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曰: “衣錦尙絅,” 惡其文之著也. (시왈 의금상경 오기문지저야)
시에 이르기를: 비단옷(衣錦)을 입고 홑옷을 껴입는다고 했는데, 그 아름다운 무늬(文)가 드러남을(著) 싫어하기 때문이다.
故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 的然而日亡. (고군자지도 암연이일장 소인지도 적연이일망)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희미한 듯하지만 날로 드러나고(章); 소인의 도는, 분명한(的然) 듯하지만, 날로 사라진다.
前章言聖人之德, 極其盛矣.
앞 장에서 성인의 덕이, 그 성대함을 극진히 했다고 말했다.
此復自下學立心之始言之, 而下文又推之以至其極也.
여기서 다시(復) 하학(下學) 단계에서 마음 세우는 것의 시작부터 말했고, 다음 글에서 또 이것을 미루어서(推之) 극치에 이르렀다.
詩, 國風「衛碩人」ㆍ「鄭之丰」, 皆作“衣錦褧矣.”
시는, 국풍 '위풍 석인'과 '정풍 지봉'에서, 모두 '衣錦褧矣(의금경의)'로 되어 있다.
褧, 絅同, 禪衣也. 尙, 加也.
경(褧)은, 絅(경)과 같고, 홑옷(禪衣)이다. 상(尙)은, 껴입음(더함)이다.
古之學者爲己, 故其立心如此.
옛날의 학자가 자기 <완성을> 위했기 때문에, 마음 세우는 것이 이와 같았다.
尙絅, 故闇然; 衣錦, 故有日章之實.
홑옷(絅)을 껴입었기(尙) 때문에, 희미한 듯하고; 비단옷을 입었기 때문에, 날로 드러남의 실체가 있다.
君子之道, 淡而不厭, 簡而文, 溫而理. (군자지도 담이불렴 간이문 온이리)
군자의 도는, 담담하지만 싫증나지 않고, 간략하지만 문채나고, 온유하지만 이치에 맞다.
知遠之近, 知風之自, 知微之顯, 可與入德矣. (지원지근 지풍지자 지미지현 가여입덕의)
멀리 나타난 것이 가까이에서 시작함을 알고, 밖에 드러난 것이 안에서 시작한 것을 알고, <안의> 은미한 것이 <밖에> 드러남을 알면, 덕에 들어감에 함께할 수 있다.
淡ㆍ簡ㆍ溫, 絅之襲於外也;
담담함(淡), 간략함(簡), 따뜻함(溫)은, 바깥에 홑옷(絅)을 껴입은(襲) 것이고;
不厭而文且理焉, 錦之美在中也.
싫증나지 않고 문채가 있는데다 또한(且) 이치에 맞는 것은, 비단옷의 아름다움이 안에 있는 것이다.
小人反是, 則暴於外而無實以繼之,
소인은 이와 반대라서, 밖에 드러나지만(暴) <안에서> 그것을 이어주는 실제가 없다.
是以的然而日亡也.
이 때문에(是以) 분명한 듯하지만 나날이 없어진다.
遠之近, 見於彼者由於此也,
遠之近은, 저기에서 드러난 것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고,
風之自, 著乎外者本乎內也.
風之自는, 바깥에 드러난 것이 안에 뿌리를 둔 것이다.
微之顯, 有諸內者形諸外也.
微之顯은, 안에 있는 것에 바깥에 형상화되는 것이다.
有爲己之心, 而又知此三者, 則知所謹而可入德矣.
자기 <완성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이 셋을 안다면, 삼가할 것을 알아서 덕에 들어갈 수 있다.
故下文引詩言謹獨之事.
그러므로 다음 문장에서 시를 인용해서 <자기만 아는 마음의 자리를> 삼가하는 일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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