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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의길/논어집주(論語集註)

[논어집주 위정(爲政) 2-2]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 사무사(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 생각에 사악함이 없는 것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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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詩三百(시삼백), 一言以蔽之(일언이폐지), 曰 ‘思無邪(사무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시(詩) 삼백 편(三百)을, 한마디 말로써(一言以) 그것을 덮자면(蔽之), 생각(思)에 사악함이 없다(無邪)고 말한다(曰).

 

* 思無邪: 형병은 '시경 노송(魯頌) 경(駉) 편에 나오는 말이라고 했고, '사념 없이 내달리다'로 풀었다. 노송(魯頌) 경(駉) 편에는 끝없이 내달린다는 뜻의 '사무강思無疆', 기약 없이 내달린다는 뜻의 '사무기思無期'란 표현이 있다. (교양인의 논어, 신동준)

 

詩三百十一篇, 言三百者, 擧大數也.

시경(詩)은 삼백 십일 편(三百十一篇)이고, 삼백이란 것(三百者)은, 큰 수(大數)를 들어(擧) 말했다(言, 也).

 

○ 星湖先生曰: “詩, 三百十一篇. 其六, 笙詩也; 其五, 「商頌」也. 笙詩本亡, 「商頌」, 前代之詩, 故不在數. 詩, 惟三百篇也.” 『論語古今註』

성호선생이 말하기를: 시경(詩)은, 삼백 십일 편이다(三百十一篇). 그 여섯(其六)은, 생시고(笙詩也); 그 다섯(其五)은, 상송이다(商頌也). 생시(笙詩)는 본래(本) 없고(亡), 상송(商頌)은, 전대의(前代之) 시(詩)이니, 그러므로(故) 숫자에 있지 않다(不在數). 시경(詩)은, 오직(惟) 삼백 편이다(三百篇也). <論語古今註>

 

○ 蔽, 猶蓋也. ‘思無邪’, 魯頌「駉」篇之辭. 凡詩之言, 善者可以感發人之善心, 惡者可以懲創人之逸志, 

폐(蔽)는, 덮음(蓋)과 같다(猶也). 사무사(思無邪)는, 노송(魯頌)의 경 편의(駉篇之) 말(辭)로. 무릇(凡) 시의 말(詩之言)이, 선한 것(善者)은 사람의 착한 마음(人之善心)을 느껴 움직이게(感發) 할 수 있고(可以), 악한 것(惡者)은 사람의 안일한(人之逸) 뜻(志)을 꾸짖어 경계하게(懲創) 할 수 있고(可以), 

 

* 感發(감발):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 懲創(징창): 허물이나 잘못을 뉘우치도록 벌을 주거나 꾸짖어서 경계함.

* 創(창): 비롯하다, 시작하다, 다치다, 징계하다, 슬퍼하다, 만들다, 비로소. 

 

其用歸於使人得其情性之正而已.

그 쓰임(其用)이 사람으로 하여금(使人) 그 정성의 바름(其情性之正)을 얻게(得) 하는 데(使-於) 귀결될(歸) 따름이다(而已).

 

然其言微婉, 且或各因一事而發, 求其直指全體, 則未有若此之明且盡者.

그러나(然) 그 말(其言)이 정묘하고 은근하며(微婉), 또(且) 어떤(或) 것은 저마다(各) 한 가지 일(一事)로 말미암아서(因-而) 드러낸(發) 것이어서, 그(其) 전체(全體)를 직접 가리키는(直指) 것을 찾아보면(求-則), 이와 같음의(若此之) 분명하고(明且) 극진한 것(盡者)이 있지 않다(未有).

 

* 婉(완): 순하다, 예쁘다, 아름답다, 은근하다, 간략하다, 곡진하다(매우 정성스럽다).

 

故夫子言詩三百篇, 而惟此一言足以盡蓋其義, 其示人之意亦深切矣.

그러므로(故) 선생님(夫子)은 시가 삼백 편이지만(詩三百篇, 而) 오직(惟) 이 한마디가(此一言) 그 뜻(其義)을 다 덮기에(盡蓋) 충분하다(足以)고 말했으니(言), 그(其) 사람들(人)에게 보여주신(示之) 뜻이(意) 또한(亦) 깊고 절실하다(深切矣).

 

○ 程子曰: “‘思無邪’者, 誠也.”

정자가 말하기를: 사무사(思無邪)란 것은(者), 진실함이다(誠也).

 

范氏曰: “學者必務知要, 知要則能守約, 守約則足以盡博矣. 經禮三百, 曲禮三千, 亦可以一言以蔽之, 曰 ‘毋不敬’.”

범씨가 말하기를: 배우는 자(學者)는 반드시(必) 務요체를 아는(知要) 것에 힘쓰고(務), 요체를 알았다면(知要則) 간략함을 지킬(守約) 수(能) 있고,  간략함을 지킨다면(守約則) 넓어짐을 다하기(盡博)에 충분하다(足以矣). 경례(經禮) 삼백(三百)과, 곡례(曲禮) 삼천(三千)이, 또(亦) 한마디 말로(一言以) 그것을 덮을(蔽之) 수 있으니(可以), 불경하지 말아야 한다(毋不敬)는 말이다(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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