고, 그러므로(故) 이것을 보면(觀此) 그 사람의(其人之) 선악(善惡)을 알(知) 수 있다(足以).
三年無改於父之道(삼년무개어부지도), 可謂孝矣(가위효의).”
삼 년 동안(三年) 아버지의 도를(於父之道, 일하는 방식) 고침이 없어야(無改), 효(孝)라고 말할(謂) 수(可) 있다(矣).
然又必能三年無改於父之道, 乃見其孝,
그러나(然) 또(又) 반드시(必) 삼 년 동안(三年) 아버지의 도를(於父之道) 고침(改)이 없다면(能無), 곧(乃) 그 효를(其孝) 알 수 있고(見),
不然, 則所行雖善, 亦不得爲孝矣.
그렇지 않으면(不然, 則) 행한 것(所行)이 비록(雖) 착하더라도(善), 또한(亦) 효가 될(爲孝) 수 없다(不得矣).
○ 尹氏曰: “如其道, 雖終身無改可也. 如其非道, 何待三年.
윤씨가 말하기를: 만약(如) 그것이(其) <바른> 도(道)라면, 비록(雖) 평생이라도(終身) 고침이 없음이(無改) 옳다(可也). 만약(如) 그것이(其) 도가 아니라면(非道), 어찌(何) 삼 년(三年)을 기다리는가(待).
然則三年無改者, 孝子之心有所不忍故也.”
그러므로(然則) 삼년(三年) 동안 바꿈이 없는(無改) 것은(者), 효자의(孝子之) 마음(心)에 차마 하지 못하는(不忍) 것이(所) 있기(有) 때문이다(故也).
游氏曰: “三年無改, 亦謂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耳.”
유씨가 말하기를: 삼년무개(三年無改)는, 또한(亦) 마땅히(當) 고칠 것(所改)이 있지만(在-而) 아직(未) 고치지 않얻ㅎ(未改) 되는(可以) 것(者)일 따름이라는(耳) 말이다(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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