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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옹야(雍也) 6-13] 맹지반이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 맹지반불벌(孟之反不伐)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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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孟之反不伐, (자왈 맹지반불벌)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맹지반(孟之反)이 자랑하지 않으니(不伐),

 

孟之反, 魯大夫, 名側. 胡氏曰: “反卽莊周所稱孟之反者是也.” 伐, 誇功也.

맹지반(孟之反)은, 노나라(魯) 대부로(大夫), 이름이(名) 측이다(側). 호씨가 말하기를: 반(反)은 곧(卽) 장주에서(莊周) 맹지반이라고(所孟之反) 칭한(稱) 사람이(者) 이 사람이다(是也). 벌(伐)은, 공로를 자랑함(誇功)이다(也).

 

奔而殿. 將入門, (분이전 장입문)

패주 하면서(奔而) 후위에 섰다(殿). 장차(將) 문에 들어서면서(入門),

 

○ 奔, 敗走也. 軍後曰殿.

분(奔)은, 져서(敗) 도망감이다(走也). 군대의(軍) 후위를(後) 전이라(殿) 한다(曰).

 

策其馬, 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책기마 왈 비감후야 마부진야)

그 말을(其馬) 채찍질하면서(策), 말하기를(曰): 감히(敢) 뒤에 서려는(後)  것이 아니라(非-也), 말이(馬) 나아가지 않았다(不進也).

  • 맹지반은 공자가 살던 시대의 인물이다. 위에 언급된 전투는 춘추좌씨전 애공 11년, 공자 68세 때의 사건이다. 제나라와 싸움에서 패한 노나라 군대가 퇴각할 때, 맹지반이 후미를 맡았다. 하지만 이 기사에는 맹지반이 후미를 맡아서 채찍도 없이 화살로 말 궁둥이를 때리며 '말이 왜 이리 안 가냐'라고 투덜댔다고 실렸다. 공자가 말하듯 자랑이나 변명의 이야기도 안 나온다. (김용옥, 논어 한글 역주)

 

策, 鞭也. 戰敗而還, 以後爲功. 反奔而殿, 故以此言自揜其功也. 事在哀公十一年.

책(策)은, 채찍질이다(鞭也). 전쟁에 지고(戰敗而) 돌아갈 때(還), 후위를(以後) 공로로 여긴다(爲功). 맹지반이(反) 져서 물러날 때(奔而) 후위에 섰고(殿), 그러므로(故以) 이것은(此) 그 공을(其功) 스스로(自) 가리는(揜) 말이다(言-也). 사건이(事) 애공(哀公) 십일년(十一年)에 있다(在).

 

○ 謝氏曰: “人能操無欲上人之心, 則人欲日消, 天理日明, 而凡可以矜己誇人者, 皆無足道矣. 

사씨가 말하기를: 사람이(人) 남의 위에(上人之) 있으려는(欲) 마음이(心) 없도록(無) 잡을 수 있다면(能操, 則) 인욕이(人欲) 날로(日) 사라지고(消), 천리가(天理) 날로(日) 밝아져서(明, 而) 무릇(凡) 可以자기를 자랑하고(矜己) 남에게 과장하는(誇人) 것은(者), 모두(皆) 말할 것도(足道) 없다(無-矣). 

 

然不知學者欲上人之心無時而忘也, 若孟之反, 可以爲法矣.”

그러나(然) 배움을(學) 알지 못하는(不知) 사람은(者) 남보다(人) 위에 서고자(上) 하는(欲之) 마음이(心) 수시로(時而) 잊음이(忘) 없으니(無-也), 맹지반 같다면(若孟之反), 법을 삼을만하다(可以爲法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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