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만물의 본원이고 물이 있어야만 생명현상이 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만물과 다투지 않는다. 물은 어디나 가지 못하는 곳이 없지만 그 방식은 '싸우지 않음不爭'이다. (김용옥)
上善若水(상선약수).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리만물이부쟁),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
가장(上) 좋은 것(善)은 물과(水) 같다(若). 물은(水) 만물을(萬物) 잘(善) 이롭게 하지만(利而) 다투지 않고(不爭), 많은 사람이(衆人之) 싫어하는(惡) 곳(所)에 머문다(處).
人惡卑也.
사람들은(人) 비천한 것(卑)을 싫어한다(惡也).
故幾於道(고기어도).
그러므로(故) 도에(於道) 가깝다(幾).
道無水有, 故曰, 幾也.
도는(道) 없음이고(無) 물은(水) 있음이고(有), 그러므로 말하기를(故曰), 가깝다(幾也)고 했다.
* 道無水有: 도는 ‘無’에 해당하고 물은 ‘有’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이때 有와 無는 각각 독자적인 어떤 本體를 가리킨다기보다 注1.2에서 말하듯이 無는 ‘未形無名之時’, 有는 ‘有形有名之時’로 구분되는데, 도는 형체가 없고 이름이 없지만 물은 이름이 있으나 일정한 형체를 말할 수 없는 것이기에 도에 대한 비유로 쓴 것이다. (김시천)
居善地(거선지), 心善淵(심선연), 與善仁(여선인), 言善信(언선신), 正善治(정선치), 事善能(사선능), 動善時(동선시). 夫唯不爭(부유부쟁), 故無尤(고무우).
거처하는 것은(居) 땅처럼 <낮은 곳에>(地) 잘하고(善), 마음 쓰기는(心) 연못처럼 <잔잔하게>(淵) 잘하고(善), <남과> 어울리기는(與) 인자하게 행동하기를(仁) 잘하고(善), 말하기는(言) 믿음직스럽게(信) 잘하고(善), 바로잡기는(正) 질서 있게 만들기를(治) 잘하고(善), 일하는 것(事)은 능력 있게 하기를(能) 잘하고(善), 움직임은(動) 때에 맞춰(時) 잘한다(善). 대저(夫) 오로지(唯) 다투지 않고(不爭), 그러므로(故) 허물이 없다(無尤).
* 전체 문장의 주어를 물(水)로 보는가 혹은 사람(人)을 보는가에 따라 해석이 좀 달라진다. 위의 해석은 물(水) 주체가 된다. 사람을 주체로 본다면, '(사람이) 거처하는 곳은 땅을 최고로 여기고, 마음 쓰는 것은 연못처럼 잔잔함을 최고로 여기고, 더불어 함께하는 것은 어질기를 최고로 여기고~~'라고 해석할 수 있다. 도장집주본에는 아래 왕필주의 주어가 '水'로 되어 있다.(노자도덕경, 김학목)
* "거선지居善地"부터 "동선시動善時"는 물의 공능을 7가지로 말한 것이다. 하지만 문자가 너무 간략해서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거선지居善地"를 예로 들면 1) 살 때는 그 땅을 좋게 하고, 2) 살 때는 땅처럼 낮은 곳에 잘 거처하고, 3) 거처할 때는 좋은 땅을 선택하고, 4) 거처할 때는 그 땅을 좋에 여기고 등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다. (노자가 옳았다, 김용옥)
言(人)[水]皆應於治道也.
물((人)[水])이 모두(皆) 이((治)[此]) 도(道)에(於) 상응한다(應)는 말이다(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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