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 (과능차도의 수우필명 수유필강)
이 방법(此道)을 과감하게(果) 할 수 있다면(能矣), 비록(雖) 어리석은 사람(愚)도 반드시(必) 밝아지고(明), 비록(雖) 나약한 사람(柔)도 반드시(必) 굳세 진다(强).
明者, 擇善之功. 强者, 固執之效.
명(明)은, 선을 선택한 공효이고, 강(强)은, 굳게 잡아 지킨 공효다.
呂氏曰: “君子所以學者, 爲能變化氣質而已. 德勝氣質, 則愚者可進於明, 柔者可進於强.
여씨가 말하기를: 군자가 배우는 까닭은, 기질을 잘 변화시키기 위함일 뿐이다. 덕이 기질을 이기면, 어리석은 사람도 밝은 데로 나아가고, 나약한 사람도 강한 데로 나아간다.
不能勝之, 則雖有志於學, 亦愚不能明, 柔不能立而已矣.
<덕이 기질을> 이기지 못한다면, 비록 배움에 뜻이 있더라도, 또한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가> 밝아질 수 없고, 나약한 사람이 <의지를> 세울 수 없을 뿐이다.
蓋均善而無惡者, 性也, 人所同也; 昏明强弱之稟不齊者, 才也, 人所異也.
보통 선이 균일하고 악이 없는 것이, 성(性)이고, 사람마다 같은 것이고; <지혜가> 어둡고 밝으며 <의지가> 강하고 나약한 기품이 가지런하지 않은(不齊) 것이, 사람의 자질(才)이니,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誠之者, 所以反其同而變其異也.
성에 이르려는 것은, 그 같음(性)으로 돌아가고 그 다름(才)을 바꾸려는 것이다.
夫以不美之質, 求變而美,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보통 아름답지 않은 자질로, <기질을> 바꾸어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면, 백배의 노력이 아니라면, 거기에 이르기에 부족하다.
今以鹵莽滅裂之學, 或作或輟, 以變其不美之質, 及不能變, 則曰天質不美, 非學所能變.
지금 거칠고(鹵莽) 조잡한(滅裂) 배움으로, 하다가 말다가(輟/철) 하면서, 자기의 아름답지 못한 자질을 바꾸려다가, 바꾸는데 이르지 못하면, 타고난 자질(天質)이 아름답지 못해서, 배워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是果於自棄, 其爲不仁甚矣!”
이것은 스스로 포기하는 데 과감한(果) 것이니, 그 불인함이 심한 것이다!
右第二十章.
이상은 제20장이다.
此引孔子之言, 以繼大舜ㆍ文ㆍ武ㆍ周公之緖, 明其所傳之一致, 擧而措之, 亦猶是爾.
이것은 공자의 말을 인용해서, 대순과 문왕, 무왕, 주공의 단서(緖)를 잇고, 그 전해진 것이 하나로 일치함을 밝히고, 들어서 그것을 시행하면(措), 또한 이와 같을 뿐이다.
蓋包費隱, 兼小大, 以終十二章之意.
대체로 비와 은(費隱)을 포함고, 대소를 아울러서, 20장의 뜻을 매듭지었다.
章內語誠始詳, 而所謂誠者, 實此篇之樞紐也.
장 안에서 성을 말한 것이(誠始) 자세하니, 이른바 성은, 진실로 이 편의 중추다.
又按『孔子家語』亦載此章, 而其文尤詳.
또 살펴보건대 공자가어에 또한 이 장이 실려있으니, 그 글이 더욱 자세하다.
成功一也之下, 有“公曰: 子之言美矣!至矣! 寡人實固不足以成之也.”
<가어의> 成功一也의 아래에, 공이 말하기를: 선생님의 말씀이 아름답구나! 지극하구나! 과인이 진실로 고루하여(固) 그것을 이루기에 부족하다고 했다는 말이 있다.
故其下復以‘子曰’起答辭.
그러므로 그 아래에 다시 子曰로 대답하는 말을 일으킨 것이다.
今無此問辭, 而猶有‘子曰’二字, 蓋子思刪其繁文以附于篇, 而所刪有不盡者, 今當爲衍文也.
지금 <여기에는> 이 묻는 말이 없지만, 오히려 子曰 두 글자가 있으니, 아마도(蓋) 자사가 그 번거로운 글을 삭제하여(刪) 이 책에 붙이면서, 편집한 것이 다하지 못함이 있으니, 지금 마땅히 연문이 되어야 한다.
博學之以下, 『家語』無之, 意彼有闕文, 抑此或子思所補也歟?
博學之 아래로는, 가어에 이것이 없고, 아마도(意) 저기에 빠진 글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사가 보충한 것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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