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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선진(先進) 11-25]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 욕호기 풍호무우 영이귀(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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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子路ㆍ曾晳ㆍ冉有ㆍ公西華侍坐(자로증석염유공서화시좌).

자로(子路), 증석(曾晳),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가 <공자를> 모시고(侍) 앉았다(坐).

 

○ 晳, 曾參父, 名點.  석(晳)은, 증삼의(曾參) 아비고(父), 이름이(名) 점이다(點).

 

子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吾) 너희보다(乎爾) 하루(一日) 많음으로(長) 인해서(以), 나(吾) 때문에(以) 어려워하지 마라(也).

  • 以吾一日長乎爾: '以'는 원인을 나타내고, '一日長' 나이가 하루 더 많다는 극단적인 표현이다. 
  • 毋吾以也: 나 때문이라고 핑계 대지 말아라.

 

○ 言我雖年少長於女, 然女勿以我長而難言. 蓋誘之盡言以觀其志, 而聖人和氣謙德, 於此亦可見矣.

내가(我) 비록(雖) 나이가(年) 너희보다(於女) 다소(少) 많지만(長), 그러나(然) 너희가(女) 나의 나이 많음(我長)을 빙자하고(以而) 말하기를(言) 어려워하지(難) 말라(勿)는 말이다(言). 아마도(蓋) 그것을(之) 유도하여(誘) 말을 다하게 하여(盡言) 그것으로(以) 그 뜻을(其志) 보았으니(觀, 而) 성인의(聖人) 온화한 기운(和氣)과 겸손한 덕을(謙德), 여기에서(於此) 또한(亦) 볼 수 있다(可見矣).

 

居則曰 (거즉왈): 不吾知也(불오지야)! 如或知爾(여혹지이), 則何以哉(즉하이재)?”

평소에 거처하면서(居則) 말하기를(曰): 나를(吾) 알아주지(知) 않는구나(也)! 만일(如) 누군가(或) 너희를(爾) 알아준다면(, 則) 어찌(何) 쓰이겠느냐(以哉)?”

  • 居則曰: '居'를 '평상시, 항상'으로 풀이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앞뒤 상황과 접속사 '則'를 고려하면 '앉으면서'라고 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수 있다. (논어의 문법적 이해, 류종목)

 

言女平居, 則言人不知我. 如或有人知女, 則女將何以爲用也?

너희가(女) 평소(平) 거처하면서(居, 則) 말하기를(言), 사람들이(人) 나를(我) 알아주지(知) 않는다고(不) 말한다(言). 만일(如) 혹시(或) 남이(人) 너를 알아 줌이(知女) 있다면(有, 則) 너는(女) 장차(將) 무엇으로(何以) 쓰이게 되겠는가(爲用也)?

 

子路率爾而對曰(자로솔이대왈): “千乘之國(천승지국), 攝乎大國之間(섭호대국지간), 加之以師旅(가지이사려), 因之以饑饉(인지이기근); 由也爲之(유야위지), 比及三年(비급삼년), 可使有勇(가사유용), 且知方也(차지방야).” 夫子哂之(부자신지).

자로가(子路) 경솔하게(率爾而) 대답하여(對) 말하기를(曰): “천승의(千乘之) 나라가(國), 큰 나라의(大國之) 사이(間)에()서 간섭을 받아(攝), 군대로써(以師旅) 그것에(之) 가해지고(加), 기근으로써(以饑饉) 그것에(之) 잇따른다면(因); 유가(由也) 그것을 다스려(爲之), 3년이(三年) 되면(比及), 하여금(使) 용맹이(勇) 있도록(有) 할 수 있고(可), 또(且) 향하줄(方) 알도록(知) 하겠습니다(也).” 선생님이(夫子) 그것을(之) 빙긋이 웃었다(哂).

  •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之'는 千乘之國(천승지국)을 가리키는 인칭대사고, '以'는 동작의 대상을 표시하는 전치사다. '因'은 뒤따르다, 뒤를 잇는다는 뜻이다. 
  • 比及三年, 可使有勇: '比及'은 '때에 이르다, 때가 되다'라는 뜻의 관용어다. '使' 뒤에는 주어 역할을 하는 단어가 생략되었다. 

 

○ 率爾, 輕遽之貌. 攝, 管束也. 二千五百人爲師, 五百人爲旅. 因, 仍也. 

솔이(率爾)는, 경솔한(輕遽之) 모습이다(貌). 섭(攝)은, 속박이다(管束也). 2,500 명이(二千五百人) 사가 되고(爲師), 500 명이(五百人) 려가 된다(爲旅). 인(因)은, 잇따름이다(仍也). 

 

穀不熟曰饑, 菜不熟曰饉. 方, 向也, 謂向義也. 民向義, 則能親其上, 死其長矣. 哂, 微笑也.

곡식이(穀) 익지 않음을(不熟) 기(饑)라 하고(曰), 채소가(菜) 익지 않음을(不熟) 근이라(饉) 한다(曰). 방(方), 향함이니(向也), 의를 향함을(向義) 말한다(謂也). 백성이(民) 의를 향하면(向義, 則) 그 윗사람을(其上) 친하게 할 수 있고(能親), 그 어른을 <위해>(其長) 죽을 수 있다(死矣). 신(哂), 미소다(微笑也).

 

 

“求! 爾何如(구이하여)?” 對曰: “方六七十(방육칠십), 如五六十(여오륙십), 求也爲之(구야위지), 比及三年(비급삼년), 可使足民(가사족민). 如其禮樂(여기예악), 以俟君子(이사군자).”

“구야(求)! 너는(爾) 어떠한가(何如)?” 대답하여 말하기를: “사방(方) 6-70리(六七十), 또는(如) 5-60리(五六十)를, 구가(求也) 그것을 다스린다면(爲之), 삼 년에(三年) 이르면(比及), <그 나라로> 하여금(使) 백성(民)을 만족시키게(足) 할 수 있습니다(可). 만약(如) 그(其) 예악으로(禮樂) 말하자면(, 以) 군자를(君子) 기다릴 것입니다(俟).”

  • 如其禮樂, 以俟君子: '以'는 '則'과 같다. '如'와 호응해서 '만약 ~라면'이라고 해석한다. 

 

求爾何如, 孔子問也, 下放此. 方六七十里, 小國也. 如, 猶或也. 五六十里, 則又小矣. 

구(求) 너는(爾) 어떠한가(何如) 하고, 공자가(孔子) 물었고(問也), 아래도(下) 이와 같다(放此). 사방(方) 6-70리(六七十里)는, 작은 나라다(小國也). 여(如)는, 혹과 같다(猶或也). 5-60리(五六十里)는, 곧(則) 또(又) 작다(小矣). 

 

足, 富足也. 俟君子, 言非己所能. 冉有謙退, 又以子路見哂, 故其辭益遜.

족(足)은, 풍족함이다(富足也). 사군자(俟君子)는, 자기가(己) 할 수 있는 것(所能)이 아니란(非) 말이다(言). 염유(冉有)가 겸손하게(謙) 물러섰고(退), 또(又) 자로가(子路) 웃음 당함을(哂) 보았기(見) 때문에(以), 그러므로(故) 그 말이(其辭) 더욱(益) 겸손했다(遜).

 

“赤! 爾何如(적이하여)?” 對曰: “非曰能之(비왈능지), 願學焉(원학언). 宗廟之事(종묘지사), 如會同(여회동), 端章甫(단장보), 願爲小相焉(원위소상언).”

“적(赤)아! 너는(爾) 어떠한가(何如)?” 대답하여 말하기를: “능한(能) 것(之)을 말함이(曰) 아니라(非), 배우기를(學) 원합니다(焉). 종묘의(宗廟之) 일과(事, 如) 회동(會同)에, 단장보를 입고(端章甫), 거기에서(焉) 소상이(小相) 되기를(爲) 원합니다(願).”

 

○ 公西華志於禮樂之事, 嫌以君子自居. 故將言己志而先爲遜辭, 言未能而願學也. 

공서화가(公西華) 예악의(禮樂之) 일에(於事) 뜻을 두었고(志), 군자로(以君子) 자처하기를(自居) 싫어했다(嫌). 그러므로(故) 장차(將) 자기(己) 뜻을(志) 말하면서(言而) 먼저(先) 겸손한 말(遜辭)을 하고(爲), 능하지 못하지만(未能而) 배우기를 원한다고(願學) 말했다(言也). 

 

宗廟之事, 謂祭祀. 諸侯時見曰會, 衆覜曰同. 端, 玄端服. 章甫, 禮冠. 相, 贊君之禮者. 言小, 亦謙辭.

종묘의(宗廟之) 일(事)은, 제사를 말한다(謂祭祀). 제후가(諸侯) 때때로(時) 보는(見) 것을 회(會)라 하고(曰), 여럿이(衆) 보는(覜) 것을(同) 한다(曰). 단(端)은, 현단복(玄端服)이고. 장보(章甫)는, 예관이다(禮冠). 상(相)은, 임금의(君之) 예(禮)를 돕는(贊) 사람이다(者). 소를 말함은(言小), 또한(亦) 겸사다(謙辭).

 

“點! 爾何如(점이하여)?” 鼓瑟希(고슬희), 鏗爾(갱이), 舍瑟而作(사금이작). 對曰: “異乎三子者之撰(이호삼자자지찬).” 子曰: “何傷乎(하상호)? 亦各言其志也(역각언기지야).”

“점(點)아! 너는(爾) 어떠한가(何如)?” 금 타기를(鼓瑟) 드문드문하다가(希), 쟁그랑 소리 내며(鏗爾), 비파를 내려두고(舍瑟而) 일어났다(作). 대답하여 말하기를: “세 사람이(三子者之) 갖춘(撰) 것과(乎) 다릅니다(異).”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무엇을(何) 걱정하는가(傷乎)? 또한(亦) 각자(各) 그 뜻을(其志) 말한(言) 것이다(也).”

  • 鏗爾: 거문고를 땅에 놓을 때 나는 소리를 나타내는 형용사다. 
  • 異乎三子者之撰: '之'는 주술 구조의 문장을 절로 만드는 구조조사다. '撰'은 '갖추다'는 뜻으로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어 대답한 것을 말한다. 
  • 何傷乎: '傷'은 '상하다'는 뜻 이외에 '걱정하다'는 뜻도 있다. 

 

○ 四子侍坐, 以齒爲序, 則點當次對. 以方鼓瑟, 故孔子先問求ㆍ赤而後及點也. 希, 間歇也. 作, 起也. 撰, 具也.

네 사람이(四子) 모시고(侍) 앉아서(坐), 나이로써(以齒) 순서가 된다면(爲序, 則) 점이(點) 마땅히(當) 두 번째(次) 대답해야 한다(對). 막(方) 비파를 타기(鼓瑟) 때문에(以), 그러므로(故) 공자가(孔子) 구와 적에게(求赤) 먼저(先) 묻고(問) 나중에(而後) 점에 이르렀다(及點也). 희(希)는, 간격을 두고(間歇)이다(也). 작(作)은, 일어남이다(起也). 찬(撰)은, 갖춤이다(具也).

 

曰: “莫春者(모춘자), 春服旣成(춘복기성). 冠者五六人(관자오륙인), 童子六七人(동자육칠인), 浴乎沂(욕호기), 風乎舞雩(풍호무우), 詠而歸(영이귀).”

말하기를: 늦봄에(莫春者), 봄옷(春服)이 이미(旣) 만들어지면(成). 관자(冠者) 5-6명과(五六人), 동자(童子) 6-7명과(六七人), 기수에서(乎沂) 씻고(浴), 무우에서(乎舞雩) 바람 쐬고(風), 노래하면서(詠而) 돌아올 것입니다(歸).”

  • 春服旣成 : 보통 '봄옷이 이미 만들어졌으면'으로 해석하는데, '봄옷 입기를 이미 마쳤으면'으로 해석하면 문맥에 더 어울린다. (논어의 문법적 이해, 류종목)

 

○ 莫春和煦之時春服單袷之衣盥濯也今上巳祓除是也.

모춘(莫春)은, 따뜻하고 아늑한(和煦之) 때(時)다. 춘복(春服)은, 홑겹의(單袷之) 옷이다(衣). 욕(浴)은, 씻음이고(盥濯也), 지금(今) 상사일(上巳)의 불제(祓除)가 이것이다(是也). 

 

沂, 水名, 在魯城南, 「地志」以爲有溫泉焉, 理或然也. 風, 乘涼也. 舞雩, 祭天禱雨之處, 有壇墠樹木也. 詠, 歌也.

기(沂)는, 물 이름이고(水名), 노나라 땅(魯城) 남쪽에(南) 있고(在), 지지에서(地志) 거기에(焉) 온천이(溫泉) 있다고(有) 여겨서(以爲), 이치는(理) 혹(或) 그럴 수 있다(然也). 풍(風)은, 서늘한 바람을(涼) 탐이다(乘也). 무우(舞雩)는, 하늘에 제사하고(祭天) 비를 비는(禱雨之) 곳(處)으로, 단선과(壇墠) 수목이(樹木) 있다(有也). 영(詠)은, 노래함이다(歌也).

 

夫子喟然歎曰;“吾與點也!” (부자위연탄왈 오여점야)

선생님이(夫子) 아! 하며(喟然) 감탄하며(歎) 말하기를(曰);“나는(吾) 점을(點) 인정한다(也)!”

 

曾點之學, 蓋有以見夫人欲盡處, 天理流行, 隨處充滿, 無少欠闕. 

증점의(曾點之) 학문이(學), 대체로(蓋) 무릇(夫) 인욕이(人欲) 다한(盡) 곳에(處), 천리가(天理) 유행하고(流行), 처함에 따라(隨處) 충만하고(充滿), 작은(少) 흠이나 모자람이(欠闕) 없음(無)을 볼(見) 수 있다(有以). 

 

故其動靜之際, 從容如此, 而其言志, 則又不過卽其所居之位, 樂其日用之常, 初無舍己爲人之意. 

그러므로(故) 그(其) 움직이고 멈추는(動靜之) 즈음에(際), 행동의 조용함이(從容) 이와 같았고(如此, 而) 그(其) 뜻을 말하면(言志, 則) 또(又) 그(其) 거처한 곳(所居之)의 위치에(位) 나아가서(卽), 그(其) 일상생활을(日用之常) 즐기는데(樂) 지나지 않았고(不過), 애초에(初) 자기를 버리고(舍己) 남을 위하는(爲人之) 뜻이(意) 없다(無). 

 

而其胸次悠然, 直與天地萬物上下同流, 各得其所之妙, 隱然自見於言外.

그리하여(而) 그(其) 가슴의(胸次) 한가하고 여유로움이(悠然), 바로(直) 천지 만물과(天地萬物) 더불어(與) 상하가(上下) 함께(同) 유행하니(流), 각자(各) 그(其) 자리를(所) 얻은(得之) 오묘함이(妙), 은연중에(隱然) 자연히(自) 말 밖에(於言外) 드러났다(見).

 

視三子之規規於事爲之末者, 其氣象不侔矣, 故夫子歎息而深許之. 而門人記其本末獨加詳焉, 蓋亦有以識此矣.

세 사람이(三子之) 하려는 일의(事爲之) 지엽에(於末) 얽매인(規規) 것(者)을 보면(視), 그(其) 기상이(氣象) 같지 않고(不侔矣), 그러므로(故) 선생님이(夫子) 탄식하면서(歎息而) 그것을(之) 깊이 인정했다(深許). 그리하여(而) 문인이(門人) 그(其) 본말을(本末) 기록하고(記) 특히(獨) 거기에(焉) 상세함을(詳) 더했으니(加), 아마도(蓋) 또한(亦) 이것을(此) 알(識) 수 있다(有以矣).

 

三子者出, 曾晳後(삼자자출 증석후). 曾晳曰: “夫三子者之言何如(부삼자자지언하여)?” 子曰: “亦各言其志也已矣(역각언기지야이의).”

세 사람이(三子者) 나가고(出), 증석이(曾晳) 남았다(後). 증석이 말하기를: “저(夫) 세 사람의(三子者之) 말이(言) 어떠한가요(何如)?”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또한(亦) 각자(各) 자기 뜻을(其志) 말했을(言) 뿐이다(也已矣).”

 

曰: “夫子何哂由也?” (부자하신유야)

曰: “선생님이(夫子) 어째서(何) 유를(由) 웃으셨나요(也)?”

 

點以子路之志, 乃所優爲, 而夫子哂之, 故請其說.

점은(點) 자로의 뜻으로(以子路之志), 마침내(乃) 하기(爲)에 넉넉한 것(所優)인데도(, 而) 선생님이(夫子) 그것을 웃고(哂之), 그러므로(故) 그 설명을(其說) 청했다(請).

 

曰: “爲國以禮(위국이례), 其言不讓(기언불양), 是故哂之(시고신지).”

말씀하시기를: “예로써(以禮) 나라를 다스리는데(爲國), 그 말이(其言) 겸손하지 않았고(不讓), 그 때문에(是故) 그를 웃었다(哂之).”

 

夫子蓋許其能, 特哂其不遜.

선생님이(夫子) 아마도(蓋) 그 능력을(其能) 인정했고(許), 다만(特) 그 겸손하지 않음을(其不遜) 웃었다(哂).

 

“唯求則非邦也與(유구즉비방야여)?”“安見方六七十如五六十而非邦也者(안견방육칠십여오륙십이비방야자(=)?”

“다만(唯) 구로(求) 말하자면(則) 나라 <다스림이>(邦) 아닌가요(也與)?”“사방(方) 6-70리(六七十)나(如) 5-60리(五六十)이면서(而) 나라 아닌(非邦也) 것(者)을 어디에서(安) 보았는가(見)?”

  • 唯求則非邦也與: '唯'는 '유독, 오직'의 뜻이다. '則'은 두 가지 이상 사실의 대비를 표시하는 접속사다. 
  • 安見方六七十: '安'은 '어디에서'의 뜻이다. 

 

○ 曾點以冉求亦欲爲國而不見哂, 故微問之, 而夫子之答無貶辭, 蓋亦許之.

증점이(曾點) 염구가(冉求) 또한(亦) 나라 다스리기를(爲國) 바란다고(欲) 여겼는데(以而) 웃는 것을(哂) 보지 못하고(不見), 그러므로(故) 은미하게(微) 그것을 물었고(問之, 而) 선생님의(夫子之) 대답이(答) 폄하하는 말(貶辭)이 없고(無), 아마도(蓋) 또한(亦) 그것을 인정했다(許之).

 

“唯赤則非邦也與(유적즉비방야여)?”“宗廟會同(종묘회동), 非諸侯而何(비제후이하)? 赤也爲之小(적야위지소), 孰能爲之大(숙능위지대)?”

“유독(唯) 적이라면(赤則) 나라 다스림<邦)이 아닌가요(也與)?”“종묘의 일(宗廟)과 회동의 일이(會同), 제후의 일(諸侯)이 아니라면(而) 무엇인가(何)? 적은(赤也) 그중에(之) 작은 것이 된다면(爲小), 누가(孰) 그중에(之) 큰 것이 될(爲大) 수(能) 있는가?”

  • 赤也爲之小: '之'는 '其'와 같다. '그들 중에서~'로 볼 수 있다. 

 

此亦曾晳問而夫子答也. 孰能爲之大, 言無能出其右者, 亦許之之辭.

이것(此) 또한(亦) 증석이(曾晳) 묻고(問而) 선생님이(夫子) 답했다(答也). 누가(孰) 큰 것이(之大) 되겠는가(能爲)하는 것은, 言無能出其右者, 亦許之之辭.

 

○ 程子曰: “古之學者, 優柔厭飫, 有先後之序. 如子路ㆍ冉有ㆍ公西赤言志如此, 夫子許之. 亦以此自是實事. 

옛날의(古之) 학자는(學者), 부드럽고(優柔) 편안함을 싫어하고(厭飫), 선후의(先後之) 순서가(序) 있었다(有). 예컨대(如) 자로, 염유, 공서적(子路冉有公西赤)이 뜻을 말함이(言志) 이와 같고(如此), 선생님이(夫子) 그것을 인정했다(許之). 또한(亦) 이것으로(以此) 自是實事. 

 

後之學者好高, 如人游心千里之外, 然自身卻只在此.”

후대의(後之) 학자는(學者) 높은 것을(高) 좋아하고(好), 마치(如) 사람이(人) 마음을(心) 천리 박에서(千里之外) 놀고(游), 그러나(然) 자신은(自身) 다만(卻只) 여기에 있다(在此).

 

又曰: “孔子與點, 蓋與聖人之志同, 便是堯ㆍ舜氣象也. 誠異三子者之撰, 特行有不掩焉耳, 此所謂狂也. 

또 말하기를: 공자가(孔子) 증점을(點) 인정했으니(與), 아마도(蓋) 성인의(聖人之) 뜻과(志) 더불어(與) 같고(同), 바로(便) 이것이(是) 요순의(堯舜) 기상이다(氣象也). 진실로(誠) 세 사람의(三子者之) 갖춰진(撰) 것과 다르고(異), 다만(特) 행동에(行) 가리지 못함이(不掩) 있을(有) 뿐이니(焉耳), 이것이(此) 이른바(所謂) 광이다(狂也). 

 

子路等所見者小, 子路只爲不達爲國以禮道理, 是以哂之. 若達, 卻便是這氣象也.”

자로 등이(子路等) 본(見) 것이(所者) 작고(小), 자로가(子路) 다만(只) 예와 도리로(以禮道理) 나라를 다스림에(爲國) 이르지 못하게 되었고(爲不達), 이 때문에(是以) 그를 웃었다(哂之). 만약(若) 통달했다면(達), 바로(卻便) 이것이(是) 그런(這) 기상이다(氣象也).

 

又曰: “三子皆欲得國而治之, 故夫子不取. 曾點, 狂者也, 未必能爲聖人之事, 而能知夫子之志. 

또 말하기를: 세 사람이(三子) 모두(皆) 나라를 얻어(得國而) 그것을 다스리길(治之) 원했고(欲), 그러므로(故) 선생님이(夫子) 취하지 않았다(不取). 증점이(曾點), 광자이고(狂者也), 반드시(必) 성인의 일을(聖人之事) 할(爲) 수(能) 있지 않지만(未, 而) 선생님의 뜻을(夫子之志) 알 수 있었다(能知). 

 

故曰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言樂而得其所也. 孔子之志, 在於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使萬物莫不遂其性. 曾點知之, 故孔子喟然歎曰: “吾與點也.”

 

又曰: “曾點ㆍ漆雕開, 已見大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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