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산 정약용의 공부/중용자잠(中庸自箴)

[여유당전서 중용자잠(中庸自箴) 3-9] 윗자리에 있으면 교만하지 않고 / 시고거상불교위하불패(是故居上不驕爲下不倍節)

by ഗൗതമബുദ്ധൻ 2023. 12. 2.
반응형

是故居上不驕爲下不倍國有道其言足以興國無道其默足以容: “旣明且哲以保其身.” 其此之謂與!

이 때문에(是故) 윗자리에 있으면(居上) 교만하지 않고(不驕), 아랫사람이 되어서는(爲下) 배반하지 않는다(不倍). 나라에(國) 도가 있으면(有道), 그 말이(其言) <나라를> 흥기 시키기에 충분하고(足以興); 나라에(國) 도가 없으면(無道), 그(其) 침묵하는 것이(默) 용납되기에 충분하다(足以容). 시에서 말하길(曰): “이미 밝고(旣明) 또(且) 명석해서(哲以) 그 몸을 보존했다(保其身).”라고 했다. 아마(其) 이것을(此之) 말한 것인가(謂與)!

 

箴曰 ‘居上不驕’一節, ‘愚而好自用’一節, 聖明人處世執中之法也. 國法有未善, 倍之, 則正合先王之道, 而爲下者以不倍爲中, 此至善之所在也. 至道蘊於中, 言之, 則可明先王之道, 而國無道, 則以含默爲中, 此至善之所在也. 今世之俗極卑汚, 古人之道至公正, 反之, 則天地可位也. 無其德無其位, 則以不自專爲中. 中者, 至善之所在也, 經文步步未或忘中庸二字. 

箴曰 ‘거상불교(居上不驕)’란 한 절과(一節), ‘우이호자용(愚而好自用)’이란 한 절은(一節), 성인과 명인이(聖明人) 세상에 처해서(處世) 중을 잡는(執中之) 법이다(法也). 나라의 법에(國法) 선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有未善), 등진다면(倍之, 則) 선왕의 도에(先王之道)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고(正合), 그러나(而)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은(爲下者) 등지지 않는 것을(以不倍) 중으로 여기니(爲中), 이것이(此) 지선이(至善之) 있는 곳이다(所在也). 지극한 도를(至道) 마음에 간직하고(蘊於中), 말한다면(言之, 則) 선왕의 도를(先王之道) 밝힐 수 있지만(可明, 而) 나라에(國) 두가 없다면(無道, 則) 말하지 않는 것을(以含默) 중으로 여기니(爲中), 이것이(此) 지선이(至善之) 있는 곳이다(所在也). 지금의(今世之) 풍속이(俗) 지극히(極) 낮고 더러우며(卑汚), 고인의 도는(古人之道) 지극히 공정하니(至公正), 이것을 돌이킨다면(反之, 則) 천지가(天地)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可位也). 그 덕이 없고(無其德) 그 지위가 없으면(無其位, 則) 스스로 마음대로 하지 않는 것을(以不自專) 중으로 여긴다(爲中). 중이란(中者), 지선이(至善之) 있는 곳이니(所在也), 경문은(經文) 걸음걸음마다(步步) 중용 두 글자를(中庸二字) 잊지 않도록 한다(未或忘)

* 含默(함묵):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잠(潛潛)히 있음.

 

○仲尼不制禮作樂, 此數節隱隱映出仲尼, 以明其有德無位, 故平生所行, 不過乎明哲保身. 

○중니가(仲尼) 예를 제정하지 않고(不制禮) 악을 만들지 않았다는(作樂), 이것은(此) 여러 절에서(數節) 슬그머니(隱隱) 중니를(仲尼) 드러내서(映出, 以) 그가(其) 덕이 있지만(有德) 지위가 없었고(無位), 그러므로(故) 평생(平生) 행한 것이(所行), 명철보신에 불과했음을(不過乎明哲保身) 밝혔다(明)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