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는(道) 하나를(一) 낳고(生), 하나는(一) 둘을 낳고(生二), 둘은(二) 셋을 낳고(生三), 셋은(三) 만물을 낳는다(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만물은(萬物) 음을(陰) 짊어지고(負而) 양을(陽) 끌어안아(抱), 충기로(沖氣以, 빈 기운, 심원한 기운, 조화된 기운) 조화를 이룬다(爲和).
* 沖氣以爲和: 帛書本에는 ‘沖氣’가 ‘中氣’로 되어 있다. ‘沖’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沖의 의미를 따라 陰陽의 기운이 뒤섞인 상태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元氣, 一氣 등 근원성을 강조하는 해석이다. 그런데 帛書本에는 ‘中氣’ 즉 음과 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중앙의 氣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人之所惡, 唯孤·寡·不穀, 而王公以爲稱. 故物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사람이(人之) 싫어하는 것은(所惡), 오직(唯) 홀로 되고(孤), 버려지고(寡), 가진 것 없는 것이지만(不穀, 而) 왕공이(王公) 호칭으로 삼고(以爲稱). 그러므로(故) 만물은(物) 혹 덜어내면(或損之而) 보태지고(益), 혹 보태면(或益之而) 덜어진다(損).
萬物萬形, 其歸一也, 何由致一, 由於無也.
만물이(萬物) 만 가지 형체지만(萬形), 그(其) 돌아가는 곳은(歸) 하니이니(一也), 무엇을 말미암아(何由) 하나에 이르는가(致一), 없음에(於無) 말미암는다(由也).
由無乃一, 一可謂無, 已謂之一, 豈得無言乎.
없음을 말미암아(由無乃) 하나가 되고(一), 하나를(一) 무라고(無) 말할 수 있으니(可謂), 이미(已) 그것을(之) 하나라 말했으니(謂一), 어찌(豈) 말이 없음이라고(無言) 하겠는가(得乎).
有言有一, 非二如何, 有一有二, 遂生乎三, 從無之有, 數盡乎斯, 過此以往, 非道之流, 故萬物之生, 吾知其主, 雖有萬形, 沖氣一焉.
말이 있고(有言) 하나가 있으니(有一), 둘이 아니면(非二) 무엇이며(如何), 하나가 있고(有一) 둘이 있어서(有二), 마침내(遂) 셋을(乎三) 생겨나게 하니(生), 없음을 따라(從無) 있음으로 가고(之有), 수는(數) 이것에서(乎斯) 다하고(盡), 이것을 지나서(過此) 뒤로는(以往), 도의 부류가(道之流) 아니고(非), 그러므로(故) 만물의(萬物之) 생겨남은(生), 내가(吾) 그 주인을(其主) 알고(知), 비록(雖) 만 가지 형체가(萬形) 있더라도(有), 충기가(沖氣) 거기에서 하나 된다(一焉).
百姓有心, 異國殊風, 而得一者, 王侯主焉.
백성에게(百姓) 마음이 있고(有心), 다른 나라에서는(異國) 다른 풍속이 있지만(殊風, 而) 하나를 얻은(得一) 사람은(者), 왕후로(王侯) 거기에서 주인이 된다(主焉).
以一爲主, 一何可舍, 愈多愈遠, 損則近之, 損之至盡, 乃得其極.
하나로(以一) 주인을 삼는데(爲主), 하나를(一) 어찌(何) 버릴 수 있는가(可舍), 더욱(愈) 많을수록(多) 더욱 멀어지고(愈遠), 덜아내면(損則) 가까워지고(近之), 덜어냄이(損之) 다함에 이르면(至盡, 乃) 그 궁극을(其極) 얻는다(得).
旣謂之一, 猶乃至三, 況本不一而道可近乎, 損之而益, 豈虛言也.
이미(旣) 그것을(之) 하나라고 말하고(謂一), 오히려(猶) 바로(乃) 셋에 이르니(至三), 하물며(況) 근본이(本) 하나가 아닌데(不一而) 도가(道) 가까울 수 있겠는가(可近乎), 덜어내면(損之而) 보태지는 것이(益), 어찌(豈) 빈 말이겠는가(虛言也).
人之所敎, 我亦敎之.
남이(人之) 가르치는 것은(所敎), 나도 또한(我亦) 그것을 가르친다(敎之).
我之非强使人從之也, 而用夫自然, 擧其至理, 順之必吉, 違之必凶.
내가(我之) 억지로(强) 사람들로 하여금(使人) 따르도록 하는 것이(從之) 아니라(非也, 而) 저(夫) 자연스러움을(自然) 쓰고(用), 그(其) 지극한 이치를(至理) 들었으니(擧), 그것을 따르면(順之) 반드시(必) 길하고(吉), 그것을 어기면(違之) 반드시(必) 흉하다(凶).
故人相敎, 違之自取其凶也, 亦如我之敎人, 勿違之也.
그러므로(故) 사람들이(人) 서로(相) 가르친 때(敎), 그것을 어기는 것은(違之) 스스로(自) 그 흉함을(其凶) 취한 것이라고 하니(取也), 또한(亦) 내가(我之) 남을 가르치기를(敎人), 그것을 어기지(違之) 말라는 것과 같다(如勿也).
强梁者不得其死, 吾將以爲敎父.
강하고 굳센(强梁) 사람은(者) 제대로 된 죽음을(其死) 얻지 못하니(不得), 아는(吾) 장차(將) <그것을> 가르침의 아버지로(敎父) 삼을 것이다(以爲).
强梁則必不得其死. 人相敎爲强梁, 則必如我之敎人不當爲强梁也.
강하고 굳세면(强梁則) 반드시(必) 올바른 죽음을(其死) 얻지 못한다(不得). 사람들이(人) 서로(相) 가르치기를(敎) 강하고 굳세게 되면(爲强梁, 則) 반드시(必) 내가(我之) 강하고 굳세게 되는 것을(爲强梁) 옳지 않다고(不當) 남에게 가르치는(敎人) 것과 같다(如也).
舉其强梁不得其死以敎邪. 若云順吾敎之必吉也, 故得其違敎之徒, 適可以爲敎父也.
그(其) 강하고 굳셈은(强梁) 제대로 된 죽음을(其死) 얻지 못함을(不得) 들어서(舉以) 가르친다(敎邪). 내 가르침을(吾敎) 따르는 것은(順之) 반드시(必) 길하다 라고(吉) 말하는 것과 같고(若云也), 그러므로(故) 그(其) 가르침을 어기는(違敎之) 무리를(徒) 들어(得), 바로(適) 가르침의 어버이로(敎父) 삼을 수 있다(可以爲也).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