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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위정(爲政) 2-16] 이단의 위험하고 해로울 뿐이다 / 공호이단 사해야이(攻乎異端, 斯害也已!)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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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자왈 공호이단 사해야이)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단을(乎異端, 색다른 것, 다른 단서) 전공한다면(攻, 斯=則) 해로울 뿐이다(害也已).

 

* 접속사 斯 : ~하면 곧, ~하면 비로소

 

* '攻'을 주로 '專治(비판하다)' 또는 '專攻(연구하다)'으로 해석한다. 둘 모두 한 곳을 집중적으로 탐색하는 것을 말한다. '異端'을 '제자백가'나 '양주 묵적의 무리'라고 후대에 주석했지만, 이런 개념은 공자 시대에는 없었다. 공자가어에 '이단'이란 용례가 있는데, 대략 '다른 단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단을 현대의 정통/이단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양묵이나 노불은 모두 후대에 형성된 개념이고, 공자 시대에 공자를 괴롭힌 이단 학파의 개념은 아니다. '이단'의 용례를 고전에서 찾아보면 대체로 '타기他技'라는 의미가 있다. 타기는 '기이하고 교모한 소도'이다. 무언가 기발하고 색다른 생각의 단서를 말한다.
공호이단攻乎異端의 공은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공격한다/비판하다'이고, 둘째는 전공한다/연구한다'이다. 이단을 이교설로 풀면 첫째의 뜻이 더 맞고, 색다른 생각이나 단서로 풀면 둘째의 뜻이 더 맞다. 누군가는 이단을 연구하는 것이 해가 된다고 말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나 새로운 사고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공자의 모습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공자가 말하는 요점은 '상식의 존중'이다. 상식적인 것을 버리고 색다른 것만 추구하는 것 또한 비판받아야 한다.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范氏曰: “攻, 專治也, 故治木石金玉之工曰攻. 異端, 非聖人之道, 而別爲一端, 如楊ㆍ墨是也. 

범씨가 말하기를: 공(攻), 오로지(專) <한 분야에> 힘씀/다스림이고(治也), 그러므로(故) 목석금옥을 다스리는(治木石金玉之) 공인(工)을 공(攻)이라 말한다(曰). 이단(異端)은, 성인의 도(聖人之道)가 아니고(非, 而) 별도로(別) 한 부분(一端)을 만들었으니(爲), 양묵과 같은(如楊ㆍ墨) 것이 이것이다(是也). 

 

其率天下至於無父無君, 專治而欲精之, 爲害甚矣!”

그들(其)이 천하를(天下) 무부무군에(於無父無君) 이르도록(至) 이끌어서(率), 오로지 힘써서(專治而) 그것을 정밀하게 파고들려(精之) 하면(欲), 해가 됨이(爲害) 심하다(甚矣)!

 

○ 程子曰: “佛氏之言, 比之楊ㆍ墨, 尤爲近理, 所以其害爲尤甚. 

정자가 말하기를: 불씨의 말(佛氏之言)이, 양주 묵적(楊ㆍ墨)에 그것(之)을 견주면(比), 더욱(尤) 이치에 가깝게(近理) 되니(爲), 그래서(所以) 그 해악(其害)이 더욱(尤) 심하게 되었다(爲甚). 

 

學者當如淫聲美色以遠之, 不爾, 則駸駸然入於其中矣.”

배우는 사람(學者)은 마땅히(當) 음탕한 소리나 아름다운 여색처럼(如淫聲美色以) 그것을 멀리해야 하고(遠之), 그렇지 않으면(不爾), 곧(則) 차츰차츰(駸駸然) 그 안으로(於其中) 들어갈 것이다(入矣).

 

茶山曰: “孔子之時, 老ㆍ莊ㆍ楊ㆍ墨未立門戶. 非如後世三敎鼎立, 出奴入主, 則孔子所指, 非謂是也.”

다산이 말하기를: 공자의 시대에는(孔子之時), 노장양묵(老ㆍ莊ㆍ楊ㆍ墨)이 아직(未) 문호(門戶)를 세우지 않았고(未-立). 非如후세에(後世) 삼교가 정립되고(三敎鼎立), 나가면 노예가 되고(出奴) 들어오면 주인이 되는(入主) 것과 같지 않으니(非如), 곧(則) 공자가(孔子) 가리킨 것(所指)이, 이것을 말함이(謂是) 아니다(非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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