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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위정(爲政) 2-17] 자로야!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해라 /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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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由! 誨女知之乎(유회여지지호)? 知之爲知之(지지위지지), 不知爲不知(부지위부지), 是知也(시지야).”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유야(由)! 너에게(女) 아는 것(知之)을 가르쳐줄까(乎-誨)? 아는 것(知之)을 안다고 여기고(爲知之), 모르는 것을(不知) 모른다고 여기고(爲不知),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是知也).

  • 한문 문법에서 '之'는 일반적으로 목적어를 대체하는 지시대명사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知之爲知之'를 '그것을 아는 것을 그것을 안다고 여기고'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딘가 문장이 이상합니다. 이 문장에서 목적어를 받는 '之'를 사용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之'는 우리말 의존명사 '것'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런 용도로 고대 우리말에서는 [지]라는 소릿값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의 지는 '추측'의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말의 '아는 지 모르는 지'와 같은 용법입니다. '之'의 이런 용법은 현대 중국어에는 없습니다. 
    '由此觀之'를 보통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본다면'이라고 해석하지만, 위의 관점으로 보면 '이로 말미암아 볼지라면'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어느 것이든 의미는 통하지만 '목적어'보다는 '조사'로 해석하는 것이 전체 문맥을 매끄럽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됩니다. 
  • '지之'는 한문에서 아주 많이 사용하는 한자다. 이 之는 크게 세 가지 용법으로 쓰인다.
    1) 동사로 쓰일 때는 '가다'란 뜻이다. 沛公引兵之薛 → 패공(유방)이 병사를 이끌고 설로 갔다.
    2) 대명사로 쓸 때는 '그', '그것'이란 뜻이다. 王見之曰 → 왕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3) 조사로 쓸 때는 '-의(한)', '-을(를)', '-이(가)' 등으로 해석한다. 民神之主也 → 백성이 신의 주인이다. 我之謂風波之民 → 나를 풍파에 흔들리는 사람이라고 해야한다. (목적어 전치 표시)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목적어 전치 표시, 보통 목적어를 강조한다.)
    이 가운데 대명사로 쓰인 之는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막연한 대상을 가리킨다. 앞에 쓰인 한자가 동사임을 분명하게 하거나 음절수를 늘리는 구실을 한다. 이 때는 해석하지 않는 것이 우리말 흐름에 더 맞다. 위의 예는 음절수를 맞추려고 쓴 之다. 知之為知之,不知為不知,是知也 = 知為知,不知為不知,是知也
    조사로 쓸 때 목적어를 之 앞으로 끌고 와서 '~을(를)로, 之를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넣어 절을 만들 때는 '~이(가)'로 풀이한다. <정춘수, 한번은 한문 공부>

 

女, 音汝.

○ 由, 孔子弟子, 姓仲, 字子路. 子路好勇, 蓋有强其所不知以爲知者, 

유(由)는, 공자 제자로(孔子弟子), 성은 중이고(姓仲), 자는 자로(字子路)다. 자로(子路)가 용맹함을 좋아하고(好勇), 대체로(蓋) 그(其) 모르는 것(所不知)을(以) 안다고(爲知) 강하게 주장함이(强-者) 있었을 것이고(有), 

 

故夫子告之曰: 我敎女以知之之道乎! 但所知者則以爲知, 所不知者則以爲不知. 

그러므로(故) 선생님이(夫子) 그에게 일러(告之) 말하기를(曰): 내가(我) 너에게(女) 앎의 도를(以知之之道) 가르쳐줄까(敎-乎)라고 했다. 다만(但) 아는(所知) 것(者) 이라면(則) 그것으로(以) 안다고 하고(爲知), 모르는(所不知) 것이면(者則) 그것으로(以) 모른다고 해라(爲不知). 

 

如此則雖或不能盡知, 而無自欺之蔽, 亦不害其爲知矣. 

이와 같다면(如此則) 비록(雖) 혹(或) 앎을 다할(盡知) 수 없더라도(不能, 而) 자기를 속이는(自欺之) 가림(蔽)이 없고(無), 또한(亦) 그(其) 앎이 되는(爲知) 것에 해롭지 않을 것이다(不害-矣). 

 

況由此而求之, 又有可知之理乎?

더구나(況) 이것을 말미암아서(由此而) 그것을 구하면(求之), 또(又) 알수 있음의 이치(可知之理)가 있지 않겠는가(有-乎)?


공자의 말이 구체적인 대상을 향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 대상과 공자 사이에 발생하는 구체적 맥락을 고려해서 해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주자는 자로에 대해 '본시 용맹스러움을 좋아하여,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안다고 우기는 성향이 있다'라고 평했다.

 

참으로 아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해서 공자는 인식론적, 논리적 규정을 내리지 않는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으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앎이다. 이것은 앎에 대한 개념적 정의가 아니라 우리가 앎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말한 것이다. 특히, 이 구절에서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면, 내가 아는 것이 드러나고, 무지한 상태가 언제가 아는 상태로 전이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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