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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맹자집주(孟子集註)

[맹자집주 공손추상(公孫丑上) 1] 선생님이 벼슬을 하신다면 / 부자당로장[夫子當路章]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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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公孫丑問曰: “夫子當路於齊(부자당로어제), 管仲ㆍ晏子之功(관중안자지공), 可復許乎(가복허로)?”

공손추가 물어 말하기를: 선생님(夫子)이 제나라에서(於齊) 벼슬길(路)을 맡으신다면(當), 관중(管仲)과 안자의(晏子之) 공(功)을, 다시(復) 기약할(許) 수(可) 있을까요(乎)?

  • 可復許乎: 앞에 나온 '管仲ㆍ晏子之功'이 목적어라서 '可'를 썼다. 앞에 주어가 나왔다면 '可以'를 쓴다. 

 

○ 公孫丑, 孟子弟子, 齊人也. 當路, 居要地也. 管仲, 齊大夫, 名夷吾, 相桓公, 霸諸侯. 許, 猶期也. 孟子未嘗得政, 丑蓋設辭以問也.

공손추(公孫丑)는, 맹자(孟子) 제자로(弟子), 제나라(齊) 사람이다(人也). 당로(當路)는, 중요한 자리(要地)에 거함이다(居也). 관중(管仲)은, 제나라(齊) 대부(大夫)로, 이름(名)이 이오(夷吾)요, 환공을(桓公) 도와(相), 霸제후의(諸侯) 맹주가 되었다(霸). 허(許)는, 기약함(期)과 같다(猶也). 맹자(孟子)가 일찍이(嘗) 정권을(政) 얻지(得) 못했으므로(未), 추(丑)가 아마도(蓋) 가정하는(設) 말로(辭以) 물었다(問也).

 

1-2 孟子曰: “子誠齊人也(자성제인야), 知管仲(지관중), 晏子而已矣(안자이이의).

맹자가 말하기를: 너(子)는 진실로(誠) 제나라(齊) 사람이니(人也), 관중(管仲)과 안자(晏子)만을 알(知) 뿐이구나(而已矣).

 

齊人但知其國有二子而已, 不復知有聖賢之事.

제나라(齊) 사람(人) 다만(但) 그(其) 나라(國)에 두 사람(二子)이 있음(有)을 알(知) 뿐이니(而已), 다시(復) 성현의(聖賢之) 일(事) 있음(有)을 알지 못한다(不知).

 

1-3 或問乎曾西曰(혹문호증서왈): ‘吾子與子路孰賢(오자여자로숙현)?’ 曾西衛然曰(증서위연왈): ‘吾先子之所畏也(오선자지소외야).’ 曰: ‘然則吾子與管仲孰賢(연즉오자여관중숙현)?’ 曾西艴然不悅(증서발연불열), 曰: ‘爾何曾比予於管仲(이하증비여어관중)? 

누군가(或) 증서에게(乎曾西) 물어(問) 말하기를(曰): 나의(吾) 그대(子)와(與) 자로(子路) 중에 누가(孰) 나은가(賢)?’ 증서(曾西)가 불안해하며(衛然) 말하기를(曰): 내(吾) 돌아가신(先) 어버지가(子之) 두려워한(畏) 것입니다(也).’ 말하기를: 그렇다면(然則) 나의(吾) 그대와(子與) 관중(管仲) 중에 누가(孰) 나은가(賢)?’ 증서(曾西)가 발끈하며(艴然) 기뻐하지 않고(不悅), 말하기를(曰): 너는(爾) 어찌(何) 곧(曾) 나를(予) 관중에게(於管仲) 비교하는가(比)?

  • 吾子는 상대방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로 '나의 그대'다. 孰賢에서 賢은 '낫다'는 뜻이다. 先子는 돌아가신 아버지다.

 

管仲得君(관중득군), 如彼其專也(여피기전야); 行乎國政(행호국정), 如彼其久也(여피기구야); 功烈(공열), 如彼其卑也(여피기비야). 爾何曾比予於是(이하증비여어시)?’”

관중(管仲)이 임금(君)의 <마음을> 얻어(得), 저처럼(如彼) 그렇게(其) 독차지하고(專也); 국정을(乎國政) 행함(行)이, 저처럼(如彼) 그렇게(其) 오래되었고(久也); 공적(功烈)이, 저처럼(如彼) 그렇게(其) 낮다(卑也). 그대(爾)는 어찌(何) 곧(曾) 나를(予) 이 사람에게(於是) 비교하는가(比)?

 

○ 孟子引曾西與或人問答如此. 曾西, 曾子之孫. 衛, 不安貌. 先子, 曾子也. 艴, 怒色也. 曾之言則也. 烈, 猶光也.

맹자가(孟子) 증서와(曾西與) 누군가(或人)의 문답(問答)을 이처럼(如此) 인용했다(引). 증서(曾西)는, 증자의(曾子之) 손자다(孫). 위(衛)는, 불안한(不安) 모습이다(貌). 선자(先子)는, 증자다(曾子也). 발(艴)은, 노한(怒) 기색이다(色也). 증이란(曾之) 말(言)은 즉(則)이다(也). 열(烈)은, 빛남(光)과 같다(猶也).

 

桓公獨任管仲四十餘年, 是專且久也. 管仲不知王道而行霸術, 故言功烈之卑也.

환공(桓公)이 오로지(獨) 관중에게(管仲) 40여 년(四十餘年)을 맡겼으니(任), 이것(是)이 독차지하고(專) 또(且) 오래됨이다(久也). 관중이(管仲) 왕도를(王道) 알지 못하고(不知而) 패술을(霸術) 행했고(行), 그러므로(故) 공렬이 낮다고(功烈之卑) 말했다(言也).

 

楊氏曰: “孔子言子路之才, 曰: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使其見於施爲, 如是而已. 其於九合諸侯, 一匡天下, 固有所不逮也. 然則曾西推尊子路如此, 而羞比管仲者何哉? 

양씨가 말하기를: “공자(孔子)가 자로의(子路之) 재주(才)를 언급해서(言), 말하기를(曰): ‘천승지국(千乘之國)에서, 그(其) 병권(賦)을 맡길(使治) 만하다(可也)고 했으니, 가령(使) 그(其)가 시행함에(於施爲) 드러나도(見), 이와 같을(如是) 뿐이다(而已). 그(其)가 제후를(諸侯) 규합해서(九合), 한 번(一) 천하를(天下) 바로잡음(匡)에(於)於, 진실로(固) 미치지 못하는(不逮) 것(所)이 있다(有也). 그렇다면(然則) 증서(曾西)가 자로를(子路) 이와같이(如此) 추존하고(推尊, 而) 관중(管仲)에 비교하는(比) 것(者)을 부끄럽게 여김(羞)은 어째서인가(何哉)? 

 

譬之御者, 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 管仲之功, 詭遇而獲禽耳. 曾西, 仲尼之徒也, 故不道管仲之事.”

말몰이 하는(御) 것(者)에 비유하면(譬之), 자로(子路)는 곧(則) 법도대로(範) 나(我) 몰아서(馳驅而) 잡지 못한(不獲) 것이고(者也); 관중의(管仲之) 공(功)은, 속여서(詭遇而) 짐승(禽)을 잡았을(獲) 뿐이다(耳). 증서(曾西)는, 중니의(仲尼之) 무리고(徒也), 그러므로(故) 관중의(管仲之) 일(事)은 말하지 않았다(不道).

 

1-4 曰: “管仲,曾西之所不爲也(관중증서지소불위야), 而子爲我願之乎(이자위아원지호)?”

말하기를(曰): “관중은(管仲), 증서도(曾西之)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不爲, 본받지 않는) 것인데(所也, 而) 그대는(子) 내가(我) 그것을 원한다고(願之) 여기는가(乎)?”

  • 管仲,曾西之所不爲也: '管仲'의 원래 위치는 '不爲' 다음인데, 강조하려고 도치했다. '曾西' 이하는 보어절이 되고, 명사절을 만들기 위해 주격조사 '之'가 들어갔다. 

 

○ 曰, 孟子言也. 願, 望也. 왈(曰)은, 맹자(孟子)의 말이다(言也). 원(願)은, 바람이다(望也).

 

1-5 曰: 曰: “管仲以其君霸(관중이기군패), 晏子以其君顯(안자이기군현). 管仲ㆍ晏子猶不足爲與(관중안자유부족위여)?”

말하기를: 관중(管仲)은 그것으로(以) 그(其) 임금(君)을 패자로(霸) 만들었고, 안자(晏子)는 그것으로(以) 그(其_ 임금(君)을 드러나게(顯) 했다. 관중과(管仲) 안자(晏子)도 오히려(猶) 되기에(爲) 부족한가요(不足與)?

  • 管仲ㆍ晏子猶不足爲與: '管仲ㆍ晏子'의 원래 위치는 '足爲' 다음이다. '可'와 '可以'와 마찬가지로 앞에 목적어가 왔으므로 '足以'로 쓰지 않았다. 

 

○ 顯, 顯名也. 현(顯)은, 이름을(名) 드러냄(顯)이다(也).

 

1-6 曰: “以齊王, 由反手也.” (이제왕 유반수야)

제나라로(以齊) 왕 노를(王) 하기는, 손을(手) 뒤집는(反) 것과 같다(也).

 

○ 反手, 言易也. 반수(反手)는, 뒤집음(易)을 말한다(言也).

 

1-7 曰: “若是(약시), 則弟子之惑滋甚(즉제자지혹자심). 且以文王之德(차이문왕지덕), 百年而後崩(백년이후붕), 猶未洽於天下(유미흡어천하); 武王ㆍ周公繼之(무왕주공계지), 然後大行(연후대행). 今言王若易然(금언왕약이연), 則文王不足法與(즉문왕부족법여)?”

말하기를: 이와 같다면(若是, 則) 제자의(弟子之) 의혹(惑)이 더욱(滋) 심합니다(甚). 또(且) 문왕의 덕(文王之德)으로도(以), 백년(百年)이 지나(而後) 돌아가셨는데도(崩), 오히려(猶) 천하에(於天下) <교화가> 흡족하지(洽) 않고(未); 무왕과(武王) 주공(周公)이 그것(之)을 잇고(繼), 나서야(然後) 크게(大) 행해졌습니다(行). 지금(今) 왕도(王)가 만약(若) 그렇게(然) 쉽다고(易) 말한다면(, 則) 문왕을(文王) 본받기에(法) 부족한가요(不足與)?

 

○ 滋, 益也. 文王九十七而崩, 言百年, 擧成數也. 文王三分天下, 纔有其二; 武王克商, 乃有天下. 周公相成王, 制禮作樂, 然後敎化大行.

자(滋)는, 더욱이다(益也). 문왕(文王)이 97세에(九十七而) 죽었는데(崩), 백년(百年)을 말했고(言), 완전한 수(成數)를 든 것이다(擧也). 문왕(文王)이 천하를(天下) 셋으로 나눠(三分), 겨우(纔) 그 둘(其二)을 가졌고(有); 무왕(武王)이 상나라(商)를 이기고(克), 마침내(乃) 천하를(天下) 가졌다(有).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도와(相), 예를 만들고(制禮) 악을 지은 뒤에야(作樂, 然後) 교화(敎化)가 크게(大) 행해졌다(行).

 

1-8 曰: “文王何可當也(문왕하가당야)? 由湯至於武丁(유탕지어무정), 賢聖之君六七作(현성지군육칠작). 天下歸殷久矣(천하귀은구의), 久則難變也(구즉난변야). 武丁朝諸侯有天下(무정조제후유천하), 猶運之掌也(유운지장야).

문왕(文王)을 어찌(何) 감당할(當) 수 있는가(也)? 탕왕으로부터(由湯) 무정에(於武丁) 이르기까지(至), 현명하고 성스러운(賢聖之) 임금(君) 육칠 명이(六七) 일어났다(作). 천하(天下)가 은나라에(殷) 돌아감이(歸) 오래 되었고(久矣), 오래되면(久則) 변하기 어렵다(難變也). 무정(武丁)이 제후를(諸侯) 조회하고(朝) 천하를(天下) 가진(有) 것이, 손바닥에서(之掌) 움직이는(運) 것과 같았다(也).

  • 猶運之掌也: '之'를 '諸(之+於)'와 같은 용법으로 썼고 '之'는 천하를 가리킨다.

 

○ 當, 猶敵也. 당(當)은, 대적함(敵)과 같다(猶也).

 

1-9 紂之去武丁未久也(주지거무정미구야), 其故家遺俗(기고가유속), 流風善政(유풍선정), 猶有存者(유유존자); 又有微子ㆍ微仲ㆍ王子比干ㆍ箕子ㆍ膠鬲皆賢人也(우유미자미중왕자비간기자교직개현인야), 相與輔相之(상여보상지), 故久而後失之也(고구이후실지야). 尺地莫非其有也(척지막비기유야), 一民莫非其臣也(일민막비기신야), 然而文王猶方百里起(연이문왕유방백리기), 是以難也(시이난야).

주왕이(紂之) 무정에게서(武丁) 떨어진(去) 것이 오래지 않고(未久也), 그(其) 옛 집의(故家) 남은 풍속(遺俗)과, 유풍(流風)과 선정(善政)이, 아직(猶) 보존된 것(存者)이 있고(有); 또(又) 미자, 미중, 왕자 비간, 기자, 교직(微子ㆍ微仲ㆍ王子比干ㆍ箕子ㆍ膠鬲)이 있어(有) 모두(皆) 현인이며(賢人也), 서로(相) 더불어(與) 그를(之) 도왔고(輔相), 그러므로(故) 오래(久) 지나서야(而後) 그것을(之, 천하) 잃었다(也). 한 치(尺)의 땅(地)이 그의(其) 소유(有) 아님이(非) 없고(也), 한(一) 백성도(民) 그의(其) 신하(臣) 아님이 없는데(莫非也), 그러나(然而) 문왕(文王)이 오히려(猶) 사방(方) 백리(百里)에서 일어나(起), 이 때문에(是以) 어려웠다(難也).

  • 紂之去武丁: '之'는 주격조사다. 주어절 안에 紂가 주어고, 去가 서술어이므로 '之'를 넣어 명사절임을 표시했다. 

 

○ 商自成湯至於武丁, 中間大甲, 大戊, 祖乙, 盤庚皆賢聖之君. 作, 起也. 自武丁至紂凡九世. 故家, 舊臣之家也.

상나라(商)는 성탕부터(自成湯) 무정에(於武丁) 이르기까지(至), 중간(中間)에 태갑, 대무, 조을, 반경(大甲, 大戊, 祖乙, 盤庚)이 모두(皆) 현명하고 성스러운(賢聖之) 임금이었다(君). 작(作)은, 일어남이다(起也). 부정부터(自武丁) 주왕에 이르기까지(至紂) 무릇(凡) 9세다(九世). 고가(故家)는, 구신의(舊臣之) 집안이다(家也).

 

1-10 齊人有言曰: 雖有智慧(수유지혜), 不如乘勢(불여승세); 雖有鎡基(수유자기), 不如待時(불여대시). 今時則易然也(금시즉이연야).

제나라(齊) 사람이(人) 말이(言) 있어(有) 말하기를(曰): 비록(雖) 지혜가(智慧) 있더라도(有), 형세(勢)를 타는(乘) 것만 못하고(不如); 비록(雖) 농기구(鎡基)가 있더라도(有), 때(時)를 기다림(待)만 못하다(不如). 지금(今) 때라면(時則) 그처럼(然) 쉽다(也).

 

○ 鎡基, 田器也. 時, 謂耕種之時.

자기(鎡基)는, 밭의(田) 도구다(器也). 시(時)는, 밭갈고(耕) 씨 뿌리는(種之) 시기(時)를 말한다(謂).

 

夏后之盛(하후은주시성), 地未有過千里者也(지미유과천리자야), 有其地矣(이제유기지의); 雞鳴狗吠相聞(계명구폐상문), 而達乎四境(이달호사경), 有其民矣(이제유기민의). 地不改辟矣(지불개벽의), 民不改聚矣(민불개취의), 行仁政而王(행인정이왕), 莫之能禦也(막지능어야).

하후, 은, 주나라의(夏后ㆍ殷ㆍ周之) 융성함(盛)에도, 땅(地)이 천리를(千里) 넘는(過) 것(者)이 있지 않았고(未有也), 그러나(而) 제나라(齊)는 그 땅을(其地) 가졌으며(矣); 닭 울음(雞鳴)과 개 지는 소리(狗吠)가 서로(相) 들리고(聞, 而) 사방 국경에(乎四境) 도달하니(, 而) 제나라(齊) 그(其) 백성(民)이 있다(矣). 땅(地)을 다시(改) 개간하지(辟) 않고(矣), 백성을(民) 다시(改) 모으지(聚) 않아도(矣), 인정을(仁政) 행하고(而) 왕 노릇 하면(王), 그것을(之) 막을(禦) 수(能) 있는 사람이 없다(莫-也).

  • 莫之能禦也: 부정어와 서술어 사이에 대명사 '之'가 나왔다. 의미상으로는 '莫能禦之也'로 보아야 한다.

 

○ 此言其勢之易也. 三代盛時, 王畿不過千里. 今齊已有之, 異於文王之百里. 又雞犬之聲相聞, 自國都以至於四境, 言民居稠密也.

이것(此)은 그(其) 세가(勢之) 쉽다는(易) 말이다(言也). 삼대의(三代) 융성한(盛) 시기에(時), 수도 부근(王畿)이 천리(千里)를 넘지 않았다(不過). 지금(今) 제나라(齊)가 이미(已) 그것(之)을 가졌고(有), 문왕의(文王之) 백리(百里)와(於) 다르다(異). 도(又) 닭(雞)과 개의(犬之) 소리(聲)가 서로(相) 들림이(聞), 나라(國) 도읍(都)으로부터(自) 그것으로(以) 사방 국경에(於四境) 이르니(至), 백성의(民) 거주가(居) 조밀함(稠密)을 말한다(言也).

 

1-11 且王者之不作(차왕자지부작), 未有疏於此時者也(미유소어차시자야); 民之憔悴於虐政(민지추췌어학정), 未有甚於此時者也(미유심어차시자야). 飢者易爲食(기자역위식), 渴者易爲飮(갈자역위음).

또한(且) 왕도가(王者之) 일어나지 않는 것이(不作), 이 때보다(於此時) 먼 것이(疏者) 있지 않고(未有也); 백성이(民之) 학정에(於虐政) 고생한 것이(憔悴), 지금보다(於此時) 심한 것이(甚者) 있지 않다(未有也). 굶주린 사람에게는(飢者) <그를> 위해 먹이는 것이(爲食) 쉽고(易), 목마른 사람에게는(渴者) <그를> 위해 마시게 하는 것이(爲飮) 쉽다(易).

 

此言其時之易也. 自文武至此七百餘年, 異於商之賢聖繼作; 民苦虐政之甚, 異於紂之猶有善政. 易爲飮食, 言飢渴之甚, 不待甘美也.

이것(此)은 그(其) 때가(時之) 쉽다는(易) 말이다(言也). 문왕과 무왕부터(自文武) 이(此)에 이르기까지(至) 700여 년에(七百餘年), 상나라의(商之) 현성이(賢聖) 이어(繼) 일어남(作)과(於) 다르고(異); 백성(民)이 학정에(虐政) 고생함이(苦之) 심하니(甚), 주왕이(紂之) 오히려(猶) 선정을(善政) 가졌음(有)과(於) 다르다(異). 이위음식(易爲飮食)은, 굶주리고(飢) 배고픔이(渴之) 심해서(甚), 달고(甘) 아름다움(美)을 기다리지 않음(不待)을 말한다(言也).

 

1-12 孔子曰: ‘德之流行, 速於置郵而傳命.’ (덕지유행 속어치우이전명)

공자가 말하기를: 덕의(德之) 유행이(流行), 역(置)과 역마를 두고(郵而) 명을(命) 전달함(傳) 보다(於) 빠르다(速).

  • 速於置郵而傳命: '而'가 술어를 연결하는 접속사이므로 '置郵'에 술어가 있다. 주자는 '역과 역마를 두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술어+목적어' 구조인 '傳命'과의 대구 관계를 생각하면 '置郵'를 '역을 설치하다(두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 置, 驛也. 郵, 馹也. 所以傳命也. 孟子引孔子之言如此.

치(置)는, 역이다(驛也). 우(郵)는, 역마다(馹也). 명을(命) 전하는(傳) 것이다(所以也). 맹자가(孟子) 공자의 말(孔子之言)을 인용함(引)이 이와 같았다(如此).

 

1-13 當今之時(당금지시), 萬乘之國行仁政(만승지국행인정), 民之悅之(민지열지), 猶解倒懸也(유해도현야). 故事半古之人(고사반고지인), 功必倍之(공필배지), 惟此時爲然(유차시위연).”

지금의(當今之) 시대에(時), 만승지국(萬乘之國)이 인정(仁政)을 행하면(行), 백성이(民之) 그것을(之) 기뻐하고(悅), 뒤집혀 매달린(倒懸) 것을 풀어준(解) 것처럼 여긴다(也). 그러므로(故) 일(事)은 옛사람(古之人)의 반만(半) 하더라도, 공(功)은 반드시(必) 그것을(之) 배가 되니(倍), 오직(惟) 이(此) 때(時) 그럴 수 있다(爲然).

 

○ 倒懸, 喩困苦也. 所施之事, 半於古人, 而功倍於古人, 由時勢易而德行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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