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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공부/중용자잠(中庸自箴)

[여유당전서 중용자잠(中庸自箴 ) 1-6] 군자는 중용 하고 소인은 반대로 한다 / 중니왈 군자중용 소인반중용(仲尼曰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by ഗൗതമബുദ്ധൻ 2023.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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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曰: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중니가 말하길(仲尼曰): "군자는(君子) 중용을 실천하고(中庸), 소인은(小人) 중용에 반대로 한다(反中庸)."


箴曰 中者, 不偏不倚無過不及也. 名此於經文, 具有確證, 【但不偏之意, 不見本篇, 惟〈洪範〉云‘無偏無黨’】 惟庸字之義, 未有明解. 若云平常之理, 則聖人以平常之理, 名曰至德, 亦恐未然. 

箴曰 중이란(中者), 치우치지 않고(不偏) 기울어지지 않고(不倚)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이다(無過不及也). 이것을 이름 붙인 것은(名此) 경문에(於經文), 모두(具) 확증이 있으나(有確證), 【다만(但) 치우치지 않았다는 뜻은(不偏之意), 본편에서(本篇) 보이지 않고(不見), 오직(惟) 홍범에서(〈洪範〉) ‘무당무편(無偏無黨)’이라 했다(云)】 오직(惟) 용이란 글자의(庸字之) 뜻은(義),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未有明解). 만약(若) 평상의 도리를 말한다면(云平常之理, 則) 성인이(聖人) 평상의 도리를(以平常之理), 이름하여(名) 지덕이라 했으니(曰至德), 또한(亦) 그렇지 않을 것으로(未然) 생각된다(恐)

 

○《周禮》大司樂, 以六德敎國子, 其目曰‘中·和·祗·庸·孝·友', 【疏云: "此六德, 其中·和二德, 取大司徒六德之下, 孝·友二德, 取六行之上, 其祗·庸二德, 與被異."】 庸者, 有常也. 【鄭注云】 〈康誥〉曰‘庸庸祗祗', 似與樂德同義, 而注則不然. 【注云: "庸謂用其所當用, 祗謂敬其所當敬."】 《禮記·中庸》疏云‘以中和爲用, 故謂之中庸', 則顯然乖謬. 

○주례에서(《周禮》) 대사악이(大司樂), 육덕으로(以六德) 나라 자제를 가르치는데(敎國子), 그 조목이(其目) ‘중용(中)과 조화(和) 공경(祗), 떳떳함(庸), 효도(孝), 우애(友)'라 했고(曰), 【疏云: "이 육덕은(此六德), 그(其) 중과 화(中·和) 2 덕은(二德), 대사도의(大司徒) 여섯 덕목 아래서(六德之下) 취했고(取), 효와 우(孝·友) 2 덕은(二德), 육행의 위에서(六行之上) 취했고(取), 그 지와 용(其祗·庸) 2 덕은(二德), 이것과 다르다(與被異)."】 용이란(庸者), 떳떳함이 있음이다(有常也). 【鄭注云】 강고에서(〈康誥〉) ‘용용지지(庸庸祗祗)'라 한 것은(曰), 덕을 즐긴다와(與樂德) 같은 뜻인(同義) 듯한데(, 而) 주에서는(注則) 그렇지 않다(不然). 【注云: "용은(庸) 그 마땅히 써야 할 사람을(其所當用) 쓰는 것을 말하고(謂用), 지는(祗) 그 마땅히 공경해야 할 사람을(其所當敬) 공경하는 것을 말한다(謂敬)."】 예기 중용의(《禮記·中庸》) 소에서(疏) ‘중화로(以中和) 쓰임을 삼았고(爲用), 그러므로(故) 중용이라 한다(謂之中庸)'라고 했는데(, 則) 확연하게(顯然) 잘못되었다(乖謬). 

 

○竊嘗思之 仲尼之學, 源於堯·舜, 故《大學》之明德·新民, 其在〈堯典〉曰‘克明峻德, 以親九族, 以平百姓, 以協萬邦', 其在〈皐陶謨〉曰‘愼厥身修, 敦敍九族, 庶明勵翼, 邇可遠在玆', 皆是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說. 前聖後聖之言, 若令符節, 奚獨中庸二字, 爲仲尼所剏建, 而堯·舜之世無此說乎? 

○일찍이(竊嘗) 생각해 보면(思之) 중니의 학문은(仲尼之學), 요순에(於堯·舜) 근원이 있고(源), 그러므로(故) 태학의(《大學》之) 명덕과 신민은(明德·新民), 그것이(其) 요전에 있는(在〈堯典〉) ‘능히(克) 큰 덕을 밝혀서(明峻德, 以) 구족을 친애했고(親九族), 그것으로(以) 백성을 다스리고(平百姓), 그것으로(以) 만방을 복종하게 했다(協萬邦)'이니(曰), 그(其) 고요모에 있는(在〈皐陶謨〉) ‘삼가(愼) 그 몸을(厥身) 닦고(修), 구족에게(九族) 두터이 펴서(敦敍), 거의(庶) 밝아지고(明) 힘쓰고(勵) 삼가서(翼), 가까에서(邇) 먼 곳으로 갈 수 있음이(可遠) 여기에 있다(在玆)'라 한 것이니(曰), 모두(皆) 이(是) 수진, 제가, 치국, 평천하의 설이다(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說). 전상과 후성의 말이(前聖後聖之言), 만약(若) 부절을 맞춘 듯하다면(令符節), 어찌(奚) 오직(獨) 중용(中庸) 두 글자가(二字), 중니가(仲尼시작하고 세운 것이(所剏建) 되어(, 而) 요순시대에(堯·舜之世) 이 설이 없었겠는가(無此說乎)? 

 

今案〈皐陶謨〉, 皐陶陳九德之目, 其一曰‘寬而栗', 夫不偏於寬而濟之以栗, 則中也. 其二曰‘柔而立', 夫不倚於柔而濟之以立, 則中也. 其五曰‘擾而毅', 夫不過於擾而濟之以毅, 則中也. 其六曰‘直而溫', 夫不過於直而濟之以溫, 則中也. 

지금(今) 고요모를 살펴보면(案〈皐陶謨〉), 고요가(皐陶) 구덕의 조목을(九德之目) 나열해서(陳), 그(其) 첫째가(一) 관이유이라 하고(曰‘寬而栗'), 무릇(夫) 너그러움에(於寬) 치우치지 않고(不偏而) 엄숙함으로(以栗) 구제하면(濟之, 則) 중이다(中也). 그 둘째는(其二) 유이립이라 해서(曰‘柔而立'), 무릇(夫) 유에(於柔) 기울지 않고(不倚而) 세움으로 구제하면(濟之以立, 則) 중이다(中也). 그 다섯째는(其五) 요이의라 해서(曰‘擾而毅'), 무릇(夫) 길들여진 것에 지나치지 말고(不過於擾而) 굳셈으로 구제하면(濟之以毅, 則) 중이다(中也). 그 여섯째는(其六) 직이온이라 해서(曰‘直而溫'), 무릇(夫) 곧음에 지나치지 말고(不過於直而) 온화함으로 구제하면(濟之以溫, 則) 중이다(中也). 

 

餘所謂‘愿而恭’·‘亂而敬’·‘簡而廉’·‘剛而塞’·‘彊而義', 雖其字義, 今多不明, 要皆不偏於此而兼之如彼之意, 【詳見余〈尙書〉說, 今不細論】 末乃結之曰‘彰厥有常吉哉', 則九德者, 中也, 有常者, 庸也. 中庸二字, 其非堯·舜以來聖聖相傳之密旨要言乎? 

나머지는(餘) 이른바(所謂) ‘원이공(愿而恭)’과 ‘난이경(亂而敬)’, ‘간이렴簡而廉)’, ‘강이색(剛而塞)’, ‘강이의(彊而義)'이니, 비록(雖) 그 글자 뜻이(其字義), 지금(今) 많이(多) 분명하지 않지만(不明), 요점은(要) 모두(皆) 이것에(於此) 치우치지 말고(不偏而) 그와 같은 것을(之如彼) 겸한다는 뜻이니(之意), 【詳見余〈尙書〉說, 今不細論】 마지막에(末) 곧(乃) 결론지으며(結之) ‘그 떳떳함 있음을(厥有常) 드러내는 것이(彰) 길하다(吉哉)'라고 했으니(, 則) 9 덕이란(九德者), 중이고(中也), 떳떳함이 있는 것이(有常者), 용이다(庸也). 중용(中庸) 두 글자는(二字), 그것이(其) 요순 이래(堯·舜以來) 성현과 성현이(聖聖) 서로 전한(相傳之) 은밀한 종지이고(密旨) 요긴한 말이(要言) 아니겠는가(乎)? 

 

其在〈堯典〉曰: "夔, 命汝典樂. 敎冑子, 直而溫, 寬而栗, 剛而無虐, 簡而無傲." 其爲不偏不倚無過不及之德, 又昭昭然, 而大司樂中·和·祗·庸之敎, 本出〈堯典〉, 又彰彰然矣.

그(其) 요전에 있는(在〈堯典〉) 曰: "기(夔)여, 너를(汝) 전악에(典樂) 임명한다(命). 주자에게(冑子), 곧지만 온화하고(直而溫), 너그럽지만 엄격하고(寬而栗), 강하지만 사납지 않고(剛而無虐), 간략하지만 오만하지 않도록(簡而無傲) 가르쳐라(敎)." 그것이(其)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아(爲不偏不倚)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無過不及之) 덕인 것이(德), 또(又) 분명하여(昭昭然, 而) 대사악의(大司樂) 중, 화, 지, 용의(中·和·祗·庸之) 가르침은(敎), 본래(本) 요전에서 나왔음이(出〈堯典〉), 또(又) 분명하다(彰彰然矣).

 

古者敎人以禮樂, 故〈皐陶謨〉曰: "自我五禮有庸哉." 【梅〈傳〉云: "接之使有常."】 〈堯典〉曰: "典樂敎冑子以中庸之德." 仲尼以中庸立敎, 源源本本, 起於堯·舜. 知此而後, 中庸二字之義, 昭如日星, 建諸天地, 數千年湮晦不明之學, 一朝洞若發矇. 何快如之? 何樂如之? 

옛날(古者) 예악으로(以禮樂) 가르쳤고(敎人), 그러므로(故) 고요모에서(〈皐陶謨〉): "우리(我) 오례로부터(五禮) 떳떳함이 있어야 한다(有庸哉)."라고 했다(曰) 【梅〈傳〉云: "그것을 이어서(接之) 떳떳함이 있도록(有常) 해야 한다(使)."】 요전에서(〈堯典〉): "전악이(典樂) 중용의 덕으로(以中庸之德) 주자를 가르쳤다(敎冑子)."라고 했다(曰). 중니가(仲尼) 중용으로(以中庸) 가르침을 세웠고(立敎), 근원과(源源) 뿌리가(本本), 요와 순에서(於堯·舜) 일어났다(起). 이것을 알고 나서(知此而後), 중용(中庸) 두 글자의 뜻이(二字之義), 해와 별처럼(如日星) 빛나서(昭), 하늘과 땅에(諸天地) 서고(建), 수 천년(數千年) 묻히고 어두워져(湮晦) 밝지 않은 학문이(不明之學), 하루아침에(一朝) 어둠을 밝히는 것처럼(若發矇) 밝아질 것이다(洞). 무엇이(何) 그처럼(如之) 통쾌하겠는가( ) 무엇이(何) 그처럼(如之) 즐겁겠는가(樂)

 

○中之爲德, 理固然矣, 其必以有常爲貴者, 抑何以哉? 人之秉德, 雖至正大中, 若其人朝變夕改, 月異歲殊, 則卒無以爲成德之君子, 必固執恒守, 永久不渝而後, 方可以信其爲德. 

○중의(中之) 덕 됨이(爲德), 이치가(理) 참으로(固) 그러하니(然矣), 그(其) 반드시(必) 떳떳함이 있는 것을(以有常) 귀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爲貴者), 또한(抑) 무엇 때문인가(何以哉)? 사람이(人之) 덕을 가진 것이(秉德), 비록(雖) 지극히 바르고(至正) 위대한 중도라도(大中), 만약(若) 그 사람이(其人) 아침에 변하고 저녁에 바꾸며(朝變夕改), 달마다 다르고(月異) 해마다 다르면(歲殊, 則) 끝내(卒) 성덕의 군자가(成德之君子) 될 수 없으니(無以爲), 반드시(必) 굳세게 붙잡아(固執) 늘 지키고(恒守), 오래 지속하여(永久) 변하지 않은 뒤에야(不渝而後), 바야흐로(方) 그 덕 됨을(其爲德) 믿을 수 있다(可以信)

 

故孔子謂顔淵曰: "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或至數日, 或至一月, 故孔子曰: "其餘日月至焉而已矣." 此經曰‘擇乎中庸而不能期月守’者, 此之謂也. 

그러므로(故) 공자가(孔子) 안연에게 말하기를(謂顔淵) : "회는(回也), 그 마음이(其心) 삼 개월 동안(三月) 인을 어기지 않는다(不違仁)."라고 했다(曰). 그 나머지는(其餘) 혹(或) 며칠에 도달하거나(至數日), 혹(或) 한 달에 도달하고(至一月), 그러므로(故) 공자가(孔子): "그 나머지 사람은(其餘) 하루나 한 달에(日月) 도달할 뿐이다(至焉而已矣)."라고 했다(曰). 이 경에서(此經) ‘중용을 택해서(擇乎中庸而) 한 달을 지킬 수 없다(不能期月守)’라고 한 것은(者), 이것을 말한다(此之謂也). 

 

孟子曰: "朝晝之所爲, 梏亡其夜氣." 又曰: "一日暴之, 十日寒之." 所戒皆無常也. 《易》曰: "聖人久於其道而天下化成." 《易》曰: "不恒其德, 或承之羞." 孔子引南人之言曰: "人而無恒, 不可以爲巫毉." 又曰: "得見有恒者, 斯可矣." 無恒之戒, 何可勝數? 此皐陶九德之目, 所以結之以有常者也. 

맹자가(孟子): "낮에(朝晝之) 하는 일이(所爲), 그 밤 기운을(其夜氣) 어지럽히고 없앤다(梏亡)."라고 했고(曰), 또 말하길(又曰): "하루(一日) 따듯하면(暴之), 십일 동안(十日) 차갑다(寒之)."라고 했다. 경계하는 것이(所戒) 모두(皆) 떳떳함이 없는 것이다(無常也). 역에서(《易》): "성인이(聖人) 그 도를(於其道) 오래 해서(久而) 천하가(天下) 교화된다(化成)."라고 했다(曰) 역에서 말하길(《易》曰): "그 덕이(其德) 꾸준할 수 없으면(不恒), 누군가(或) 그에게(之) 수치를 안겨준다(羞)."라고 했다. 공자가(孔子) 남인의 말을(南人之) 인용해서 말하길(言): "사람이면서(人而) 꾸준함이 없으면(無恒), 무당이나 의원도 될 수 없다(不可以爲巫毉)."라고 했다(曰). 또 말하길(又曰): "꾸준할 수 있는 사람을 본다면(得見有恒者), 그렇다면 괜찮다(斯可矣)."라고 했다. 꾸준함이 없는 것을 경계하는 것을(無恒之戒), 어찌(何) 이루 다 셀 수 있는가(可勝數)? 이것이(此) 고요의(皐陶) 구덕의 조목이(九德之目), 유상자로(以有常者) 맺은(結之) 까닭이다(所以也). 

 

○堯命舜, 舜命禹曰‘允執其中', 而皐陶中庸之學, 傳于周公, 以至孔子. 其在立政曰‘籲俊尊上帝, 迪知忱詢于九德之行', 則皐陶九德之說也.

○요가(堯) 순에게 명하고(命舜), 순이(舜) 우에게 명해서(命禹) ‘진실로(允) 그 중을 잡아라(執其中)'라고 했고(, 而) 고요의(皐陶) 중용 학문이(中庸之學), 주공에게(于周公) 전해져서(, 以) 공자에 이르렀다(至孔子). 그가(其) 입점에서(在立政) 曰‘어진 사람을 구하는 것이(籲俊) 상제를 높이는 것이고(尊上帝), 迪知忱詢于九德之行', 則皐陶九德之說也.

* 籲俊(유준): 어진 사람을 구()하는 일.

 

乃其用人之法, 一則曰‘庶常吉士', 二則曰‘其惟克用常人', 歷言成湯·文王皆由此法, 則皐陶中庸之學, 灼有傳授, 聖聖相承, 罔敢墜地, 有如是者. 欲知中庸之義者, 盍於〈皐陶謨〉求之? 【〈洪範〉云‘沈潛剛克, 高明柔克', 亦中德也.】

이에(乃) 인재를 등용하는(其用人之) 법은(法), 하나는(一則) ‘많은 항상됨이 있는(庶常) 길사(吉士)'이고(曰), 다른 하나는(二則) ‘오직(其惟) 상인을(常人) 잘 등용하는 것이라(克用)'하고(曰), 歷言成湯·文王皆由此法, 則皐陶中庸之學, 灼有傳授, 聖聖相承, 罔敢墜地, 有如是者. 欲知中庸之義者, 盍於〈皐陶謨〉求之? 【〈洪範〉云‘沈潛剛克, 高明柔克', 亦中德也.】

 

箴曰 小人, 其處心也, 或偏或倚, 【未發而不中】 其行事也, 或過或不及, 【已發而不和】 旣然如此, 其秉德不能有常, 此之謂反中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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