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은 정직함으로, 덕은 덕으로 갚는다
或曰: “以德報怨(이덕보원), 何如(하여)?”
누군가 말하기를(或曰): “덕으로(以德) 원한을 갚으면(報怨), 어떠한가요(何如)?”
或人所稱, 今見『老子』書. 德, 謂恩惠也.
누군가(或人) 말한(稱) 것(所)은, 지금(今) 노자(老子) 책(書)에 보인다(見). 덕(德)은, 은혜를(恩惠) 말한다(謂也).
子曰: “何以報德(하이보덕)?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무엇으로(何以) 덕을(德) 보답하는가(報)?
言於其所怨, 旣以德報之矣; 則人之有德於我者, 又將何以報之乎?
그(其) 원한이 있는(怨) 것(所)에 대하여(於), 이미(旣) 덕으로(以德) 그것을 보답하면(報之矣; 則) 남이(人之)나에게(於我) 덕이 있는(有德) 사람에게(者), 또(又) 장차(將) 무엇으로(何以) 그에게 보답하는가(報之乎)하는 말이다(言).
以直報怨(이직보원), 以德報德(이덕보덕).”
정직함으로(以直) 원한을 갚고(報怨), 덕으로(以德) 덕을 갚는다(報德).”
於其所怨者, 愛憎取舍, 一以至公而無私, 所謂直也. 於其所德者, 則必以德報之, 不可忘也.
그(其) 원망하는(怨) 사람(所者)에 대하여(於), 사랑하고 미워하고(愛憎), 취하고 버림(取舍)을, 한결같이 하고(一) 그것으로(以) 지극히(至) 공정하고(公而) 사사로움이 없음이(無私), 이른바(所謂) 정직함이다(直也). 於그(其) 덕을 입은(德) 사람이라면(所-者, 則) 반드시(必) 덕으로(以德) 그것을 갚고(報之), 잊지(忘) 말아야 한다(不可也).
○ 或人之言, 可謂厚矣. 然以聖人之言觀之, 則見其出於有意之私, 而怨德之報皆不得其平也.
누군가의(或人之) 말이(言), 두텁다고(厚) 할 수 있다(可謂矣). 그러나(然) 성인의(聖人之) 말로(以言) 그것을 보면(觀之, 則) 그(其) 뜻 있음의(有意之) 사사로움에서(於私) 나와서(出, 而) 원한과 덕의(怨德之) 갚음이(報) 모두(皆) 그(其) 공평함을(平) 얻지 못했음(不得)을 볼(見) 수 있다(也).
必如夫子之言, 然後二者之報各得其所. 然怨有不讐, 而德無不報, 則又未嘗不厚也.
반드시(必) 선생님의(夫子之) 말(言) 처럼 되고(如), 나서야(然後) 두 가지의(二者之) 보답이(報) 저마다(各) 자기 자리를(其所) 얻는다(得). 그러나(然) 원망이(怨) 원수가 되지 않음(不讐)이 있고(有, 而) 덕이(德) 갚아지지 않음(不報)이 없다면(無, 則) 또(又) 일찍이(嘗) 두텁지 않음이(不厚) 없다(未也).
此章之言, 明白簡約, 而其指意曲折反復. 如造化之簡易, 易知而微妙無窮, 學者所宜詳玩也.
이(此) 장의(章之) 말이(言), 명백하고(明白) 간략하면서도(簡約, 而) 그(其) 뜻이(指意) 곡절이 있고(曲折) 반복되었다(反復). 마치(如) 조화의(造化之) 간이함이(簡易), 알기(知) 쉽지만(易而) 미묘함이(微妙) 끝이 없으므로(無窮), 학자는(學者) 마땅희(所宜) 자세히(詳) 완미해야(玩) 한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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