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州和尚(조주화상), 因僧問(인승문), 狗子還有佛性也無(구자환유불성야무). 州云(주운), 無(무).
조주화상은(趙州和尚), 어느 스님이(僧)問, 개에게도(狗子) 역시(還) 불성이(佛性) 있는지요(有也無)라고 물었(問)기에(因). 조주는(州) 없다(無)라고 말했다(云).
'因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면, '因'은 원인을 나타내는 접속사다. '僧'이 주어고, '問'이 술어고, '狗子還有佛性也無'는 술어 '問'이라는 동사의 목적어가 된다. 이 구조대로 해석하면 '스님이 '狗子還有佛性也無'라고 물었기 때문에'라는 원인을 나타내는 절로 해석할 수 있다.
목적어절인 '狗子還有佛性也無'를 살펴보면 '狗子'는 '二字一語'로 '개'라는 뜻의 주어다. '有'는 '가지다'라는 뜻이 아니라 '있다'는 뜻의 술어이고, '佛性'이 보어가 된다.
'還'은 '그런데도, 역시'라는 뜻으 부사어로, '개에게도 역시'란 뜻을 나타낸다. 자전에는 ''還'이 '도리어, 오히려'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나오는데, 이렇게 읽으면 '인간에게는 불성이 없는데 개에게는 오히려 불성이 있습니까"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
'也無'를 직역하면 앞의 '有'와 연관지어서 '있는가 또는 없는가'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대의 어법으로는 단순히 '무엇인가요'라는 의문을 나타내는 어투로 문장을 끝내는 조사로 보아야 한다.
마지막의 '州云, 無.'는 '趙州和尚云, 無.'를 축약한 표현이다. 문장의 주인공인 '趙州和尚'을 강조하려고 문두로 보내면서 원인절이 중간에 삽입된 형태로 변형되었다. 원래의 문장으로 고치면 '因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趙州和尚云, 無.'가 된다.
無門曰: 參禪須透祖師關(참선수투조사관), 妙悟要窮心路絶(묘오요궁심로절).
무문이 말하기를: 참선은(參禪) 모름지기(須) 조사의(祖師) 관문을(關) 뚤어야(透) 하고, 오묘한 깨달음은(妙悟) 마음의 길이(心路) 끊어지는 <경험>(絶)을 궁구함이(窮) 요구된다(要).
'曰'은 앞의 '云'과 같은 뜻으로, '말한 그대로를 기록한다'는 뜻이다. 두 문장은 댓구를 이루고 있으며, '參禪'과 '妙悟'가 주어이고, '須透'와 '要窮'가 술어다. ''須'와 '要'는 모두 '~해야 한다'는 뜻으로 조동사로 볼 수 있다.
祖關不透(조관불투), 心路不絶(심로부절), 盡是依草附木精靈(진시의초부목정령).
조사의 관문을(祖關) 뚫지 못하고(不透), 마음의 길을(心路) 끊지 못하면(不絶), 진실로(盡) 그것은(是) 불에 기대고(依草) 나무에 붙은(附木) 정령일(精靈) 뿐이다.
'祖關不透, 心路不絶'은 상황을 나타내는 가정절이다. '盡'은 '진실로, 어디까지나'라는 뜻으로 '是'를 수식하는 부사다. '是'는 '그것이(앞의 한 부분을 받아서) ~이다'라는 뜻으로 '지시어+동사'가 합쳐진 술어로 본다.
且道(차도), 如何是祖師關(여하시조사관). 只者一箇無字(지자일개무자), 乃宗門一關也(내종문일관야). 遂目之曰禪宗無門關(수목지왈선종무문관).
또(且) 말해보면(道), 무엇이(如何) 조사의(祖師) 관문(關) 이겠는가(是). 다만(只) 이것(者) 한 개의(一箇) 무(無)라는 글자가(字), 사실(乃) 종문의(宗門) 한 관문이다(一關也). 드디어(遂) 이것을 이름붙여(目之) 선종의(禪宗) 무문관이라고(無門關) 말한다(曰).
'如何是祖師關'에서 '如何'는 의문 대명사로 '무엇과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是'는 '이것'이라는 지시사가 아니라 '~이다'라는 술어로 썼다. 전체 문장은 '~이 ~이다'라는 구조로 해석할 수 있다.
'只者一箇無字'에서 '者'는 '이것'이라는 지시사다. '乃宗門一關也'의 '乃'는 '곧, 즉'으로 해석하지만, '즉卽'의 '곧'이라는 뜻과 다르게 어조가 구부러지고 '그것은 사실'이라는 어감을 가진 뜻이다.
'遂目之曰禪宗無門關'에서 '遂'는 '드디어, 마침내'라고 직역하지만, 내용적으로는 '그 결과'라는 접속사 역할을 한다. 앞에서 말한 것이 원인이 되어 그 결과 다음 일이 생겼다는 인과관계를 나타낸다. '目'은 '가리켜 부르다, 이름 붙이다'는 뜻이고, '之'는 '目'의 보어다.
透得過者(투득과자), 非但親見趙州(비단친견조주), 便可與歷代祖師(변가여역대조사), 把手共行(파수공행), 眉毛廝結(미모시결), 同一眼見(동일안견), 同一耳聞(동일이문), 豈不慶快(기불경쾌).
뚫고(透) 지나감을 얻은(得過) 사람은(者), 다만(但) 조주를(趙州) 몸소(親) 보는(見) 것이 아니라(非), 바로(便) 역대 조사와(歷代祖師) 더불어(與), 손을 잡고(把手) 함께 길 가고(共行), 눈썹 털이(眉毛) 서로(廝) 이어지고(結, 매우 친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말), 같은(同) 한 눈으로(一眼) 보고(見), 같은(同) 한 귀로(一耳) 들을(聞) 수 있으니(可), 어찌(豈) 경쾌하지(慶快) 않겠는가(不).
'透得過者'는 '투과透過하다'라는 동사에 가능을 나타내는 조동사 '得'이 끼어든 형태다.
'非但~便~'은 '다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도 하다'라는 뜻이다.
'豈不'은 '어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의 어기처럼 해석하지만, 뜻은 자기의 감정을 남에게 표현하는 것이다.
莫有要透關底麽(막유요투관저마). 將三百六十骨節(장삼백육십골절), 八萬四千毫竅(팔만사천호규), 通身起箇疑團(통신기개의단), 參箇無字(참개무자).
<이> 관문을(關) 뚤어보려는(要透) 사람이(底) 있지 않은가(莫有-麽). 삼백 육십 개의(三百六十) 뼈마디와(骨節), 팔만 사천 개의(八萬四千) 땀구멍을 가지고(將毫竅), 온 몸을 통해(通身) 한 개의(箇) 의심 덩어리가(疑團) 일어나서(起), 이(箇) 무(無) 글자(字)를 참구하라(參).
'莫有~麽'는 '~이 없는가'라는 뜻이다. '莫'은 다음에 오는 동사 '有'를 부정한다. '麽'는 고어의 '~乎'처럼 의문을 나타내는 어기 조사다.
'要透關底' '이 관문을 뚫고 싶어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底'는 본래 '~의 ~'라는 뜻을 가진 접속사인데, 나중에는 뒤의 명사가 생략되어 '~의 것'이란 뜻으로 쓰였다.
'將'은 고어의 '以'와 마찬가지로 '수단, 방법'을 나타내는 전치사다. '通身'은 부사로 '全身'과 같은 뜻이다.
'箇無字'는 '一箇無字'가 생략된 말이다. 여기서 '箇'는 수사가 아니라 '이것'이라는 가벼운 지시사의 뜻이다.
晝夜提撕(주야제서), 莫作虛無會(막작허무회), 莫作有無會(막작유무회).
밤낮으로(晝夜) 이것을 내어걸고(提撕, 문제로 삼아 들고), 허무로(虛無) 이해하지(會) 말고(莫作), 유무로(有無) 이해하지(會) 마라(莫作).
'提撕'는 '가르쳐 이끌다'라고 보통 해석하지만, 여기서는 두 글자가 모두 '(문제를) 내어걸다'는 뜻이다.
'莫作'은 '~하지마라'는 금지사다. '會'는 '會得'으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如吞了箇熱鐵丸(여탄료개열철환), 相似吐又吐不出(상사토우토불출). 蕩盡從前惡知惡覺(탕진종전악지악각), 久久純熟(구구순숙), 自然內外打成一片(자연내외타성일편).
마치(如) 한 개의(箇) 뜨거운(熱) 쇠구슬을(鐵丸) 삼켜버린(吞了), 것처럼(相似) 토하고(吐) 또(又) 토해도(吐) 토해낼 수 없다(不出). 이전부터 있던(從前) 악지(惡知, 잘못된 지식)와 악각(惡覺잘못된 관념)을 깨끗이 쓸어 없애(蕩) 다하면(盡) , 오랫동안(久久) 잘(純) 익어서(熟), 저절로(自然) 안과(內) 밖이(外) 한 덩어리가(一片) 된다(打成).
'如~相似'는 고어의 '如' 한 글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구어체 표현이다. '吞了' 삼키는 동작의 완료를 나타내고, '了'가 완료를 표시하는 조사다. '打'는 접두어로, '어떤 동작을 한다'는 뜻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成'이라는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의 뜻을 강조한다.
如啞子得夢(여아자득몽), 只許自知(지허자지), 驀然打發(맥연타발), 驚天動地(경천동지), 如奪得關將軍大刀入手(여탈득관장군대도입수), 逢佛殺佛(봉불살불), 逢祖殺祖(봉조살조), 於生死岸頭得大自在(어생사안두득대자재), 向六道四生中(향육도사생중), 遊戲三昧(유희삼매).
벙어리가(啞子) 꿈을 꾼(得夢) 것처럼(如), 다만(只) 스스로 아는 것만(自知) 허용할 뿐이니(許), 문득 생각나는 듯이(驀然) 폭발하면(打發), 하늘을 놀라게하고(驚天) 땅을 울려서(動地), 관운장의(關將軍) 큰 칼을(大刀) 빼앗아(奪得) 손에 넣은(入手) 것처럼(如), 부처를 만나면(逢佛) 부처를 죽이고(殺佛), 조사를 만나면(逢祖) 조사를 죽여(殺祖), 생사의(生死) 언덕 가에서(於岸頭) 대자재(得大自, 자유, 해탈)를 얻어(在), 육도사생(六道四生, 중생살이) 가운데서(向中), 삼매를(三昧) 즐긴다(遊戲).
'於'와 '向'은 모두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다. '向'은 처음에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였으나, 나중에는 단지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로도 썼다.
且作麼生提撕(차작마생제서). 盡平生氣力(진평생기력), 舉箇無字(거개무자). 若不間斷(약불간단), 好似法燭(호사법촉), 一點便著(일점편저).
자아 그렇다면(且) 어떻게(作麼生) 문제로 삼아 들겠는가(提撕). 평생의(平生) 기력을(氣力) 다해서(진盡), 이(箇) 무(無) 글자(字)를 들어보라(舉). 만약(若) 끊어짐이(間斷) 없다면(不), 법의 촛불에(法燭, 한 점만 하면(一點, 조금만 불을 붙여도) 바로(便) 불붙는(著) 것과 같다(好似).
'且'는 어조사로 보고 '어쨌든, 그렇다면'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作麼生'은 고어의 '如何'에 해당하는 구어 표현이다. '好似'는 '꼭 닮았다, 그야말로 똑같다'라는 뜻이다.
頌曰: 狗子佛性(구자불성), 全提正令(전서정령). 纔涉有無(재섭유무), 喪身失命(상신실명).
송으로 말하기를: 개(狗子)의 불성(佛性), 올바른 정령을(正令) 온전하게(全) 내어 걸었다(提). 조금이라도(纔) 유무<의 분별로>(有無) 건너려고 하면(涉), 몸을 잃고(喪身) 명을 잃는다(失命).
'纔涉有無'에서 '纔' '조금'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막 하고 나서'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유무의 분별로 건너자 마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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