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맹후배/고문효경(古文孝經)

[고문효경(古文孝經) 서(序) 6] 고문효경은 누구에게서 왔는가 / 석오체종복생론고문상서의(昔吾逮從伏生論古文尙書誼)

by ഗൗതമബുദ്ധൻ 2022. 12. 22.
반응형

10. 昔吾逮從伏生論古文尙書誼(석오체종복생논고문상서의), 時學士會云出叔孫氏之門(시학사회운출숙손씨지문)自道知孝經有師法(자도지효경유사법).

일찍이(昔) 내가(吾) 복생을(伏生) 따라(逮從) 고문상서의(古文尙書) 마땅함을(誼) 논의하는데(論), 당시(時) 학사(學士)가 모여서(會) 숙손씨의(叔孫氏之) 문하에서(門) 나왔다고 말하고(云出), 효경에도(孝經) 사법(師法, 선생님이 전수한 관점)이 있음을(有) 안다고(知) 스스로 말했다(自道).

 

복생(伏生)’은 통속적인 세칭이며그 이름은 복승(伏勝)’이다자는 자천(子賤)이다제남(齊南) 사람이다진나라에서 박사(오경박사五經博士는 무제 때 비로소 생겨났지만박사博士라는 관직은 이미 전국말기부터 있었다)를 지냈고특히 상서의 대가로 알려져 있었다

다음 고문효경의 해석의 한 예를 밝히는데 숙손통(叔孫通)의 문인(門人)을 끌어들인 것은 이 의 저자가 역사적 정황에 탁월하게 밝은 인물임을 입증하는 예라고 하겠다숙손통은 진나라 시황제 때부터 한고조 유방에 이르기까지 활약한 탁월한 지략가였으며 대학자였다(땅 사람으로서 노나라ㆍ제나라의 학통을 이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여기 복생이 주관하는 세미나에 숙손통의 제자들이 참여하여 공안국에게 효경의 사법(師法)을 강론하였다는 이 장면의 설정은 실로 그 사실여부를 떠나 효경의 권위를 높이는 기발한 착상이라 할 것이다. (효경한글역주, 김용옥)

 

其說 移風易俗莫善於樂.” 謂爲天子用樂省萬邦之風以知其盛衰衰則移之以貞盛之敎淫則移之以貞固之風皆以樂聲知之知則移之故云: “移風易俗莫善於樂也.”

그(其) 설이(說) “<백성의> 기풍을 옮기고(移風) 풍속을 바꾸는 것에(易俗), 음악보다(於樂) 더 좋은(善) 것이 없다(莫).”는 것은 천자가(天子) 음악을 쓰는(用樂) 것이, 만방의(萬邦之) 풍속을(風) 살피고(以) 그 성쇠를(其盛衰) 알게 되면(爲), 쇠하면(衰則) 그것(之)을 정성의(貞盛之, 곧게 북돋아주는) 가르침으로(敎) 옮기고(移), 음란하면(淫則) 그것을(之), 정고의(貞固之, 곧고 굳센) 기풍으로(風) 옮기는데(移), 모두(皆) 음악과 소리로(以樂聲) 그것을 알고(知之), 알면(知則) 그것을 옮긴다(移之)고 말한다(謂), 그러므로 말하기를(故云): “<백성의> 기풍을 옮기고(移風) 풍속을 바꾸는 것에(易俗), 음악보다(於樂) 더 좋은(善) 것이 없다고 한다().”

 

공안국의 논지를 살펴보면 숙손통의 문인들이 효경을 해석하는 방식에 대하여 공안국은 긍정적이지 않다. 이유는 이풍역속(移風易俗)’의 동력으로서 음악을 활용하는 주체를 천자에게 국한시켰다는 것이다너무 음악을 천자중심의 하달체계로 파악하였다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효의 이해도 너무 상층에서 하층으로 하달되는 것으로만 해석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효경한글역주, 김용옥)

 

11. 又師曠云(우사광운): “吾驟歌南風(오취가남풍), 多死聲(다사성), 楚必無功(초필무공).” 卽其類也(즉기류야).

또(又) 악사(師) 광이 말하기를(曠云): “내가(吾) 남쪽 노래(南風, 초나라 노래)를 자주(驟) 부르는데(歌), 죽어가는 소리가(死聲) 많으니(多), 초나라가(楚) 반드시(必) 이루는 것이(功) 없을 것이다(無).” 곧(卽) 그런(其) 류이다(類也, 숙손통의 말을 증명하는).

 

'師曠'은 ()나라 평공(平公)의 악사인 사광(師曠)으로 성이 '사師'이름이 '광曠'자가 '자야子野'다. 장님으로서 소리를 듣고 길흉을 점치기로 이름이 높았다. 이것은 ()나라가 대군을 일으켜 정()나라를 치는 길에 진()까지 치려고 했을 때의 일로, 초나라 군대가 진나라에 해를 끼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효경한글역주, 김용옥)

 

且曰: “庶民之愚安能識音而可以樂移之乎!” 當時衆人僉以爲善,

또(且) 말하기를(曰): “서민이(庶民之) 어리석으니(愚), 어찌(安) 소리를(音) 알(識) 수 있는가(能), 그러나(而) 음악으로(樂) 그들을(之) 옳길(移) 수 있을 것이다(可以乎)!” 당시(當時) 많은 사람이(衆人) 모두(僉) 좋게 여겼다(以爲善),

 

吾嫌其說迂(오혐기설우). 然無以難之(연무이난지)後推尋其意(후추심기의)殊不得爾也(수부득이야).

나는(吾) 그(其) 설이(說) 물정에 어두워서(迂) 싫어했다(嫌). 그러나(然) 그것을(之) 비난할(難) 수 없었다(無以). 나중에(後) 그 뜻을(其意) 미루어 생각하니(推尋)殊不得爾也.

반응형

댓글