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丈和尚凡參次(백장화상범참차), 有一老人(유일노인), 常隨衆聽法(상수중청법), 衆人退老人亦退(중인퇴노인역퇴), 忽一日不退(홀일일불퇴).
백장 화상이(百丈和尚) 매번(凡) 설법할(參次) 때마다, 한(一) 노인이(老人) 있어(有), 늘(常) 무리를 따라(隨衆) 설법을 듣고(聽法), 사람들이(衆人) 나가면(退) 노인도(老人) 또한(亦) 나갔는데(退), 문득(忽) 하루는(一日) 나가지 않았다(不退).
凡參次: '凡'은 '대개'라는 뜻이지만, 뒤의 '常'과 연결해서 보면 '언제나'로 보는 것이 맞다. '參'은 '학인이 스승을 뵙는 것 또는 학인과 스승이 섞여 있느 것'을 말한다.
'忽'은 '생각지도 않게', '문득'으로 새기는데, 그렇더라도 시간적으로 '급하게'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로 번역하기도 한다.
師遂問(사수문), 面前立者復是何人(면전입자부시하인). 老人云(노인왈), 諾某甲非人也(낙모갑비인야). 於過去迦葉佛時(어과거가섭불시), 曾住此山(증주차산). 因學人問(인학인문), 大修行底人(대수행저인), 還落因果也無(환락인과야무), 某甲對云(모갑대운), 不落因果(불락인과), 五百生墮野狐身(오백생타야호신). 今請和尚(금청화상), 代一轉語(대일전어), 貴脫野狐(귀탈야호).
스님이(師) 마침내(遂), 앞에(面前) 선(立) 사람은(者) 대체(復) 누구인가(是何人)하고 물었다(問). 노인이(老人) 말하기를(云), 저는(某甲) 사람이(人) 아닙니다(也)라고 대답했다(諾). 과거에(於過去) 가섭불의(迦葉佛) 시대에(時), 일찍이(曾) 이 산에(此山) 살았습니다(住). 학인이(學人), 크게(大) 수행한(修行底) 사람도(人), 또한(還) 인과에(因果) 떨어집니까(落也無)라고 물어서(問因), 제가(某甲) 대답하여(對), 인과에(因果) 떨어지지 않는다(不落)고 말하고(云), 오백 생을(五百生) 들여우의(野狐) 몸에(身) 떨어졌습니다(墮). 지금(今) 화상(和尚)께, <저를> 대신해서(代) 마음이 달라질 수 있는(一轉) 말을(語) 청하오니(請), 들여우에서(野狐) 벗어나기를(脫) 바랍니다(貴).
復是何人: '復'는 '도대체'라는 뜻이다. '是'는 현대 중국어의 계사와 같으며, 'A是B'는 'A는 B이다'로 해석한다.
'某甲'은 '나는'이라는 일인칭 대명사를 대신하는 말이다.
大修行底人: '底'는 '大修行'과 '人'을 묶어주는 조사로 고어의 '之'와 같은 뜻이다.
'也無'는 고어의 '乎'와 같이 의문을 나타내는 어투로, '~인가'라고 해석한다. 일부러 '~인가 아닌가'라고 해석하더라도 의미의 차이가 없다.
遂問(수문), 大修行底人(대수행저인), 還落因果也無(환락인과야무). 師云(사운), 不昧因果(불매인과). 老人於言下大悟(노인어언하대오), 作禮云(작례운), 某甲已脫野狐身(모갑기탈야호신), 住在山後(주재산후), 敢告和尚(감고화상), 乞依亡僧事例(걸의망승사례).
그리고는(遂), 크게(大) 수행한(修行底) 사람도(人), 또한(還) 인과에(因果) 떨어집니까(落也無)하고 물었다(問). 스님이(師) 말하기를(云), 인과에(因果) 어둡지 않다(不昧). 노인이(老人) 말이 떨어지자(於言下) 크게 깨닫고(大悟), 예를 갖추고(作禮) 말하기를(云), 저는(某甲) 이미(已) 들여우의(野狐) 몸을(身) 벗었고(脫), 산 뒤쪽에(在山後) 있으니(住), 감히(敢) 스님께(和尚) 말씀드리니(告), 죽은 승려의(亡僧) 사례를(事例) 따르기를(依, 처리하기를) 부탁합니다(乞).
'住在山後': '在'는 원래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다. '산 뒤쪽에'라고 번역할 때 '에'에 해당한다. 나중에는 앞 동사와 붙여서 뒤에 체언이 오지 않아도 쓰게 되었다.
師令維那白槌告衆(사령유나백추고중), 食後送亡僧(식후송망승). 大衆言議(대중언의), 一衆皆安(일중개안), 涅槃堂又無人病(열반당우무인병), 何故如是(하고여시).
스님이(師) 유나로 하여금(令維那, 산중에서 대중을 지도하는 직책) 나무판을 두들겨(白槌) 대중에게(衆), 공양 후에(食後) 죽은 승려를(亡僧) 보낼 것임을(送, 장례를 치룸) 알리게(告) 했다. 대중이(大衆) , 일체 대중이(一衆) 모두(皆) 평안하고(安), 열반당에도(涅槃堂) 또(又) 아픈 사람이(人病) 없는데(無), 무슨 까닭으로(何故) 이와 같은가(如是) 하고 수근거렸다(言議).
'白槌'는 무엇인가 보고할 때 나무방망이로 나무판을 쳐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白'은 알리다는 뜻이다.
食後只見師領衆(식후지견사령중), 至山後巖下(지산후엄하), 以杖挑出一死野狐(이장도출일사야호), 乃依火葬(내의화장).
공양 후에(食後) 다만(只) 스님이(師) 대중을 이끄는 것에(領衆) 당하여(見), 산 뒤의(山後) 바위 아래(巖下) 이르러(至), 지팡이로(以杖) 뒤져서(挑) 한 마리(一) 죽은(死) 들여우를(野狐) 꺼내고(出), 그리하여(乃) 화장을(火葬) 따르도록 했다(依).
'見'은 '만나다, 이런 경우를 당하다'라는 뜻이다. '見'의 주어는 앞에 나온 '大衆'이고, '대중이 스승의 ~을 따라서 ~하게 되었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乃'는 '그리하여'라는 뜻을 가진 접속사로 '遂'와 같다. 하지만 인과관계는 '遂'보다 약해서 '그래서, 그리하여' 정도로 해석한다.
師至晩上堂(사지만상당), 擧前因緣(거전인연), 黃蘗便問(황벽편문), 古人錯祇對一轉語(고인착기대일전어), 墮五百生野狐身(타오백생야호신), 轉轉不錯(전전불착), 合作箇甚麼(합작개심마).
스님이(師) 저녁에 이르러(至晚) 법상에 올라(上堂), 앞서의(前) 인연을(因緣) 이야기하자(擧), 황벽이(黃蘗) 바로(便) 묻기를(問), 옛날 사람이(古人) 한 마디 말(一轉語) 대답하기를(祇對) 잘못해서(錯), 오백 생 동안(五百生) 들여우(野狐) 몸에(身) 떨어졌는데(墮), 한마디 한마디(轉轉) 잘못하지 않았다면(不錯), 그야말로(合) 도대체(箇) 무엇이(甚麼) 되었을까요(作).
'祇對'는 '대답하다, 대꾸하다'는 뜻이고, '祇'는 거의 접두사에 가깝다.
合作箇甚麼: '合'은 '그야말로 ~이다'라는 뜻으로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뜻의 조동사다. '箇'는 다음에 나오는 '甚麼'를 강조하는 '도대체' 정도의 뜻을 가진 조사다. '甚麼'는 '무엇'이란 말로 당송시대의 구어다.
師云(사운), 近前來與伊道(근전래여이도). 黃蘗遂近前(황벽수근전), 與師一掌(여사일장). 師拍手笑云(사박수소운), 將謂胡鬚赤(장위호수적), 更有赤鬚胡(편유적수호).
스님이 말하기를(師云), 앞으로(前) 가까이(近) 오너라(來) 너를 위하여(與伊) 말해주겠다(道). 황벽이(黃蘗) 마침내(遂) 앞으로(前) 가까이 가서(近), 스승에게(師) 일장을(一掌) 주었다(與). 스님이(師) 손뼉을 치고(拍手) 웃으며 말하기를(笑云), 오랑캐(胡, 달마)의 수염만(鬚) 붉은 줄(赤) 알았는데(將謂), 붉은(赤) 수염 가진(鬚) 오랑캐가(胡) 있었구나(更有).
'與伊道'에서 '與'는 여격을 나타내는 전치사로 '~에게, ~을 위하여'의 뜻이다. '與師一掌'에서는 '與'가 동사로 '~에게 ~을 하다'로 해석한다.
'將謂~更有'는 '~라고 생각했는데, (생각과 달리) ~가 있었는가'라는 말이다.
無門曰: 不落因果(불락인과), 爲甚墮野狐(위심타야호), 不昧因果(불매인과), 爲甚脫野狐(위심탈야호). 若向者裏著得一隻眼(약향자리저득일집안), 便知得前百丈贏得風流五百生(편지득전백장영득풍류오백생).
무문이 말하기를: 인과에(因果) 떨어지지 않는다(不落)라고 답했는데, 어째서(爲甚) 들여우에(野狐) 떨어졌는가(墮), 인과에(因果) 어둡지 않다고(不昧)라고 답했는데, 어째서(爲甚) 들여우를(野狐) 벗어나는가(脫). 만약(若) 여기에서(向者裏) 비범한 식견으로 주목할 수 있다면(著得一隻眼), 바로(便) 전(前) 백장(百丈)의 노인이 풍류의(風流 )오백 생(五百生)을 얻었음을(贏得) 알 수 있다(知得).
'爲甚'은 '爲甚麼'라고 쓰지만, '왜, 어째서'란 뜻의 구어체 부사어다. '者裏'는 '여기'란 뜻을 가진 구어다.
'便知得'은 앞의 '若'과 호응하고, '만일 ~하다면, 바로 ~을 알 수 있다'라고 해석한다.
【頌曰】不落不昧(불락불매), 兩采一賽(양채일새). 不昧不落(불매불락), 千錯萬錯(천착만착).
떨어지지 않고(不落) 어둡지 않음이(不昧), 한 번의 승부로(一賽) 두 번 이겼다(兩采). 어둡지 않고(不昧) 떨어지지 않음이(不落), 천 번 어긋나고(千錯) 만 번 어긋난다(萬錯).
'兩采一賽'은 한 번 주사위를 던져서 두 번 이겼다'는 말이다. '采'는 주사위에 새겨진 무늬고, '賽'은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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