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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선진(先進) 11-22] 광 땅에서 안연이 뒤쳐졌다 / 자외어광 안연후(子畏於匡, 顔淵後.)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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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 땅에서 공자가 안회를 걱정하다

子畏於匡, 顔淵後. (자외어광 안연후)

선생님이(子) 광 땅에서(於匡) 조심할(畏) 때, 안연이(顔淵) 뒤쳐졌다(後).

 

後, 謂相失在後.  

후(後)는, 서로(相) 잃어버리고(失) 뒤에(後) 있음(在)을 말한다(謂).

 

子曰: “吾以女爲死矣.” (오이여위사의)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吾) 네를(女) 죽었다고 여겼다(爲死矣).

  • 吾以女爲死矣: '以A爲B(A를 B라고 여기다)'의 용법이다. '矣'는 단정의 어기조사다. 

 

曰: “子在, 回何敢死?” (자재 회하감사)

말하기를; 선생님이(子) <살아> 계신데(在), 회가(回) 어찌(何) 감히(敢) 죽겠습니까(死)?

 

何敢死, 謂不赴鬪而必死也.

하감사(何敢死)는, 달려가(赴) 싸우지(鬪) 않았고(不而) 반드시(必) 죽지(死) 않았다는 말이다(謂也).

 

胡氏曰: “先王之制, 民生於三, 事之如一. 惟其所在, 則致死焉. 

호씨가 말하기를: 선왕의(先王之) 제도에(制), 백성이(民) 세 가지에서(於三) 살아가니(生), 그들 섬기기를(事之) 한결같이 한다(如一). 오직(惟) 其所在, 則致死焉. 

 

況顔淵之於孔子, 恩義兼盡, 又非他人之爲師弟子者而已. 卽夫子不幸而遇難, 回必捐生以赴之矣. 

하물며(況) 안연이(顔淵之) 공자에(孔子) 대하여(於), 은혜와 의를(恩義) 함께(兼) 다하고(盡), 또(又) 다른 사람의(他人之) 스승과 제자된(爲師弟子) 것과(者) 다를 뿐이다(非而已). 만일(卽) 선생님이(夫子) 불행히도(不幸而) 난을 만났다면(遇難), 안회가(回) 반드시(必) 목숨을 버림으로(捐生以) 그들에게 달려갔다(赴之矣). 

 

목숨을 버림으로(捐生以) 그들에게 달려가서(赴之矣), 다행히(幸而) 죽지 않는다면(不死, 則) 반드시(必) 위로(上) 천자에게 고하고(告天子), 아래로(下) 방백에게 고하여(告方伯), 토벌을 청함으로써(請討以) 복수하니(復讐), 다만(但) 그치지(已) 않을 것이다(不也). 선생님이(夫子) 그리고 살아 계시면(而在, 則) 안회가(回) 어찌(何) 그렇게 해서(爲而) 그 죽음(其死)을 아끼지 않고(不愛), 그것으로(以) 광인의(匡人之) 칼날(鋒)을 범하겠는가(犯乎)?”


자한 5장과 도입부가 같다.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자한 5장과 선진 22장은 같은 주제의식으로 편집된 전승이라고 볼 수 있다. 본래 같이 묶여 있던 전승이 논어 편집 과정에서 흩어졌을 수도 있다.

 

위기 상황에서 안회를 기다리는 공자의 애타는 마음이 느껴진다. '살아 있었구나'라고 안도하는 공자의 말에 안회는 '선생님이 살아계신데...'라고 대꾸한다. 선생님이 돌아가실리 없다는 확신이 느껴진다. 안회의 믿음은 공자가 가지고 있는 사문에 대한 믿음이다. 자한 5장의 공자의 혼잣말과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안회가 공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주희의 집주는 좀 졸렬하다. '제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하는 안회의 절규를 '선생님이 살아 계신데 제가 그놈들하고 싸울 필요가 있을까요' 정도로 해석한다. <논어 한글역주,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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