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記曰古之敎者(학기왈고지교자)는 家有塾(가유숙)하며 黨有庠(당유서)하며 (術)[州]有序(주유서)하며 國有學(국유학)이니라
학기에 말하기를(學記曰) 옛날의(古之) 가르치는 것에는(敎者) 家有塾(孰)하며 黨有庠(祥)하며 術有序하며 國有學이니라
[集解] 學記, 禮記篇名. 陳氏曰古者, 二十五家爲閭, 同在一巷, 巷首, 有門, 門側, 有塾, 民在家者朝夕受敎於塾也. 五百家爲黨, 黨之學曰庠, 敎閭훅所升之人也. 術, 當爲州, 二千五百家爲州, 州之學曰序, 敎黨學所升之人也. 天子所都, 及諸侯國中之學, 謂之國學, 以敎元子衆子及卿大夫士之子, 與所升俊選之士焉. 程子曰古者, 家有塾, 黨有庠, 遂有序, 蓋未嘗有不入學者, 八歲, 入小學, 十五, 擇其俊秀者, 入大學, 不可敎者, 歸之于農, 三老坐於里門, 出入, 察其長幼進退揖讓之序, 觀其所習, 安得不厚也?
[集解] 학기(學記)는, 예기 편명이다(禮記篇名). 진씨가 말하기를(陳氏曰) 옛날에는(古者), 25가가(二十五家) 려가 되었고(爲閭), 함께(同) 한 거리에(一巷) 있었고(在), 거리 입구에(巷首), 문이 있고(有門), 문 펴에는(門側), 서당이 있어서(有塾), 백성(民) 중에 집에 있는(在家) 사람은(者) 아침저녁으로(朝夕) 서당에서(於塾) 가르침을 받았다(受敎也).
500 가가(五百家) 당이 되고(爲黨), 당의(黨之) 학교를(學) 서라고 했고(曰庠), 려의(閭) 서당에서(塾) 올라온(所升之) 사람을(人) 가르쳤다(敎也). 술(術)은, 마땅히() 주가 되어야 하니(當爲州), 2500가가(二千五百家) 주가 되고(爲州), 주의 학교를(州之學) 서라 했고(曰序), 당의 학교에서(黨學) 올라온(所升之) 사람을(人) 가르쳤다(敎也).
천자가(天子) 도읍한 곳과(所都, 及) 제후의(諸侯) 국중에 있는(國中之) 학교를(學), 그것을(之) 국학이라 하고(謂國學), 그것으로(以) <천자와 제후의> 원자와(元子) 중자 및(衆子及) 경대부와 사의(卿大夫士之) 자식과(子, 與) 준걸로 뽑혀(俊選) 올라온(所升之) 선비를(士) 가르쳤다(敎焉).
정자가 말하기를(程子曰) 옛날에는(古者), 25가에(家) 서당이 있고(有塾), 당에(黨) 서가 있고(有庠), 수(遂)에 서가 있어(有序), 대체로(蓋) 일찍이(嘗) 들어가 배우지 않는(不入學) 사람이(者) 있지(有) 않았고(未), 여덟 살에(八歲), 소학에 들어가고(入小學), 열다섯 살에(十五), 그 중에(其) 준수한(俊秀) 사람을(者) 뽑아(擇), 대학에(大學) 들어가니(入), 가르칠 만하지 않은(不可敎) 사람은(者), 농촌에(于農) 그를 돌려보내고(歸之), 삼로가(三老) 마을 문에(於里門) 앉았다가(坐), 드나들면(出入), 그(其) 장유와(長幼) 진퇴(進退), 읍양의(揖讓之) 서열을(序) 살피고(察), 그(其) 익힌 것을(所習) 관찰하니(觀), 어찌(安) 두텁지 않겠는가(得不厚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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