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누가 지었는가?
대학이 일반 사대부의 윤리강령을 적은 책이라는 생각은 주자학의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한초나 그 이전 전국시대에 성립한 '대학'이라는 문헌이 이런 보편주의적 맥락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학은 누가 누구를 위해 쓴 것인가?
우선 '대학'에 나오는 언어 개념이나 논리적 함의가 가장 유사한 것이 '순자'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 황우란은 아예 대학을 순자학파의 산물로 단정 지었다. 공자는 '호학'을 성인이 되는 길의 가장 중요한 기본 덕목으로 말했지만, 지식의 문제에 대해서 인식론적 물음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공자 이후 인간 지식의 인식론적 정당성을 가장 깊이 성찰한 사상가는 순자다. 이런 성찰의 대표적인 작품이 순자 '해폐' 편이다.
대학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이란 문장을 살펴보자.
여기 나오는 '명덕明德'은 인간의 내면적 덕성을 가리키는 말로 선천적인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 틀림없다. 명덕은 분명히 맹자의 학통을 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순자는 인간에게 구비된 명덕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친민親民'은 선진 사상가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깔려 있기는 하지만 특수한 맥락에서는 순자의 학풍을 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대학은 순자와 맹자의 학통을 종합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선은 인간의 내면이 아닌 사회적 관계를 말한다
마지작 '지어지선止於至善'은 해석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지선至善'은 '지극한 선' 또는 '최고의 선'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지止'라는 표현이다. '지止'의 기본 뜻은 '그친다', '머문다'이다. 그렇다면 '지어지선止於至善'은 '지극히 좋음에 그친다'라는 뜻이 된다. 이것을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수사를 배제하고 생각하면 '가장 좋을 때 그만두어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노자'의 '지족불욕知足不辱'이나 '지지불태知止不殆'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친다'는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이런 의미 맥락은 '순자'를 읽었을 때 좀 더 명확하게 풀린다. 순자의 수신 편을 보면 '지止'를 '간다'는 뜻을 내포한 '그침'의 뜻으로 쓰고 있다. 가서 그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간다는 행위의 종료나 완성으로 감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지止'라는 개념을 둘러싼 논의가 순자의 '해폐' 편에도 있다. 대학의 '지어지선止於至善'에 해당하는 개념을 순자에서는 '지저지족止諸至足'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지선'과 '지족'은 등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을 '지족至足'이라고 하는가?
순자는 '지족至足'은 곧 '성聖'이라고 했다. 성은 다시 '진륜자盡倫者'인 성과 '진제자盡制者'인 왕으로 나뉜다. 진륜과 진제의 양진자를 '성왕聖王'이라고 했으며, 성왕이야말로 천하의 기준이 될 만한 사람이다. 배운다는 것은 성왕을 배우는 것이고, 구현한다고 하는 것은 성왕의 법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배움의 큰길(大學之道)은 막연하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왕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하는 공부다.
주희와 왕양명은 '지어지선止於至善'을 개인의 내면적 덕성의 문제로 파악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명덕-친민-지어지선'의 관계가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발전했다가 다시 개인적 차원으로 수렴하는 모습이 된다. 하지만 순자의 논리로 보면 '대청명의 명덕'을 가지고 '친민'을 실현하여 '지선'의 이상사회를 구현하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학의 논리인 '수신-제각-치국-평천하'만 해도 사 계급의 내면적 덕성의 문제로만 이야기할 수 없다. 치국과 평천하의 주체는 오직 지배계급일 수밖에 없다. (대학학기 한글역주,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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