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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술이(述而) 7-23] 이삼자이아위은호 오무은호이(二三子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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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二三子以我爲隱乎(이삼자이아위은호)? 吾無隱乎爾(오무은호이).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二三子) 내가(我) 숨긴다고(隱) 생각하느냐(以爲乎)? 나는(吾) 너희에게(乎爾) 숨기는 것이(隱) 없노라().

  • 二三子(이삼자)는 '너희들, 여러분'이란 뜻으로 공자가 제자들을 가리킬 때 즐겨 쓴 말이다. '以'~爲~'는 '~을 ~라고 여기다, ~이 ~하다고 여기다'라는 뜻의 관용어다. 乎爾(호이)는 탄식하지만 원망하지 않는 어기를 표시하는 어기조사다. (논어의 문법적 이해, 류종목)

 

諸弟子以夫子之道高深不可幾及, 故疑其有隱, 而不知聖人作, 止, 語, 黙無非敎也, 故夫子以此言曉之.

모든(諸) 제자가(弟子) 선생님의 도가(夫子之道) 높고 깊어서(高深) 따라갈(幾及) 수 없다고(不可) 여기고(以), 그러므로(故) 아마도(其) 숨기는 것이(隱) 있다고(有) 의심했고(有), 그러나(而) 성인이(聖人) 행동하고, 멈추고, 말하고, 침묵한 것이(作, 止, 語, 黙) 가르침 아님이(非敎) 없음을(無) 알지 못했고(不知也), 그러므로(故) 선생님이(夫子) 이 말로(以此言) 그들을(之) 깨우쳐주셨다(曉).

  • 幾及’은 바라서 미치는 것으로 冀及, 企及, 跂及과 같다. (논어집주, 성백효)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오무행이불여이삼자자), 是丘也(시구야).”

내가(吾) 행하면서(行而) 너희에게(二三子) 보여주지(與) 않은(不) 것이(者) 없고(無), 이것이(是) 구다(丘也).

  • 不與二三子者: 주자는 '與'를 '보여주다'로 해석했지만, 글자 본래의 뜻을 따라서 '함께 하다'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猶示也. ○ 程子曰: “聖人之道猶天然, 門弟子親炙而冀及之, 然後知其高且遠也. 使誠以爲不可及, 則趨向之心不幾於怠乎? 

여(與)는, 보여줌과 같다(猶示也). 정자가 말하기를: 성인의 도가(聖人之道) 하늘이 그러함과(天然) 같고(猶), 문하의(門) 제자들이(弟子) 직접(親) 가르침을 받고(炙而) 거기에(之) 이르기를 바라고(冀及), 나서야(然後) 그(其) 높고(高) 또(且) 아득함을(遠) 알았다(知也). <제자들로> 하여금(使) 정말(誠) 따라갈 수 없다고(不可及) 여기게 한다면(以爲, 則) <제자들의> 따라가려는(趨向之) 마음이(心) 게을러짐에(於怠) 가까워지지 않겠는가(不幾-乎)? 

 

故聖人之敎, 常俯而就之如此, 非獨使資質庸下者勉思企及, 而才氣高邁者亦不敢躐易而進也.”

그러므로(故) 성인의 가르침이(聖人之敎), 항상(常) 낮추고(俯而) 나아감이(就之) 이와 같아서(如此), 오로지(獨) 자질이(資質) 낮고 볼품없는(庸下) 사람(者)으로 하여금(使) 힘쓰고 생각해서(勉思) 바라서 미치게(企及) 하려한 것만 아니라(非), 그리고(而) 재기가(才氣) 높고 뛰어난(高邁) 사람도(者) 또한(亦) 감히(敢) <등급을> 뛰어넘어(躐) 쉽게(易而) 나아가지(進) 못하게 했다(不也).

 

呂氏曰: “聖人體道無隱, 與天象昭然, 莫非至敎. 常以示人, 而人自不察.”

여씨가 말하기를: 성인이(聖人) 도를(道) 몸으로 실천한(體) 것에 숨김이 없고(無隱), 천상과(天象) 더불어(與) 밝아서(昭然), 지극한 가르침(至敎) 아닌(非) 것이 없다(莫). 항상(常以) 사람들에게(人) 보여주지만(示, 而) 사람들이(人) 스스로(自) 살피지 못했다(不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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