香嚴和尚云(향엄화상운), 如人上樹(여인상수), 口啣樹枝(구함수지), 手不攀枝(수불반지), 腳不踏樹(각불답수), 樹下有人(수하유인), 問西來意(문서래의).
향엄화상이(香嚴和尚) 말하기를(云), 가령(如) 사람이(人) 나무에(樹) 올라(上), 입으로(口) 나뭇가지를(樹枝) 물고(啣), 손으로(手) 가지를(枝) 잡지 않고(不攀), 다리로(腳) 나무를(樹) 밟지 않았는데(不踏), 나무 아래에(樹下) 사람이 있어(有人),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을(西來意) 묻는다(問).
不對即違他所問(부대즉위타소문), 若對又喪身失命(약대우상신실명), 正恁麼時(정임마시), 作麼生對(작마생대).
대답하지 않으면(不對即) 그 사람이(他) 묻는 것에(所問) 어긋나고(違), 만약(若) 대답한다면(對) 또(又) 몸을 잃고(喪身) 목숨을 잃으니(失命), 바로(正) 이런 때(恁麼時), 어떻게(作麼生) 대답하겠는가(對).
'即'은 원래 '곧, 바로'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則'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他' 나와 남의 뜻의 아니라 제 3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恁麼'는 고어의 '如此'와 같은 뜻이다. '作麼生'도 '어떻게'라는 뜻이다.
無門曰: 縱有懸河之辯(종유현하지변), 總用不著(총용부저), 說得一大藏教(설득일대장경), 亦用不著.
무문이 말하기를: 설령(縱) 흐르는 물처럼 도도한(懸河之, 폭포수 같은) 말솜씨가(辯) 있더라도(有), 전혀(總) 소용없고(用不著), 일대 장경을(一大藏教) 말할 수 있어도(說得), 또한(亦) 소용없다(用不著).
'著'는 동사의 행동이 목적을 달성한 것을 표시하는 조사로 '~을 이루다'라는 뜻이다. '不著'는 불가능하다는 뜻을 더해서 '쓸 수 없다, 도움이 안된다'는 뜻이다.
若向者裏對得著, 活卻從前死路頭, 死卻從前活路頭. 其或未然, 直待當來問彌勒.
만약(若) 여기서(向者裏) 대답할 수 있다면(對得著), 이제까지(從前) 죽어 있던 것을(死路頭) 살리고(活卻), 이제까지(從前) 살아 있던 것을(活路頭) 죽일 것이다(死卻). 아마도(其) 혹시(或) 그렇지 않다면(未然), 바로(直) 다음을(當來) 기다려(待) 미륵에게(彌勒) 물어보아라(問).
'活卻'에서 '卻'은 동사의 역할이 완전이 끝난 것을 나타내는 조사로, '~해 버리다' 정도의 뜻이다. 여기서는 '완전히 살린다, 완전히 죽인다'로 해석할 수 있다. '當來'는 '장래에'란 뜻의 당송 시대 구어다.
【頌曰】
香嚴真杜撰(향엄진두찬), 惡毒無盡限(악독무진한). 啞卻衲僧口(아각납승구), 通身迸鬼眼(통신병귀안).
향엄은(香嚴) 참으로(真) 터무니 없는 사람이니(杜撰), 악독하기가(惡毒) 끝을 다함이(盡限) 없다(無). 납의를 입은 사람(衲僧, 승려)의 입을(口) 벙어리로 만들어 버리고(啞卻), 온몸에(通身) 귀신의 눈이(鬼眼) 솟아나온다(迸).
'杜撰'은 옛날에 두묵이라는 사람이 격에 맞지 않는 엉터리 시를 지어서 '엉터리 같은, 터무니 없는'이란 뜻이 되었다.
'啞卻'은 '卻'이란 조사를 붙여서 '벙어리로 만들어 버리다'라는 동사로 사용했다.
'衲僧'은 '기운 옷을 입은 승려'라는 말로 선승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칭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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