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云: “予懷明德, 不大聲以色.” (시운 여회명덕 부대성이색)
시에 이르기를: 나는 밝은 덕이 말소리와 얼굴색을 크게 여기지 않음을 마음에 품었다고 말했다.
- 聲以色에서 以는 與와 통하는 글자다. 聲은 號令(지휘하고 꾸짖는 말)을 말한다. 정현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석가가 色을 안색으로 풀었다.
詩, 大雅「皇矣」之篇. 引之以明上文所謂不顯之德者, 正以其不大聲與色也.
시는, 대아 황의 편이다. 이것을 인용해서 윗글에서 이른바 드러나지 않은 덕이, 바로(正) <말>소리와 <얼굴>색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음을 밝혔다.
- 大는 귀하게 여기고, 주로 하는 것을 말한다.
子曰: “聲色之於以化民, 末也.” (자왈 성색지어이화민 말야)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소리와 얼굴빛은 백성을 교화하는 데 있어서, 말단이라고 했다.
又引孔子之言, 以爲聲色乃化民之末務.
또 공자의 말을 인용해서, 말소리와 얼굴색이 백성을 교화하는 말단이 되는 수단(末務)이라고 여겼다.
今但言不大之而已, 則猶有聲色者存,
지금 다만 크게 여기지 않는다고만 말한다면, 말소리와 얼굴빛이 있는 것과 같으니,
是未足以形容不顯之妙.
이것은 드러나지 않는 덕의 오묘함을 나타내기(形容)에는 부족하다.
詩云: “德輶如毛.” 毛猶有倫. (시운 덕유여모 모유유륜)
시에 이르기를: 덕의 가벼움이 터럭과 같다고 했다. 터럭은 오히려(猶) 비교할 만함이(倫)이 있다.
不若「烝民」之詩所言德輶如毛, 則庶乎可以形容矣.
대아 증민(烝民)의 시에서 덕의 가벼움(輶)이 터럭과 같다고 말한 것은, 거의 <오묘함을> 형용할 수 있는 것과 같지 않다.
而又自以爲謂之毛, 則猶有可比者, 是亦未盡其妙.
또
“上天之載, 無聲無臭,” 至矣! (상천지재 무성무취 지의)
상천이 <하는>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서 <알기 어려우니>, 지극할 것이다.
不若「文王」之詩所言“上天之載, 無聲無臭,” 然後乃爲不顯之至耳.
문왕 편에서 상천이 하는 일이,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고 말한 뒤에야, 드러나지 않은 덕이 지극하게 되는 것과 같지 않다.
蓋聲臭有氣無形, 在物最爲微妙, 而猶曰無之,
대체로 소리와 냄새는 기운이 있지만 형체가 없어서, 사물 가운데 가장(最) 은미하고 오묘하게 되니, 오히려 없다고 말한다.
故惟此可以形容不顯ㆍ篤恭之妙.
그러므로 오직 이것(이 말)이 오히려 드러나지 않은 덕과 돈독한 공경함의 오묘함을 형용할 수 있다.
非此德之外, 又別有是三等, 然後爲至也.
이 덕의 바깥에 또 별도로 세 등급이 있고 나서야, 지극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右第三十三章.
이상은 제 33장이다.
子思引前章極至之言, 反求其本, 復自下學ㆍ爲己ㆍ謹獨之事推而言之.
자사가 앞 장의 지극함이 극에 달한 <사람>의 말을 인용해서, 돌이켜 그 근본을 구하고, 다시 하학의 단계부터 위기, 근독의 일로 미루어 나가며 말했다.
以馴致乎篤恭而天下平之盛.
독공의 목표를 향해 이루어 나가면(馴致) 천하가 공평하게 다스려짐이 성대하게 된다.
又贊其妙, 至於無聲無臭而後已焉.
또 그 오묘함을 찬미하고, 무성무취에 이른 뒤에야 그쳤다.
蓋擧一篇之要而約言之, 其反復丁寧示人之意, 至深切矣.
대체로 이 책의 요점을 들어 요약해서 말한 것으로, 반복해서 간곡하게(丁寧) 사람들에게 보여준 뜻이, 지극히 깊고 간절하다.
學者其可不盡心乎!
배우는 사람은 그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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