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가(子夏) 효를 물었다(問孝). 子曰: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色) 어렵다(難). 일이 있으면(有事), 낮거나 어린 사람이(弟子) 그 수고를(其勞) 짊어지고(服), 술과 음식이 있으면(有酒食), 높은 사람이나 어른에게(先生) 차려주는데(饌), 일찍이(曾) 이것을(是) 효라고 여기는가(以爲孝乎)?"
補曰 色難, 謂事親能愉色乃爲難. 【朱子云: "孝子之有深愛者, 必有和氣, 有和氣者, 必有愉色, 有愉色者, 必有婉容." ○〈祭義〉文】
補曰 색난은(色難), 부모님을 모실 때(事親)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能愉色) 곧(乃) 어렵다는(爲難) 말이다(謂). 【朱子云: "효자로서(孝子之) 깊은 사랑이(深愛) 있는 사람은(有者), 반드시(必) 온화한 기운이 있고(有和氣), 온화한 기운이 있는 사람은(有和氣者), 반드시(必) 부드러운 얼굴빛이 있고(有愉色), 부드러운 얼굴빛이 있는 사람은(有愉色者), 반드시(必) 공손한 모습이 있다(有婉容)." ○〈祭義〉文】
○補曰 弟子, 卑幼之稱. 先生, 尊長之稱也. 服, 躬任也, 如牛服軛然. 【〈考工記〉云: "兩軛之間, 謂之衡任."】 饌, 陳列也. 凡長幼同會, 有事, 則卑幼者例服其勞, 有酒食, 則尊長所食, 例先陳設, 此鄕黨之恒禮也. 子事父母, 當於恒禮之外, 別有婉容愉色. 若但用長幼之恒禮, 則曾是以爲孝乎? 曾, 詞之舒也. 【《說文》云】
○補曰 제자는(弟子), 낮고 어린 사람을(卑幼之) 일컫는다(稱). 선생은(先生), 높고 나이 많은 사람을(尊長之) 일컫는다(稱也). 복은(服), 몸소(躬) 짊어지는 것이니(任也), 마치(如) 소가(牛) 멍에를 멘 듯하다(服軛然). 【〈考工記〉云: "두 멍에의(兩軛之) 사이를(間), 형임이라고 한다(謂之衡任)."】 찬은(饌), 늘어놓는 것이다(陳列也). 무릇(凡) 어른과 아이가(長幼) 함께 모이고(同會), 일이 있으면(有事, 則) 낮고 어린 사람이(卑幼者) 대개(例) 그 수고로움을 짊어지고(服其勞), 술과 음식이 있으면(有酒食, 則) 높고 나이 많은 사람이(尊長) 먹을 것을(所食), 대개(例) 먼저(先) 진설하니(陳設), 이것이(此) 향당의(鄕黨之) 항례다(恒禮也). 자식이(子) 부모를 모시면(事父母), 마땅히(當) 항례의 이외에도(於恒禮之外), 별도로(別) 공손하고(婉容) 부드러운 빛이(愉色) 있어야 한다(有). 만약(若) 단지(但) 장유의(長幼之) 항례만을(恒禮) 행한다면(用, 則) 일찍이(曾) 이것을(是) 효라고 여기겠는가(以爲孝乎)? 증은(曾), 말이(詞之) 완만한 것이다(舒也). 【《說文》云】
包曰: "色難者, 謂承順父母顔色乃爲難."
包曰: "색난이란(色難者), 부모의 안색을 <보고>(父母顔色) 받들어 따르는 것이(承順) 곧(乃) 어렵다는(爲難) 말이다(謂)."
○駁曰 非也. 陳氏云: "此說, 添‘承順父母’字, 方可解."
○駁曰 非也. 陳氏云: "이 설은(此說), ‘승순부모(承順父母)’글자를(字) 첨가해야(添), 비로소(方) 이해할 수 있다(可解)."
馬曰: "先生, 謂父兄."
馬曰: "선생은(先生), 부형을 말한다(謂父兄)."
○駁曰 非也. 夫子之言, 明明以父母別於先生, 而親子別於弟子, 欲於長幼恒禮之外, 別求其婉容愉色. 先儒乃以父兄當先生, 則其言晦彩, 極矣. 世有親父而名之曰先生, 親子而名之曰弟子者乎?
○駁曰 非也. 부자의 말이(夫子之言), 분명하게(明明以) 부모와(父母) 선생을(於先生) 구별하고(別, 而) 친자와(親子) 제자를(於弟子) 구분했으니(別), 어른과 아이의(於長幼) 항례의(恒禮之) 바깥에(外), 별도로(別) 공손한 몸가짐과(其婉容) 부드러운 낯빛을(愉色) 요구하려고 했다(欲求). 선유가(先儒) 이에(乃) 부형을(以父兄) 선생에 해당시키고(當先生, 則) 그 말이(其言) 어두워진 것이(晦彩), 너무하다(極矣). 세상에(世) 친부가 있는데(親父而) 이름을(名之) 선생이라 하고(曰先生), 친자가 있는데(親子而) 이름을(名之) 제자라 한(曰弟子) 것이 있는가(有者乎)?
馬曰: "饌, 飮食也."
馬曰: "찬은(饌), 음식이다(飮食也)."
○駁曰 非也. 〈士冠禮〉曰: "筮饌于西塾." 〈士昏禮〉曰: "醯醬饌于房中." 《儀禮》諸篇, 凡言饌者, 皆陳列之義也. 今訓飮食, 可乎?
○駁曰 非也. 〈士冠禮〉曰: "점대가(筮) 서숙에(于西塾) 차려졌다(饌)." 〈士昏禮〉曰: "고기와 장이(醯醬) 방중에(于房中) 차려졌다(饌)." 예의(《儀禮》) 여러 편에서(諸篇), 무릇(凡) 찬을 말한 것은(言饌者), 모두(皆) 진열했다는(陳列之) 뜻이다(義也). 지금(今) 음식이라고 풀이하면(訓飮食), 옳은가(可乎)?
吳程曰: "曾舊音增, 《集註》讀如字." ○程復心曰: "曾音層, 與曾謂泰山之曾同音. 《釋文》, 嘗也. 又不料之詞, 反詞也." 【孫奕《示兒編》云: "曾字, 除人姓及曾孫外, 今學者皆作層字音讀. 然經史並無音, 止當音增."】
吳程曰: "증은(曾) 옛날에(舊) 증으로 읽었는데(音增), 집주는(《集註》) 글자 그대로(如字) 읽었다(讀)." ○程復心曰: "증의 음은(曾音) 층이고(層), 증위태산의 증과 더불어(與曾謂泰山之曾) 같은 음이다(同音). 석문에서는(《釋文》), 상이다(嘗也). 또한(又) 요량(앞일을 잘 헤아림)하지 못한다는(不料之) 말이니(詞), 반어사다(反詞也)." 【孫奕《示兒編》云: "曾字, 除人姓及曾孫外, 今學者皆作層字音讀. 然經史並無音, 止當音增."】
○案 〈大雅〉云: "曾是彊禦, 曾是掊克, 曾是在位, 曾是在服. 曾是莫聽." 【又云: "曾莫惠我師."】 《孟子》云: "爾何曾比予於是?" 皆與嘗義不同, 亦非反辭. 《說文》以爲‘辭之舒’者近是. 曾孫之曾, 本是層累之意, 而讀之爲增. 獨於‘曾是’之曾, 讀之爲層, 恐不必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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