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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공부/중용자잠(中庸自箴)

[여유당전서 중용자잠(中庸自箴) 3-11] 내가 하나라의 예를 말할 수 있지만 기나라에 증거가 없다 / 자왈오설하례 기부족징야(子曰吾說夏禮 杞不足徵也節)

by ഗൗതമബുദ്ധൻ 2023.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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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吾說夏禮, 杞不足徵也; 吾學殷禮, 有宋存焉; 吾學周禮, 今用之, 吾從周.” 王天下有三重焉其寡過矣乎! 上焉者雖善無徵無徵不信不信民弗從下焉者雖善不尊不尊不信不信民弗從. 故君子之道本諸身徵諸庶民考諸三王而不謬建諸天地而不悖質諸鬼神而無疑百世以俟聖人而不惑. 質諸鬼神而無疑知天也百世以俟聖而不惑知人也.

子曰: “내가(吾) 하례를 말할 수 있지만(說夏禮), 기나라에(杞) 증거가 부족하고(不足徵也); 내가(吾) 은례를 배웠고(學殷禮), 송나라가 보존한 것이 있고(有宋存焉); 내가(吾) 주례를 배웠고(學周禮), 지금(今) 그것을 쓰니(用之), 나는(吾) 주나라를 따르겠다(從周).”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에(王天下)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으니(有三重焉), <이를 갖추면> 아마도(其) 허물이 적을 것이다(寡過矣乎)! 상고의 것이(上焉者) 비록 좋지만(雖善) 증거가 없고(無徵), 증거가 없으니(無徵) 믿을 수 없고(不信), 믿을 수 없으니(不信) 백성이 따르지 않고(民弗從); 후대의 것은(下焉者) 비록 좋지만(雖善) 지위가 높지 않고(不尊), 지위가 높지 않으니(不尊) 믿을 수 없고(不信), 믿을 수 없으면(不信)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民弗從). 그러므로(故) 군자의 도는(君子之道), 자신에게 근본을 두고(本諸身), 백성에게 증험하고(徵諸庶民), 삼왕을 고찰해도(考諸三王而) 오류가 없으니(不謬), 천지에 세우더라도(建諸天地而) 어그러지지 않고(不悖), 귀신에게 물어보아도(質諸鬼神而) 의심이 없고(無疑), 백세를(百世以) 성인을 기다려도(俟聖人而) 의혹이 없다(不惑). 귀신에게 물어도(質諸鬼神而) 의혹이 없는 것은(無疑), 하늘을 아는 것이고(知天也); 백세를(百世以) 성인을 기다려(俟聖而) 의혹이 없는 것은(不惑), 사람을 아는 것이다(知人也).

 

 

《禮記》本, ‘王天下’至‘民弗從’, 皆與此節上連. 

예기(《禮記》) 중용에서(本), ‘왕천하(王天下)’부터 ‘민부종(民弗從)’까지(至), 모두(皆) 이 절과 더불어(與此節) 위로 연결된다(上連). 


《論語》, 子曰:“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논어에서(《論語》), 공자가 말하길(子曰): “하나라의 예를(夏禮) 내가(吾) 말할 수 있지만(能言之), 기나라에(杞) 증거가 부족하다(不足徵也). 은나라의 예를(殷禮) 내가 말할 수 있지만(吾能言之), 송나라에(宋) 증거가 부족하다(不足徵也). 문헌이(文獻) 모자라기(不足) 때문이니(故也), 충분하다면(足則) 내가(吾)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能徵之矣)."라고 했다.

 

○案 此謂夏·商之禮, 孔子知之, 而杞·宋反無所傳. 故不足以證孔子所知也. 

○案 이것은(此) 하나라와 은나라의 예를(夏·商之禮), 공자가 알지만(孔子知之, 而) 기나라와 송나라에(杞·宋) 도리어(反) 전해진 것이(所傳) 없다는(無) 말이다(謂). 그러므로(故) 공자가(孔子) 아는 것을(所知) 증명할 수 없다(不足以證也). 


〈禮運〉, 子曰: “我欲觀夏道, 是故之杞而不足徵也, 吾得夏時焉. 我欲觀殷道, 是故之宋而不足徵也, 吾得坤乾焉." 

예운에서(〈禮運〉), 공자가 말하길(子曰): “내가(我) 하나라의 도를(夏道) 보고 싶었고(欲觀), 이 때문에(是故) 기나라에 갔지만(之杞而) 증거가 부족했고(不足徵也), 내가(吾) 하나라의 시만 얻었다(夏時焉). 내가(我) 은나라의 도를(殷道) 보려고 했고(欲觀), 이 때문에(是故) 송나라에 갔지만(之宋而) 증거가 부족했고(不足徵也), 내가(吾) 건곤만 얻었다(得坤乾焉)."라고 했다.

 

○案 不足徵者, 謂彼邦之所存, 不足以證吾之所聞所學也. 

○案 부족징이란(不足徵者), 저 나라가(彼邦之) 보존한 것이(所存), 내가(吾之) 듣고(所聞) 배운 것을(所學) 증명하기에 부족하다는(不足以證) 말이다(也). 


箴曰 將言君子之道, 有徵有考, 【下文云:“徵諸庶民, 考諸三王."】 故先引孔子之言, 借一徵字, 以明斯道有證其義. 若曰孔子於禮, 雖能言能學, 苟其無徵, 則亦不敢從. 至於斯道, 有徵有考, 不可不從也. 

箴曰 장차(將) 군자의 도를 말하려면(言君子之道), 증거가 있고(有徵) 살필 것이 있어야 하고(有考), 【下文云: “서민에게 증험하고(徵諸庶民), 삼왕에게 견주어본다(考諸三王)."】 그러므로(故) 먼저(先) 공자의 말을 인용하고(引孔子之言), 징 한 글자를(一徵字) 빌려서(, 以) 이도를 밝히고(明斯道) 그 뜻을 증명함이 있다(有證其義). 만약(若) 공자가(孔子) 예에 대해(於禮), 비록(雖) 말할 수 있고(能言) 배울 수 있다고(能學) 하지만(曰), 진실로(苟) 그(其) 증거가 없다면(無徵, 則) 또한(亦) 감히 따를 수 없다(不敢從). 이 도에(於斯道) 이르러(至), 증거가 있고(有徵) 살필 것이 있다면(有考), 따르지 않을 수 없다(不可不從也). 

 

○夏禮·殷禮, 雖承上禮樂之文, 所重在‘徵’字, 不在‘禮’字. 當別爲一章, 爲下節之起峰也. 《大學》·《中庸》, 皆文斷處意續, 意斷處文續. ‘王天下’至‘百世以俟聖人而不惑, 知人也’, 皆當與此節合而爲一. 

○하례와 은례가(夏禮·殷禮), 비록(雖) 위의(上) 예악에 관한(禮樂之) 글을(文) 이었지만(承), 중요하게 여긴 것은(所重) 징 자에 있고(在‘徵’字), 예 자에 있지 않다(不在‘禮’字). 마땅히(當) 별도로(別) 한 장을 만들고(爲一章), 아랫절(下節之) 일어나는 봉우리로(起峰) 삼는다(也). 대학과 중용이(《大學》·《中庸》), 모두(皆) 글이 끊어진 곳에서(文斷處) 뜻이 이어지고(意續), 뜻이 끊어진 곳에서(意斷處) 글이 이어진다(文續). ‘왕천하(王天下)’부터 ‘백세이후사성인이불혹 지인야(百世以俟聖人而不惑, 知人也)’까지(至), 모두(皆) 마땅히(當) 이 절과 더불어(與此節) 합쳐서(合而) 하나가 된다(爲一). 


箴曰 王天下者, 議禮而無罪, 制度而無罪, 考文而無罪, 此之謂三重, 此之謂寡過也. 

箴曰 천하에 왕 노릇 하는 사람은(王天下者), 예를 논해도(議禮而) 죄가 없고(無罪), 법도를 만들어도(制度而) 죄가 없고(無罪), 문자를 고찰해도(考文而) 죄가 없으니(無罪), 이것을(此之) 삼중이라 하고(謂三重), 이것을(此之) 과과라고 한다(謂寡過也). 

 

○禮·度·文者, 有形有數之物, 而苟其無徵, 民不信從. 況道者無形無質之物, 苟爲無徵, 孔子豈敢以私言剏立其道, 以冀其信從乎? 但此道有本有徵, 又可考可建可質可俟, 確然無疑, 爲天下萬民所共由之大道, 將謂之無徵乎? 

○예와 법도, 글자는(禮·度·文者), 형이 있고(有形) 수가 있는(有數之) 물건이니(物, 而) 진실로(苟) 그(其) 증거가 없다면(無徵), 백성이(民) 믿고 따르지 않는다(不信從). 하물며(況) 도란(道者) 형이 없고(無形) 질이 없는(無質之) 물건이니(物), 진실로(苟) 하는 것에(爲) 증거가 없다면(無徵), 공자가(孔子) 어찌(豈) 감히(敢) 사사로운 말로(以私言) 그 도를(其道) 세워서(剏立, 以) 그(其) 믿고 따르기를(信從) 바라겠는가(乎)? 다만(但) 이 도에(此道) 근본이 있고(有本) 증거가 있고(有徵), 또한(又) 고찰할 수 있고(可考) 세울 수 있고(可建) 질문할 수 있고(可質) 기다릴 수 있고(可俟), 확실히(確然) 의심할 것이 없고(無疑), 천하 만민이(天下萬民) 함께 따라야 할(所共由之) 대도가 되니(大道), 장차(將) 증거가 없는 것이라고(無徵) 말할 수 있는가(謂之乎)?

 

本諸身徵諸庶民, 不可曰無徵也, 將謂之不尊乎? 孔子雖不尊, 三王尊, 天地尊, 鬼神尊, 百世之聖人皆尊, 不可曰不尊也. 民於此道焉, 敢不信而從之乎? 

자신에게 근본을 두고(本諸身) 서민에게 증험할 수 있으니(徵諸庶民), 증거가 없다고(無徵) 말할 수 없으니(不可曰也), 장차(將) 존귀하지 않다고(不尊) 말할 수 있는가(謂之乎)? 공자가(孔子) 비록(雖) 지위가 높지 않지만(不尊), 삼왕이 높이고(三王尊), 천지가 높이고(天地尊), 귀신이 높이고(鬼神尊), 백세 이후의(百世之) 성인이(聖人) 모두 높이는데(皆尊), 높지 않다고 할 수 없다(不可曰不尊也). 백성이(民) 이 도에 대하여(於此道焉), 감히(敢) 믿지 않고(不信而) 따르지 않겠는가(從之乎)? 

 

○本諸身者, 道生於性, 性在於身, 以天命之性, 擴而充之, 可以爲孝弟忠信·仁義禮智.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此本諸身也. 天下之人, 其性皆同, 故能盡其性者, 能盡人之性. 其一一皆受天命, 可知也. 此, 徵諸庶民也. 禹·湯·文·武, 皆本之天命, 以敎斯民, 此‘考諸三王而不謬’也. 

○자신에게 근본을 두는 것은(本諸身者), 도가(道) 성에서 나오고(生於性), 성은(性) 몸에 있으므로(在於身), 천명의 성을(以天命之性), 넓히고(擴而) 채우면(充之), 효제충신과(孝弟忠信) 인의예지를(仁義禮智) 할 수 있다(可以爲). 인의예지는(仁義禮智), 바깥에서 유래해서(由外) 나에게 스미는 것이(鑠我) 아니다(也). 이것은(此) 내 몸에 근본이 있다(本諸身也). 천하 사람들이(天下之人), 그(其) 성이(性) 모두(皆) 같고(同), 그러므로(故) 그 성을 다할 수 있으면(能盡其性者), 사람의 성을(人之性) 다할 수 있다(能盡). 그(其) 하나하나가(一一) 모두(皆) 천명을 받은 것임을(受天命), 알 수 있다(可知也). 이것이(此), 백성에게 증험하는 것이다(徵諸庶民也). 우, 탕, 문, 무가(禹·湯·文·武), 모두(皆) 천명을(天命) 근본으로 해서(本之, 以) 백성을 가르쳤고(敎斯民), 이것이(此) ‘삼왕에게 고찰해서(考諸三王而) 오류가 없음(不謬)’이다(也). 

 

建立此道, 則天地萬物, 莫不歸順, 此‘建諸天地而不悖’也. 百神承命, 輔佑化育, 萬物一本, 於此可驗, 此‘質諸鬼神而無疑’也. 千世在前, 百世在後, 前聖後聖, 其揆必同, 此‘百世以俟聖人而不惑’也. 豈可曰無徵? 豈可曰不尊乎? 道者, 何道也?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率性者, 中和之有常也. 

이 도를(此道) 세우면(建立, 則) 천지와 만물이(天地萬物), 무엇도(莫) 귀순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不歸順), 이것이(此) ‘천지에 세워서(建諸天地而) 어그러지지 않음(不悖)’이다(也). 백신이(百神) 명을 이어(承命), 보좌하고(輔佑) 화육하니(化育), 만물이(萬物) 하나의 근본임을(一本), 여기에서(於此) 증명할 수 있으니(可驗), 이것이(此) ‘귀신에게 질문하여(質諸鬼神而) 의심이 없음(無疑)’이다(也). 천세(千世) 앞에 있고(在前), 백세(百世) 뒤에 있고(在後), 전성과(前聖) 후성이(後聖), 그 헤아림이(其揆) 반드시 같으니(必同), 이것이(此) ‘백세 뒤의(百世以) 성인을 기다려(俟聖人而) 미혹함이 없음(不惑)’이다(也). 어찌(豈) 징험이 없다고(無徵) 말할 수 있는가(可曰)? 어찌(豈) 높지 않다고(不尊) 말할 수 있는가(可曰乎)? 도란(道者), 어떤 도인가(何道也)? 하늘이 명한 것을(天命之) 성이라 하고(謂性), 성을 따르는 것을(率性之) 도라 한다(謂道). 솔성이란(率性者), 중화에(中和之) 떳떳함이 있는 것이다(有常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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