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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공손추상(公孫丑上) 2-3] 나는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 / 부동심장(호연장)[不動心章(浩然章)] / 호연지기(浩然之氣)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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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敢問夫子惡乎長?” (감문부자오호장)

감히(敢) 선생님이(夫子) 어디에(惡乎) 뛰어난지(長) 묻습니다(問)?

 

○ 公孫丑復問孟子之不動心所以異於告子如此者, 有何所長而能然, 而孟子又詳告之以其故也.

공손추가(公孫丑) 맹자의(孟子之) 부동심이(不動心) 고자와(於告子) 다른(異) 것이(所以) 이와 같은(如此) 것은(者), 무엇(何)이 나은 점(所長)이 있어서(有而) 그럴 수 있는가(能然) 다시 물었고(復問, 而) 맹자(孟子)가 또(又) 그에게(之) 그 까닭을(以其故) 자세히 일러주었다(詳告也).

 

曰: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아지언 아선양오호연지기)

말하기를: 나는(我) 말을 알고(知言), 나는(我) 내(吾) 호연지기를(浩然之氣) 잘(善) 기른다(養).

 

知言者, 盡心知性, 於凡天下之言, 無不有以究極其理, 而識其是非得失之所以然也. 浩然, 盛大流行之貌.

지언(知言)이란 것(者)은, 대체로(盡) 마음이(心) 본성을(性) 알고(知), 모든(凡) 천하의 말(天下之言)에(於), 그 이치를(其理) 궁구하고 지극히(究極) 할 수 있어서(有以, 而) 그 시비득실의(其是非得失之) 까닭(所以然)을 알지(識) 못함이(不) 없다(無也). 호연(浩然)은, 성대하게(盛大) 흐르는(流行之) 모습이다(貌).  

 

氣, 卽所謂體之充者. 本自浩然, 失養故餒, 惟孟子爲善養之以復其初也. 

기(氣)는, 바로(卽) 이른바(所謂) 몸을(體之) 채우는(充) 것이다(者). 본래(本) 스스로(自) 호연하지만(浩然), 기름(養)을 잃었기 때문에(失故) 부족하고(餒), 오직(惟) 맹자가(孟子) 그것을(之) 잘 길러서(善養) 그것으로(以) 그 처음으로(其初) 돌아가게(復) 되었다(爲也).

 

蓋惟知言則有以明夫道義而於天下之事無所疑養氣則有以配夫道義而於天下之事無所懼此其所以當大任而不動心也.

대체로(蓋惟) 말을 알면(知言, 則) 저(夫) 도의에(道義) 밝아서(明, 而) 천하의 일에(於天下之事) 의심하는 것(所疑)이 없을(無) 수 있고(有以); 기를 기르면(養氣, 則) 저(夫) 도의에(道義) 짝해서(配, 而) 천하의 일에(於天下之事) 두려울 것(所懼)이 없을(無) 수 있고(有以), 이것이(此) 그(其) 큰 임우를(大任) 맞아서도(當而)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不動心) 까닭이다(所以也). 

 

告子之學, 與此正相反. 其不動心, 殆亦冥然無覺, 悍然不顧而已爾.

고자의(告子之) 배움이(學), 이와 더불어(與此) 정확히(正) 서로 반대다(相反). 그(其) 부동심이(不動心), 거의(殆) 또한(亦) 어두워서(冥然) 깨달음이 없고(無覺), 고집스러워서(悍然) 돌아보지 않을(不顧) 뿐이다(而已爾).

 

“敢問何謂浩然之氣?” (감문하위호연지기)

감히(敢) 무엇을(何) 호연지기라고(浩然之氣) 하는지(謂) 묻습니다(問)?

 

孟子先言知言而丑先問氣者, 承上文方論志氣而言也.

맹자가(孟子) 먼저(先) 지언을(知言) 말했는데(言而) 공손추가(丑) 먼저(先) 기를(氣) 물은(問) 것은(者), 윗글을(上文)에서 바야흐로(方) 지기를 논한 것(論志氣)을 이어서(承而) 말했다(言也).

 

曰: “難言也.(난언야)  말하기를: 말하기 어렵다

 

難言者, 蓋其心所獨得, 而無形聲之驗, 有未易以言語形容者.

난언은(難言者), 아마도(蓋) 그(其) 마음이(心) 홀로(獨) 얻은 것이고(所得, 而) 형상과 소리의(形聲之) 징험(驗)이 없고(無), 말로(以言語) 형용하기(形容) 쉽지(易) 않은(未) 것(者)이 있다(有).

 

故程子曰: “觀此一言, 則孟子之實有是氣可知矣.”

그러므로 정자가 말하기를: 이(此) 한 마디(一言)를 보면(觀, 則) 맹자가(孟子之) 실제로(實) 이 기를(是氣) 가졌음(有)을 알 수 있다(可知矣).”

 

其爲氣也(기위기야), 至大至剛(지대지강), 以直養而無害(이직양이무해), 則塞于天地之閒(즉색우천지지간).

그(其) 기 됨이(爲氣也), 지극히 크고(至大) 지극히 강해서(至剛), 정직함으로(以直) 기르고(養而) 해가 없으면(無害, 則) 천지의(天地之) 사이에(于閒) 충만하다(塞).

 

至大初無限量, 至剛不可屈撓. 蓋天地之正氣, 而人得以生者, 其體段本如是也. 

지극히 큼(至大)은 애초에(初) 한량이(限量) 없고(無), 지극히 강함은(至剛) 굽히거나 꺽일(屈撓) 수 없다(不可). 대체로(蓋) 천지의(天地之) 정기이고(正氣, 而) 사람이(人) 태어남으로(以生) 얻은(得) 것이니(者), 그(其) 체단이(體段) 본래(本) 이와 같다(如是也). 

 

惟其自反而縮, 則得其所養; 而又無所作爲以害之, 則其本體不虧而充塞無間矣.

오직(惟) 그(其) 스스로(自) 돌이켜서(反而) 정직하면(縮, 則) 그(其) 기르는 것(所養)을 얻고(得; 而) 또(又) 작위함으로써(所作爲以) 그것을(之) 해침이(害) 없으면(無, 則) 그(其) 본체가(本體) 이지러지지 않고(不虧而) 틈이 없이(無間) 가득찬다(充塞矣).

 

○ 程子曰: “天人一也, 更不分別. 浩然之氣, 乃吾氣也. 養而無害, 則塞乎天地; 一爲私意所蔽, 則欿然而餒, 卻甚小也.”

정자가 말하기를: 하늘과 사람이(天人) 같고(一也), 다시(更) 분별이(分別) 없다(不).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바로(乃) 내 기다(吾氣也). 길러서(養而) 해로움(害)이 없으면(無, 則) 천지에(乎天地) 가득차고(塞); 하나라도(一) 사의가(私意) 가려지는 것(所蔽)이 된다면(爲, 則) 푹 꺼져서(欿然而) 굶주리고(餒), 卻甚小也.”

 

謝氏曰: “浩然之氣, 須於心得其正時識取.”

 

又曰: “浩然是無虧欠時.”

 

其爲氣也(기위기야), 配義與道(배의여도); 無是(무시), 餒也(뇌야).

그(其) 기 됨이(爲氣也), 의와 도에(義與道) 짝하고(配); 이것이 없으면(無是), 굶주린다(餒也).

 

○ 配者, 合而有助之意. 義者, 人心之裁制. 道者, 天理之自然. 餒, 飢乏而氣不充體也.

짝함(配)은(者), 합쳐져서(合而) 도와주는(助之) 뜻이(意) 있음이다(有). 의는(義者), 사람(人) 마음의(心之) 절제함이다(裁制). 도는(道者), 천리의(天理之) 스스로 그러함이다(自然). 뇌(餒)는, 굶주리고(飢) 모자라서(乏而) 기가(氣) 몸에(體) 차지 않음(不充)이다(也).

 

言人能養成此氣, 則其氣合乎道義而爲之助, 使其行之勇決, 無所疑憚; 若無此氣, 則其一時所爲雖未必不出於道義, 然其體有所不充, 則亦不免於疑懼, 而不足以有爲矣.

사람이(人) 이 기를(此氣) 能기르고 이룰(養成) 수 있다면(能, 則) 그(其) 기가(氣) 도의에(乎道義) 합하고(合而) 도움이 되고(爲之助), 그(其) 행동이(行之) 용맹스럽고(勇) 결단력 있도록(決) 하여(使), 의심하고 꺼리는(疑憚) 것(所)이 없고(無); 만약(若) 이 기운이(此氣) 없다면(無, 則) 그(其) 한 때의(一時) 하는 것이(所爲) 비록(雖) 반드시(必) 도의에서(於道義) 나오지(出) 않음이(不) 아니지만(未), 그러나(然) 그(其) 몸이(體) 채워지지 않는(不充) 것이(所) 있으면(有, 則) 또한(亦) 의심과 두려움에서(於疑懼) 벗어나지 못하고(不免, 而) 큰 일 함이 있기에(有爲) 부족하다(不足以矣)는 말이다(言).

 

是集義所生者(시집의소생자), 非義襲而取之也(비의습이취지야). 行有不慊於心(행유불겸어심), 則餒矣(즉뇌의). 我故曰, ‘告子未嘗知義(고자미상지의), 以其外之也(이기외지야).’

이것은(是) 의를 모아(集義) 태어난(生) 것(所-者)으로, 의가(義) 엄습해서(襲而) 그것을(之) 취함이(取) 아니다(也). 행동에(行) 마음에(於心) 만족하지 못하는 것(不慊)이 있으면(, 則) 굶주린다(餒矣). 나는(我) 그러므로(故), ‘고자가(告子) 일찍이(嘗) 의를 알지(知義) 못했다고(未) 말하고(曰), 그가(其) 그것을(之) 밖에서 <구하기>(外) 때문이다(也).’

 

○ 集義, 猶言積善, 蓋欲事事皆合於義也. 襲, 掩取也, 如齊侯襲莒之襲.

집의(集義)는, 적선을(積善) 말함과(言) 같아서(猶), 대체로(蓋) 일마다(事事) 모두(皆) 의에(於義) 합하기를(合) 바란다(欲也). 습(襲)은, 갑자기 덮쳐서(掩) 취함으로(取也), 제후가(齊侯) 여(莒)를 엄습했다(襲)의(之) 습(襲)과 같다(如).

 

言氣雖可以配乎道義, 而其養之之始, 乃由事皆合義, 自反常直, 是以無所愧怍, 而此氣自然發生於中. 

기(氣)가 비록(雖) 도의에(乎道義) 짝할(配) 수 있지만(可以, 而) 그(其) 기름의(養之之) 시작은(始), 바로(乃) 일이(事) 모두(皆) 모두 합함(合義)고, 스스로 돌이켜(自反) 항상(常) 정직함(直)에서 말미암고(由), 이 때문에(是以) 부끄러운 것(所愧怍)이 없고(無, 而) 이(此) 기가(氣) 자연히(自然) 마음에서(於中) 발생한다(發生)는 말이다(言). 

 

非由只行一事偶合於義, 便可掩襲於外而得之也. 慊, 快也, 足也.

다만(只) 한 가지 일을(一事) 행해서(行) 우연히(偶) 의에(於義) 합치함으로(合) 말미암아(由), 곧(便) 밖에서(於外) 엄습해서(掩襲而) 그것을(之) 얻을(得) 수 있는(可) 것이 아니다(非也). 겸(慊)은, 즐거움 이고(快也), 만족함이다(足也).

 

言所行一有不合於義, 而自反不直, 則不足於心而其體有所不充矣. 然則義豈在外哉? 

행한 것에(所行) 하나라도(一) 의에(於義) 합하지 않음(不合)이 있어서(有, 而) 스스로(自) 돌이켜(反) 정직하지 않으면(不直, 則) 마음에(於心) 부족하고(不足而) 그(其) 몸에(體) 충만하지 않는 것(所不充)이 있다(有矣)는 말이다(言). 그렇다면(然則) 의가(義) 어찌(豈) 밖에 있겠는가(在外哉)? 

 

告子不知此理, 乃曰‘仁內義外’, 而不復以義爲事, 則必不能集義以生浩然之氣矣. 

고자가(告子) 이(此) 이치를(理) 알지 못하고(不知), 마침내(乃) 말하기를(曰) 인은 안에 있고(仁內) 의는 밖에 있다(義外)고 했고(, 而) 다시(復) 의로써(以義) 일삼지 않으면(不爲事, 則) 반드시(必) 의를 쌓아(集義) 그거승로(以) 호연지기를(浩然之氣)를 만들(生) 수 없다(不能矣). 

 

上文不得於言勿求於心卽外義之意詳見告子上篇.

윗글에(上文) 말에서(於言) 구하지 못하면(不得) 마음에서(於心) 구하지 말라(勿求)는 것은, 곧(卽) 外義之意, 詳見「告子」上篇.

 

必有事焉而勿正(필유사언이물정), 心勿忘(심물망), 勿助長也(물조장야). 無若宋人然(무약송인연):

반드시(必) 일이 있더라도(有事焉而, 하더라도) 결과를 기대하지 말고(勿正), 마음에서(心) 잊지 말고(勿忘), 조장하지 말아야 한다(勿助長也). 송나라 사람처럼(宋人) 그렇게 하지(然) 말아야 한다():

 

○ 必有事焉而勿正, 趙氏, 程子以七字爲句. 近世或幷下文心字讀之者亦通. 必有事焉, 有所事也, 如有事於顓臾之有事. 正, 預期也.

필유사언이물정(必有事焉而勿正)은, 조씨와(趙氏), 정자가(程子) 일곱 글자로(以七字) 한 구를 삼았다(爲句). 근세에(近世) 혹(或) 다음 글(下文)의 심자(心字)도 함께(幷) 읽는(讀之) 것도(者) 또한(亦) 통한다(通). 필유사언(必有事焉)은, 일삼은 것이(所事) 있음이요(有也), 유사어전유(有事於顓臾)의(之) 유사(有事)와 같다(如). 정(正)은, 미리(預) 기대함이다(期也).

 

「春秋傳」曰: “戰不正勝”, 是也. 如作正心義亦同. 此與『大學』之所謂正心者, 語意自不同也.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曰): 싸우되(戰) 승리를(勝) 기대하지 않는다(不正)가, 이것이다(是也). 만약(如) 정심으로(正心)으로 써도(作) 뜻이(義) 또한(亦) 같다(同). 이것은(此) 대학의(大學之) 이른바(所謂) 정심(正心)이란 것(者)과 더불어(與), 말의 뜻이(語意) 자연(自) 같지 않다(不同也). 

 

此言養氣者, 必以集義爲事, 而勿預期其效. 其或未充, 則但當勿忘其所有事, 而不可作爲以助其長, 乃集義養氣之節度也.

이것은(此) 기를 기르는 것이(養氣者), 반드시(必) 의를 쌓는 것으로(以集義) 일삼아야 하고(爲事, 而) 그(其) 효과를(效) 미리(預) 기약하지(期) 말라는(勿) 말이다(言). 그것이(其) 혹(或) 충만하지 않다면(未充, 則) 다만(但) 마땅히(當) 그(其) 일삼음 있는 것(所有事)을 잊지 말아야 하며(勿忘, 而) 억지로 하여(作爲) 그것으로(以) 그 자람을(其長) 돕우면(助) 안되니(不可), 바로(乃) 의를 모으고(集義) 기를 기르는(養氣之) 절도다(節度也).

 

宋人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송인유민기묘지불장이알지자), 芒芒然歸(망망연귀),

송나라 사람 중에(宋人) 有그 싹이(其苗之) 자라지 않는 것을(不長) 안타까워해서(而) 그것을(之) 뽑은 사람이(者) 있는데, 피곤한 듯이(芒芒然) 돌아와서(歸),

 

謂其人曰(위기인왈): ‘今日病矣(금일병의), 予助苗長矣(여조묘장의).’ 其子趨而往視之(기자추이왕시지), 苗則槁矣(묘즉고의).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천하지부조묘장자과의). 以爲無益而舍之者(이위무익이사지자), 不耘苗者也(불운묘자야); 助之長者(조지장자), 揠苗者也(알묘자야). 非徒無益(비도무익), 而又害之(이반해지).”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其人) 말하기를(曰): ‘오늘은(今日) 피곤하구나(病矣), 내가(予) 싹이 자라도록(苗長) 도와줬다(矣).’라고 했다. 그(其) 아들이(子) 달려가서(趨而往) 그것을 보니(視之), 싹이(苗則) 말라버렸다(槁矣). 천하에(天下之) 싹이 자라도록(苗長) 돕지 않는 사람이(不助者) 드물다(寡矣). 무익하다고(無益) 여겨서(以爲而) 그것을 놓아버리는 것은(舍之者), 싹을(苗) 김매지 않는 사람이고(不耘者也); 그것을 자라도록(之長) 돕는 사람은(者), 싹을(苗) 뽑는 사람이다(者也). 단지(徒) 무익할 뿐만 아니라(無益, 而) 또(又) 그것을 해친다(害之).”

 

○ 閔, 憂也. 揠, 拔也. 芒芒, 無知之貌. 其人, 家人也. 病, 疲倦也. 舍之不耘者, 忘其所有事. 揠而助之長者, 正之不得, 而妄有作爲者也. 然不耘則失養而已, 揠則反以害之. 無是二者, 則氣得其養而無所害矣. 

 

如告子不能集義, 而欲强制其心, 則必不能免於正助之病. 其於所謂浩然者, 蓋不惟不善養, 而又反害之矣.

 

“何謂知言(하위지언)?” 曰: “詖辭知其所蔽(피사지기소장), 淫辭知其所陷(음사지기소함), 邪辭知其所離(사사지기소리), 遁辭知其所窮(둔사지기소궁). 生於其心(생어기심), 害於其政(해어기정); 發於其政(발어기정), 害於其事(해어기사). 聖人復起(성인복기), 必從吾言矣(필종오언의).”

“무엇을(何) 말을 아는 것이라고(知言) 합니까(謂)?” <맹자가> 말하기를(曰): “치우친 말을 <들으면>(詖辭) 그 가리는 것을(其所蔽) 알고(), 음란한 말을 <들으면>(淫辭) 그 빠져 있는 것을(其所陷) 알고(), 부정한 말을 <들으면>(邪辭) 그 <도에서> 멀어진 것을(其所離) 알고(), 피하는 말을 <들으면>(遁辭) 그 논리가 궁한 것을(其所窮) 안다(). 그 마음에서(於其心) 나와서(), 그 정치에(於其政) 해를 끼치고(); 그 정치에서(於其政) 일어나서(), 그 일에(於其事) 해를 끼친다(). 성인이(聖人) 다시(復) 나오더라도(起), 반드시(必) 내 말을(吾言) 따를 것이다(矣).”


○ 此公孫丑復問而孟子答之也. 詖, 偏陂也. 淫, 放蕩也. 邪, 邪僻也. 遁, 逃避也. 四者相因, 言之病也. 蔽, 遮隔也. 陷, 沈溺也. 離, 叛去也. 窮, 困屈也. 四者亦相因, 則心之失也. 人之有言, 皆本於心. 其心明乎正理而無蔽, 然後其言平正通達而無病; 苟爲不然, 則必有是四者之病矣. 卽其言之病, 而知其心之失, 又知其害於政事之決然而不可易者如此. 非心通於道, 而無疑於天下之理, 其孰能之? 彼告子者, 不得於言而不肯求之於心; 至爲義外之說, 則自不免於四者之病, 其何以知天下之言而無所疑哉?

○ 程子曰: “心通乎道, 然後能辨是非, 如持權衡以較輕重, 孟子所謂知言是也.”

又曰: “孟子知言, 正如人在堂上, 方能辨堂下人曲直. 若猶未免雜於堂下衆人之中, 則不能辨決矣.”

 

“宰我ㆍ子貢善爲說辭(재아자공선위설사), 冉牛ㆍ閔子ㆍ顔淵善言德行(염우민자안연선언덕행). 孔子兼之(공자겸지), 曰: ‘我於辭命則不能也(아어사명즉불능야).’ 然則夫子旣聖矣乎(연즉부자기성의호)?”

“재아와(宰我), 자공은(子貢) 말을(說辭) 잘 했고(善爲), 염우와(冉牛), 민자(閔子), 안연은(顔淵) 덕행을(德行) 잘 말했다(善言). 공자가(孔子) 그것을(之) 겸해서(), 말하기를(曰): ‘나는(我) 사명에 대해서라면(於辭命則) 잘하지 못한다(不能也).’라고 했다.  그렇다면(然則) 선생님은(夫子) 이미(旣) 성인이신가요(聖矣乎)?”


○ 此一節, 林氏以爲皆公孫丑之問是也. 說辭, 言語也. 德行, 得於心而見於行事者也. 三子善言德行者, 身有之, 故言之親切而有味也. 公孫丑言數子各有所長, 而孔子兼之, 然猶自謂不能於辭命. 今孟子乃自謂我能知言, 又善養氣, 則是兼言語德行而有之, 然則豈不旣聖矣乎? 此夫子, 指孟子也.

○ 程子曰: “孔子自謂不能於辭命者, 欲使學者務本而已.”

 

“惡(오)! 是何言也(시하언야)? 昔者子貢(석자자공), 問於孔子曰(문어공자왈): ‘夫子聖矣乎(부자성의호)?’ 孔子曰: ‘聖則吾不能(성즉오불능), 我學不厭而敎不倦也(아학불렴이교불권야).’ 子貢曰: ‘學不厭(학불렴), 智也(지야); 敎不倦(교불권), 仁也(인야). 仁且智(인차지), 夫子旣聖矣(부자기성의)!’ 夫聖(부성), 孔子不居(공자불거), 是何言也(시하언야)?”

<맹자가> 말하기를(曰): “아(惡)! 이것이(是) 무슨 말인가(何言也)? 옛날(昔者) 자공이(子貢), 공자에게(於孔子) 물어말하기를(曰): ‘선생님은(夫子) 성인이신가요(聖矣乎)?’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기를(孔子曰): ‘성은(聖則) 내가(吾) 할 수 없지만(不能), 나는(我) 배움을(學) 싫어하지 않고(不厭而) 가르치는 것을(敎) 게을리하지 않는다(不倦也).’라고 했다. 자공이 말하기를(子貢曰): ‘배움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學不厭), 지혜고(智也);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敎不倦), 인이다(仁也). 인하고(仁且) 지혜로우니(智), 선생님은(夫子) 이미(旣) 성인이시다(聖矣)!’라고 했다. 대저(夫) 성은(聖), 공자도(孔子) 자처하지 않았으니(不居), 이것이(是) 무슨 말인가(何言也)?”

 

○ 惡, 驚歎辭也. 昔者以下, 孟子不敢當丑之言, 而引孔子ㆍ子貢問答之辭以告之也. 此夫子, 指孔子也. 學不厭者, 智之所以自明; 敎不倦者, 仁之所以及物. 再言“是何言也”, 以深拒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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